교사양성기관에서 예비교사들에게 길러주어야 할 능력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포괄적이고 전인격적인 성질의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과를 잘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우선시되지만 거기에서 나아가 학생의 전생활적(全生活的) 경험의 세계에 유의미한 학습과 성장의 기회를 조성하여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된다.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처럼 교사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은 충실한가? 그런 교육기관은 교사를 참으로 전문적으로 양성하여 학교 현장에 내보내는가? 그리하여 교사양성기관은 여타의 교육기관에 비해 교육자를 양성하는 교육에 있어서 설득력 있는 차별성을 갖는가? 요즘 이러한 질문이 갖는 의의가 더욱 커진 것 같다.
교사양성기관에서 실시되는 교육의 충실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계속 있어 왔다. 그러나 요즘 제기되고 있는 그러한 문제 제기는 좀 더 심각한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교사임용시험에서 사범대학 졸업생에게 부여되고 있는 가산점의 정당성이 부정되는 상황에 처하여 제기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앞에서 제기된 질문들에 대한 답의 긍정 혹은 부정의 정도에 따라 가산점 부여의 정당성 주장이 갖는 설득력의 수준 또한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물음의 긍정과 부정이 갖는 어느 만큼의 정도가 가산점 부여의 정당성 여부를 판가름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차제에 교사양성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의 충실성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지적되어야 할 문제점이 있다면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반성하고, 그 발전의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할 뿐이다. 좀 더 크고 긴 안목에서 볼 때, 가산점 부여 여부는 한국 교육과 한국 교사양성의 문제에 있어서 결정적인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저 교사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기관에서 기대되는 바의 교육이 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느냐에 있다. 좀 더 근본적인 시각에서 보면 교사양성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에 참으로 충실성이 확보되어 있을 경우 다른 많은 것들은 부수적인 문제에 불과할 것이다. 근본의 문제를 중시해야 하고 그런 근본의 문제에 항상 먼저 눈을 돌리는 지혜와 솔직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시각에서 교사양성기관의 교육이 갖는 충실성에 대한 생각을 간단하나마 피력해 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 말할 필자의 모든 견해가 교사양성기관의 교육에 대한 정확한 실증적 자료에 근거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교사교육 분야에 몸담아 오면서 보고, 듣고, 느껴온 바에 기초한 것이다. 교사교육 중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2. 주요 측면들에 대한 검토
교사는 교육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교사를 교육하는 곳에서 해야 할 일은 교육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교육자를 육성하는 것이다.[PAGE BREAK]학교를 찾은 학생들을 제대로 성장시키는 데 요구되는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하는 일이다. 미성숙한 학습자들에게 의미있는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그 어렵고 복잡한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교사교육 담당 기관이 해야 할 일이다.
교사양성기관에서 예비교사들에게 길러주어야 할 능력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포괄적이고 전인격적인 성질의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과를 잘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우선시되지만 거기에서 나아가 학생의 전생활적(全生活的) 경험의 세계에 유의미한 학습과 성장의 기회를 조성하여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된다. 그것은 교사라는 한 인간의 전체적 인격의 수준과 관련된다. 교사양성기관이 예비교사들에게 길러주어야 할 바가 이러하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여기에서는 교과를 가르치는 수업의 문제, 학습자의 인간적 성장이나 전인 형성 혹은 인권과 관련하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간화의 문제, 그리고 교사양성기관의 전체적 교육력과 관련하여 중시되어야 할 학교문화의 문제와 관련지어 교사양성기관의 교육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교과내용학과 교과교육학 조화 이뤄야 수업을 잘 하는 일, 즉 교과를 잘 가르치는 일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교과서 안의 내용을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가르친다거나 예상되는 시험문제가 요구하는 답을 효과적으로 찾아내는 요령을 숙달시키는 수업이 훌륭한 수업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교과서는 수업을 통해 이르러야 하는 의미있는 그 무엇의 작고 불완전한 단서에 불과하다. 좋은 수업은 그 작고 불완전한 단서를 가지고 학생의 ‘존재 방식’을 바꾸는 과업이다. 이를테면, 물리 교과를 가르치는 목적은 물리학 교과서에 나타난 개념이나 법칙을 암기하고 문제풀이 요령을 익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물리학적 사고양식과 안목과 태도로써 생각하고, 느끼고,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능력과 성향을 갖게 하는 데 있다. 간단히 말해 ‘물리학적 삶의 방식’을 갖게 하는 데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교과를 가르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전문적인 일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수업이 ‘예술적 기예’로 이야기되는 것은 결코 단순한 수사적 표현일 수가 없다. 교사가 교과를 그러한 차원에서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지녀야 함은 물론 더 나아가 해당 교과가 대변하는 삶의 방식을 실제로 구현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해당 교과를 통해 의도하는 경험과 학습을 온전하게 창출하거나 이끌어낼 수 없다.
