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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헤어짐

이정희 | 서울 삼선초 교사


“야, 비켜 봐”
“어머, 죽었어! 아이 불쌍해라.”
“정말! 나도 보여 주라.”

겨울 방학이 끝나고 처음 등교하던 날, 무슨 일인지 복도 창가 쪽으로 아이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또래 중에서 키가 큰 아이는 창가에 매달려 창 밖의 상황을 알려주느라 정신이 없었고, 다른 아이들은 발꿈치를 들고 창 밖을 보려고 안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분명히 큰 사고가 난 것이라 짐작하고 황급히 그 곳으로 달려갔다. 아이들은 일제히 나를 쳐다보면서 새끼 비둘기가 죽었다고 말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비둘기가 죽다니…….

비둘기와의 만남은 꽃샘추위가 계속 되던 지난 신학기였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복도 창가에 비둘기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신기하게도 비둘기들은 창 틀 난간 위로 연결된 좁은 공간에 나뭇가지를 하나, 둘씩 물고 와 얼기설기 둥지를 만들고 있었다. 며칠 동안 열심히 들락거린 결과 비둘기들은 멋진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곳에 두 개의 알을 낳았다. 나는 바짝 조바심이 났다. 비둘기가 알을 낳은 것도 처음 보는 일이지만 그 알 속에서 과연 어떤 비둘기가 태어날지도 궁금했다. 혹시라도 나의 관찰이 방해라도 되면 어쩌나 하는 맘으로 비둘기가 눈치 채지 못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어미처럼 보이는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앉은 것으로 보아 알을 품은 것이 틀림없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보다 비둘기 보는 재미에 푹 빠져들 즈음, 새끼 비둘기들이 태어났다.

갓 태어난 새끼 비둘기들은 빨간 살갗에 노란 털이 듬성듬성 나 있었는데 눈은 꼭 감은 채 서로 붙어 있었다. 몹시 추운데 새끼 비둘기의 온 몸에 물기가 돌고 있어 더 추워 보였다. 물기를 닦아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혹시라도 잘못될까 싶어 지켜만 보기로 했다. 새끼 비둘기들이 조금씩 움직여 줄 때는 신비스럽기까지 하여 가슴이 떨렸다. 내가 마치 비둘기 보호자라도 되는 양, 출·퇴근 때마다 들여다보고 잘 자라기를 진심으로 빌고 또 빌었다. 어미 비둘기는 새끼들에게 먹이도 갖다 주고, 틈틈이 깃털로 감싸 추위에 떠는 새끼들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엄마가 아이를 포근하게 안아 주는 것 같아 옆에서 지켜보는 내 마음까지도 훈훈해졌다.

비둘기 둥지는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둥지를 들여다보며 신기해하는 선생님들을 보고, 아이들은 자기들에게도 비둘기 둥지를 보여 달라고 조르는가 하면, 때로는 호기심에 몰래 의자를 놓고 둥지 쪽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어느 날은 어린 새끼를 함부로 만지기도 하고 서로 먼저 보겠다고 야단법석을 피울 때도 있었다. 비둘기 때문에 아이들이 다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불쑥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둥지를 없애 버릴까도 생각했으나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 대신 비둘기의 성장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로 했다.

비둘기 둥지 이야기는 삽시간에 전교에 퍼져나갔다. 그 동안 찍어 두었던 비둘기 사진 중에서 새끼 비둘기 사진 몇 개를 골라 ‘위대한 탄생’ 이라는 제목을 붙여 교내 사진대회에 출품했다. 사진으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잠재우려던 나의 계획은 오히려 역효과만 불렀다. 사진을 본 아이들이 실제 모습의 비둘기 둥지와 새끼 비둘기를 보려고 복도 창가 쪽이 한층 더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얘들아, 이리 와 봐. 여기다 여기”
“어머나, 신기하다!”
“아, 예쁘다!”

아이들은 창틀에 매달려 목을 쭉 빼고 새끼 비둘기를 보면서 저마다 한마디씩 소리쳤다. 비둘기만큼이나 아이들의 모습이 귀여웠다. 아이들은 비둘기를 구경하고, 비둘기들은 아이들을 구경하느라 서로의 눈들이 반짝거렸다. 마음 한 편이 흐뭇해졌다.

한 해 동안 둥지에서는 대여섯 차례 새 생명이 태어났고, 그들은 나름대로 적응력을 발휘해 생활해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겨울 방학을 맞이했다. 그런데 겨울 방학이 끝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새끼 한 마리만 감싸주고 있는 어미 비둘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 마리는 얼어붙어 주검으로 변해있었다. 가까이 가자 어미 비둘기는 모성 보호본능을 강하게 발동하며 짧은 부리를 더욱 꼭 다물고 새끼 비둘기를 더욱 세차게 껴안았다. 죽은 새끼를 꺼내려는 나의 손놀림에 눈동자만 움직일 뿐, 내가 하는 일에 공격하지는 않았다. 죽은 새끼를 아이들과 함께 화단에 묻어 주었다. 보살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이들 역시 숙연한 마음으로 비둘기를 묻으며 서운해 했다.

종업식이 끝나고 정들었던 교실과 비둘기 둥지와도 이별을 해야 했다. 한 해 동안 사용했던 교실에서 다른 교실로 짐을 옮기는데 비둘기 둥지가 눈에 띄었다. 어미 비둘기는 먹이를 구하러 나갔는지 새끼 비둘기 혼자 있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의 슬픔이 있지만 이번에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비둘기와도 이별을 하게 되어 섭섭함이 한층 더했다.
또다른 아이들과의 만남이 없다면 큰 슬픔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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