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연 엄마!
오늘도 출근길에 소연이를 만났습니다. 북적거리는 꼬마들 틈에 끼어 골목을 오가는 행인들을 물끄러미 보고 섰더군요. 멀리서 소연아, 부르니 금방 알아보고 활짝 웃는 모습은 여전히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4년 동안이나 나의 교실에서 자랐던 소연이가 졸업을 하던 지난 2월, 그토록 암담해 하던 소연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길 찾기도, 신변정리도 되지 않는 열네 살 딸- 수줍음이 배인 저 미소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중학교에 입학 유예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던 소연 엄마의 심정을 저는 잘 알지요. 학교 앞 비좁은 문구점에서 장애 딸을 데리고 아침부터 몇 백 원짜리 손님들에게 부대끼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달플지 능히 짐작합니다.
교사에게 못난 딸을 맡겨서 늘 미안하다고 말하던 사람. 그러나 소연 엄마의 생각과는 달리 저는 행복했습니다. 특수교육을 해보지 않은 교사는 우리 아이들의 서투른 일상 안에 숨어있는 내면의 순수성, 아름다운 정서의 원형을 만나볼 수 없으니까요. 소연 엄마는 이런 표현에 공감할 수 있을는지요.
어쨌든,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서 받는 순수한 영적 에너지로 세상 욕심과 교만을 다스려왔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주는 자극으로 인해 일반교사들의 장애아 이해에 참고가 될 글도 써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맺은 인연과 나눈 사랑이 없었더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작업이지요.
소연이의 이야기도 간간이 담긴 수필집이 출간되었을 때 누구보다도 반가와 하며 달려와 안겨주고 간 소연 엄마의 장미다발은 곱게 말라 지금은 교실 벽에 그림이 되어 있습니다.
생각나는군요. 4년 전, 학교를 옮기고 사흘쯤 되었던 날인가요. 우리 교실을 기웃거리던 소연 엄마를 본 날이.
“저어… 선생님이… 이번에 오신 분이세요?”
이런 가벼운 인사 끝에 소연 엄마는 매사에 서투른 딸을 맡겨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였지요.
“정신지체에 자폐증까지 있어서요. 그래도 사람 속에 어울려 살라고 일반학교에 보내는데 선생님들에게 너무 폐를 끼치게 되네요. 그래도 특수학교에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서….”
갸름한 얼굴에 노루처럼 까만 눈을 가진 소연이가 심한 장애를 겪는다는 사실은 누가 보더라도 안타까운 일이었어요. 안아주려고 해도 “아니야, 아니야”하며 허공을 휘젓던 아이가 벽을 허물고 “선생님!”하고 가까이 다가오게 되면서, 저녁상에 올려진 방울토마토를,“이거 엄마 먹어!”하며 소연이가 내밀었다고 너무 신기하다며 울먹이던 소연 엄마의 전화 음성도 기억납니다.
이런 기쁨은 장애 자녀를 키우지 않는 부모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저도 병치레하는 자식을 밤새워 돌보면서 애타는 심정을 겪어보았지만, 평생 동안 자식 걱정에서 벗어날 길 없는 소연 엄마를 보면 아무런 핑계도 댈 수가 없습니다. 특별한 헌신의 길을 가는 소연 엄마는 존재만으로도 평범한 저 같은 사람들에게 삶의 진지함을 일깨우기에 너무 당당한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소연 엄마!
딸의 진학이 좌절되어 무척 고생되었겠지만 이제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올해 장애학생의 통합교육을 도울 특수교육보조원이 초등 특수학급에 배치되고 있으니 내년이면 소연이의 등하교와 지도를 도와줄 보조원이 일선 중학교에도 배치될 것입니다. 교육부의 직속기관인 국립특수교육원에서도 다양하고 세심한 배려를 많이 하고 있으니까요.
[PAGE BREAK]통합교육의 큰 걸림돌이 되어왔던 교사와 학생들의 장애 인식 개선을 선도하기 위해서 장애이해 사이트가 개설되어 더욱 반가운 마음입니다.
제가 이번에 낸 특수교육 에세이집도 일반 교사들의 장애학생 이해와 지도를 돕는 도서로 자료실에 소개되어 있더군요. 이런 장애이해 사업이 정착되면 소연이가 교실에서 따돌림을 받거나 교사들의 편견이 사라져 장애 자녀를 학교에 맡긴 부모의 근심을 얼마간 덜 수 있을 거예요.
그간에 지켜온 길-고통 속에서도 가장 힘겹게 버텨온 장애 자녀의 부모님들이 먼저 그 눈물과 한숨을 보상받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