이러한 교육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교사양성기관에서 다루는 교과내용이다. 좋은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소위 교과내용학과 교과교육학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나중에 교사가 되어 가르치게 될 해당 교과가 대변하는 학문이나 기능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좋은 교사에게는 교과를 잘 ‘가르치는’ 데 필요한 또 다른 지식과 기술, 즉 교과교육학적 이해와 능력이 요구된다. 이렇게 교과내용학과 교과교육학이 조화를 이루어 예비교사들이 교육될 때 좋은 교사양성 교육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점에 상당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PAGE BREAK]교사양성기관에서 교육되는 교과가 교과내용학에 편중된 것은 오랫동안 지적되어 온 해묵은 문제점의 하나이다. 개설된 교과목명에 있어서는 교과교육학의 구색을 갖추었다 해도 그것이 다루어지는 실제에 있어서는 교과내용학의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일도 적지 않다. 교과교육학적으로 다루어진다고 해도 담당 교수가 교과교육학 전공자가 아닌 관계로 교과교육학으로서의 충실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이는 무엇보다도 교사양성교육기관들이 교과교육학 전공 교수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데 기인한다. 최근 들어 조금씩 개선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지만, 아직도 전국적으로 보면 교과교육학의 부실함은 여전히 교사양성교육의 주요 문제점 중의 하나로 지적될 수 있다.
양성기관은 ‘좋은 수업’을 훈련하는 곳 교사양성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의 방법 또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마디로 말해 교사양성기관의 수업은 예비교사들에게 수업이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교사양성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수업들은 그 형태와 방식에 있어서 예비교사들에게 ‘좋은 수업’을 시범하는 것이어야 한다. 교사에게 있어서 수업을 제대로 하는 일, 즉 교과를 교과답게 가르치는 일은 가장 우선시되는 역할이다. 수업을 ‘예술적 기예’의 경지로 풀어내는 능력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양성교육 기간 동안 끊임없이 그러한 방식 혹은 경지의 수업을 경험할 필요가 없다. 양성교육의 과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좋은 수업이 이론과 시범을 통해 훈련되어야 한다. 수업은 연기(演技)와 유사한 것이어서, 마치 연기력이 이론만으로는 연마가 안 되고 오랫동안 선진 연기자와 호흡을 같이 하면서 그의 연기를 직접 보고 모방하는 과정을 통해 단련되듯이 수업 능력 또한 그러하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 나라의 대학생들이 고등학교 때까지 오랫동안 잘못된 방식의 수업에 노출된 관계로 수업에 대한 오개념(誤槪念)에 젖어 있는 만큼, 수업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접근방법을 크게 바꿔놓기 위해서라도 교사양성교육기관은 올바른 형태의 수업을 널리, 지속적으로 시범해 보여야 한다.
교사양성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이 이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의 모습은 여기에서 동떨어진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기계적이고 일방적인 전달 위주의 수업이 지양되어야 한다는 점, 그래서 배우는 사람의 적극적 참여가 강조되고 그들의 참된 이해가 중시되어야 한다는 점, 창의적 사고와 활발한 대화가 격려되어야 한다는 점,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간의 친밀하고 인격적인 소통이 있어야 한다는 점 등이 실현되는 수업이 교사양성기관 수업의 대종을 이루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말한 바처럼 교사양성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올바른 수업의 의의가 특별하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그곳의 수업이 이러한 요구와 기준을 잘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예사로운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적극적으로 그 해결책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양성기관의 부실한 교육여건 교과내용의 측면에서든 수업방법의 측면에서든 교사양성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에 문제점이 생기는 것은 그곳의 교육여건에 기인하는 바 크다.[PAGE BREAK]교과내용의 측면에서 교과교육학 분야에 부실함이 생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교과교육학 교수를 쉽게 충원하기 어려운 데에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양성기관이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교과교육학 전공의 교수요원은 매우 한정되어 있는 형편이다.
