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하는 서울 나들이다. 몇 녀석들에게 문자를 날렸다.
“나 보고 싶은 사람 서울역에 모여”
고속열차(KTX) 환승을 위해 구미에서 차지한 자리를 내놓고 대전역에 내렸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춘옥이에요.”
춘옥아! 그 날은 끔찍하게 더운 어느 여름날이었다.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플랫폼의 열기보다도 더 뜨거운 너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20여 년을 못 본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지.
“선생님! 너무도 뵙고 싶었어요.”
울음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들으며 너의 마음깊이를 헤아렸다. 내가 대전역에 잠깐 머문다는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대전역으로 달려 나왔을 기세였거든. 너의 안타까운 발자국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더구나.
“그래, 내려오는 길에 내 너를 보러 가마. ”
춘옥아, 내가 조금의 주저도 없이 그 자리에서 신탄진행을 약속할 만큼 그리도 네 목소리가 절절했었다.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있는 너였다. 그맘때 어머니의 하루해가 얼마나 짧은 줄 익히 아는 나다.
며칠 후 신탄진역에서 나는 눈물 글썽이는 너를 직접 만났지.
우리들 얘기 속에는 옛날과 지금이 끝없이 이어지고 엉키고 풀리며 시간은 잘도 흘렀다.
“선생님, 제 거는 장롱 면허증이에요. 제가 운전이 자유로우면 우리 어머님 모시고 좋은 곳을 얼마나 많이 다닐텐데요.”
춘옥아, 네 얘기에는 비 온 뒤 맑은 물 머금은 풀잎 빛깔을 띠고 종종 어르신이 등장하더구나. 그 호숫가의 그림 같은 음식점에서 산들거리는 바람을 맞으면서도 시어머님을 떠올렸고, 맛난 음식을 먹으면서도 어머님을 모시고 와서 같이 드시게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더랬다. 어여쁜 들꽃을 보며 우리 어머니가 꽃을 무척 좋아하신다는 얘기를 들려 주었고, 선생님 뵈러 가는데 혹여 늦을까봐 걱정하셨다고 호호거렸다.
춘옥아, 그 시절 네 또래아이들은 어른처럼 담배 농사 걱정하고, 모내기 철이면 시험 기간이라도 농사일 거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었지. 세월은 그 마음 그대로 너를 감싸안았고 네 마음밭에 고우신 어르신의 마음이 무르녹았던 게지. 네 마음 그대로 보듬어 주시고 정성 쏟게 한 그 어르신이 보고 싶어졌다.
네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도 직접 보고싶고 해서 집으로 갔을 때 어르신 하시는 말씀,
“난 청주로 도망가려 했거든요. 아, 글쎄, 에미가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하면 학부모가 극진히 선생님을 맞이해야 한다’고 해서 꼼짝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지요.”
뭐 맛있는 걸 해드려야 한다며 고부간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깻잎에 찹쌀풀을 묻혀 베란다 볕에 말리는 모습을 보며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어르신께서는 볕이 따끈하지 않아 제대로 마르지 않았다고 아쉬워하시며 며느리인 너와 함께 세 살 박이 어린애까지 딸린 채 결국 5일장을 봐 오셨지.
춘옥아, 어르신은 그런 분이시더구나. 어디 멀리 외출하셨다가도 아프면 제일 먼저 네 얼굴부터 떠오른다고 하시던 어르신. 당신 며느리가 이뻐서 며느리 친구까지도 소중해 하고, 중학교 3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의 때늦은 가정방문에 가슴 두근거리며 청국장 끓이시고 깻잎 부각 만드시는 그런 분이셨다. 그 어르신 병환이 중하심에도 곱고 온화한 얼굴에는 온통 정겨움과 평화가 가득하셨다. 정훈이 에미 덕분이라고, 모두 네 덕분이라는 말씀을 되풀이하시는 어르신을 뵈면서 봄 산의 진달래를 보는 듯, 가을 들녘의 황금벌판을 보는 듯 곱고 넉넉하여 세상살이의 고단함조차도 저만치 접어둘 수 있었다. 춘옥아, 어머니 모시고 예쁜 마음 나누며 사는 네 모습이 너무도 곱다. 네 얼굴에 끊이지 않고 피어나는 웃음꽃의 뿌리는 모두 어르신의 소망인 듯하구나. 네 살가운 목소리며 투명하고 높은 웃음소리에 너의 알뜰한 정성과 어르신의 깊은 사랑이 피어올랐다.
“시골에서 애들 외할머니가 종종 전화를 하셔요. 애들 잘 데리고 살아달라고. 내가 애들 데리고 사나요, 애들이 나를 데리고 살지. 쟤가 반찬은 잘 하는데 밥을 잘 못해요. 오늘도 죽밥이나 안 하나 몰라요.” 스스럼 없이 며느리 흉을 보시는 어르신을 보며 왜그리 콧등이 찡했는지 모른다. 사람 사는 맛이란 그런 것이겠지. 잘 차려 놓은 세간이나 주렁주렁 걸친 명품 치장엔들 그런 귀한 맛이 배어 있으랴.
언제 양보하고 언제 고집 피울지를 아는 두 사람의 슬기로움이 온 집안을 빛나고 기름지게 만들고 있었다. 어르신도 너도 다가가고 물러서는 때를 잘 헤아리는 덕분에 제 자리의 귀한 맛을 소담스레 누리고 있었다. 춘옥아, 손수 기른 귀한 상황버섯을 보낸 선배의 사랑이 괜한 것이었겠느냐. 매실의 알짜배기만 모아 만든 달콤한 물이 어디 매실 제것만이었겠느냐. 중한 병환중이신 어르신의 얼굴에 한 점 그늘 없이 잔잔한 행복이 끊이지 않음은 진정 네 마음 속에 샘솟듯 흐르는 사랑의 힘이리라.
춘옥아. 그냥 가만히 있을 네가 아닌 줄은 알고 있었다만, 너의 메일이 잇달았구나. 선생님 좋아하시는 송편도 못 드렸다고, 시골 아낙네가 손수 만든 찐빵도 못 내놓았다고, 선생님과 친구 만나러 서울 가는 날 어머니가 주신 하얀 봉투 자랑도 미처 못했다고…….
이 녀석 울보야, 또 눈시울이 뜨거워졌겠구나.
춘옥아, 어르신께 꼭 전해다오. 어르신 손부 보시는 날, 춘옥이 네가 어르신처럼 며느리를 볼 때, 내 그 날 어르신께 인사를 드릴 수 있도록 건강하게 오래오래 꼭 네 곁에 계셔 달라고. 그때까지 깻잎 부각의 사각거림을 기억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