이 점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교사양성 교육에 있어서 교과교육 분야의 교육이 부실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양성기관의 수업과 관련해서는 강좌 규모의 적정화가 잘 안 이뤄지고 있는 점이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심한 경우 한 교수가 50~60명 규모의 4~5개 반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는데(더 심한 경우도 그리 드물지 않지만), 그런 여건 하에서는 앞에서 말한 바의 바람직한 방식의 수업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20명 내외, 많아도 30명 내외의 규모를 벗어나면 희망하는 바의 수업은 어려워진다. 대규모 강좌일 경우, 학생들의 과제물에까지 정성을 기울여 검토하고 평가, 조언하여 되돌려 주는 일이 매우 어려워지고 만다. ‘좋은 교육자’의 모습을 시범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러한 일들이 착실히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건이 열악할 경우 의지와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 방해를 받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교사양성기관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여건의 개선에도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기울여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학교교육의 인간화에 더 많은 관심을 학습자의 인간적 성장이나 전인 형성 혹은 인권과 관련하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인간화 문제이다. 학교가 인간화되어야 하고, 교육의 전개과정이 인간화되어야 한다. 인간화라는 말이 뜻하는 바가 그리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본성과 권리가 존중되는 가운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한 관계가 이루어지는 상태를 인간화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하여 인간의 선성(善性)이 자연스럽게 발로하는 상태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의미로 인간화를 이해할 때, 인간화의 정신은 인간본위의 가치를 기본으로 삼으면서 지력과 감성과 의욕을 포괄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불합리한 억압을 부정한다. 그리하여 인간화에는 인간애의 정조가 그 바탕을 이루게 되고, 사람간의 관계와 개별 인간의 존립에 상호존중, 배려, 보살핌, 개성, 자존(自尊), 자유 등의 원리와 규범이 적용된다.
학교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곳이라면 각급 학교가 지향해야 할 핵심적 규범의 하나는 인간화여야 한다. 다시 말해, 학교는 인간화의 정신이 진실하게 구현되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교사들의 생각과 행동이 인간화의 정신에 부합해야 한다. 교사들의 인격 혹은 사람됨 자체가 인간화의 규준에 합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양성기관은 바로 이러한 학교교육의 인간화 문제에 크게 유념해야 한다. 교사양성기관이 학교의 인간화 문제에 성실히 대응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장차 교사가 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인간화의 정신에 부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의 사람됨을 인간적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 가장 좋고 효과적인 방법은 교사양성기관에서 예비교사들이 경험하는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이 인간화의 규준에 합치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과 관계하는 사람들의 행동방식과 그들의 생활과 관련된 그 밖의 제반 유형, 무형의 환경들이 인간화의 정신에 부합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화된 교사’를 양성하는 일은 강의실 안의 공식적 교육보다 강의실 안팎을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유지되는 소위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 훨씬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PAGE BREAK]인간화된 교사, 즉 학교를 인간화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해야 하는 이런 과제를 두고 볼 때, 교사양성기관의 현실은 아직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교사양성기관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그들의 삶의 방식이 더 인간화의 기준에 다가가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그들에게서 아직도 부적절한 권위의식이 자주 발견된다. 권위주의는 인간화에 극히 해롭다. 그들은 또한 그들끼리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적인 공동체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이 점에 있어서도 아쉬운 면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스승들 각자의 삶의 철학과 그들끼리의 관계와 생활에서 인간화의 모범이 나타나야 이를 보는 제자들 역시 그러한 미덕과 생활태도를 몸에 익힐텐데, 이 점에 있어서 현실은 아직 만족스럽지 못한 측면이 많다. 이 외에 시설, 학사운영, 행정서비스 등 다양한 부분에서 인간화 혹은 인간중심의 가치와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재점검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교사양성기관다운 조직문화 형성돼야 끝으로, 교사양성기관의 학교문화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어떤 집단이나 조직의 문화란 그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가치관, 신념, 태도, 행동방식을 말한다. 어느 조직에나 그 나름의 문화는 있다. 문제는 그 문화가 해당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나 이상과 부합하는 것이냐이다. 조직문화는 조직의 내적 성질로서 구성원들의 생각과 행동에 깊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조직문화를 교사양성기관과 관련지어 생각할 때, 그것은 그곳에서 교육받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교사양성기관이라는 하나의 교육조직이 그곳의 교육적 이상과 부합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을 경우 그것은 그곳에서 생활하는 예비교사들의 마음과 행동방식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정짓는 데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된다. 그러한 문화는 잠재적 교육과정이 되어 은연중에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틀 지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통이 되어 유지되고 전승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기관에 있어서 잘 갖춰진 문화는 그 자체로서 중요한 교육적 자산이 되어 전체적인 교육력 향상에 의미있는 기여를 하게 된다.
앞에서 말한 교과지도의 측면이나 인간화의 측면도 이와 같은 학교문화의 뒷받침이 없을 경우 그 성공적 실현이 불가능해지게 된다. 학습과 성장 지향의 문화, 참된 공부를 실천하는 문화, 좋은 삶에 대한 의식 속에 자신을 가꾸어 가는 문화, 탈권위와 인격적 관계가 중시되는 문화,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돕는 문화, 진실한 교육의 원칙을 생각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 등이 교사양성기관의 문화를 이룰 때, 그곳에서는 한층 더 훌륭한 교사를 양성해낼 수 있을 것이다. 교사양성기관이 명실상부한 교육자양성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마땅히 그러한 문화를 지녀야 한다.
교육조직의 문화가 갖는 이러한 의미와 기능에 비추어 볼 때, 교사양성기관에는 상당한 아쉬움이 있다. 여러 가지 여건상의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교사양성기관은 마땅히 지녀야 할 건강하고 풍부한 문화를 갖추는 데 부족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배움, 성장, 진리와 정의, 인간애 등으로 대표될 수 있는 가치가 자연스럽고 진실되게 중시되고 실천되는 모습이 널리 나타나야 말한 바의 문화가 갖춰졌다고 말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거기에 못 미치는 면이 적지 않다.[PAGE BREAK]말한 바의 문화를 갖춘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것이 훌륭한 교육자를 양성하는 차별화된 교육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긴히 요구된다는 점을 알고 그 실현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교사양성기관은 보다 완전한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다.
3. 맺는 말
교사양성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을 몇 가지 측면에서 간략히 살펴보고 반성할 점을 지적해 보았다. 하나의 교육기관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교과지도의 문제, 학습자의 인간적 성장이나 전인형성 혹은 인권과 관련하여 중시되어야 할 인간화의 문제, 그리고 교사양성기관의 총체적 교육력과 관련하여 의미를 갖는 학교문화의 문제와 관련지어 살펴보았다. 글의 제목에 다소 애매해 보일 수도 있는 ‘교육의 과정’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이러한 내용을 다루었지만, 글의 내용에 비추어 제목에 넓은 의미의 ‘교육과정’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넓게 해석할 경우 ‘교육과정’은 교육기관이 의도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제공하는 경험의 총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사양성기관의 문제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여러 가지 지적하였지만 개별적으로 보면 이러한 지적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례들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비교적 양호한 양성기관이 있을 수 있고, 모범이 되는 교육담당자(교수)도 적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수준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사람이 갖는 가치를 크게 보기에 학교교육에 대한 기대와 기준을 높게 설정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교사양성기관의 교육에 대한 기대치 역시 높게 놓고 바라본 측면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쨌든 교사교육의 이상과 원리와 방식에 대한 더 깊고 넓은 안목을 가지고 교사양성기관에서 제공되는 경험들을 보다 엄격한 시각에서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본다. 그런 가운데 문제점이 더 정확히, 더 총체적으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더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가운데 교사양성기관의 많은 발전이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