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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교육 '근본' 재확립할 때

전파 차단이나 일정기간 응시자격 박탈 등을 수능부정시험 대책이라고 논의하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나라 망신의 전무후무한 이번 사건의 본질과 아무 관련 없는 미봉책일 뿐이다. 한줄 세우기식 대학입시제도가 개선되고 학부모들의 이기주의도 극복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내는 학교 교육이 시급하고 절실한 시점이다.

장세진 | 전주공고 교사·문학평론가


2004년은 조용히 넘어가나 했더니, 역시 희망사항이 되고 말았다. 수학능력시험 손전화 커닝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져가고 있다. 그에 구색이라도 맞추듯 대리시험까지 적발되어 지난 해에 이어 수학능력시험 ‘소음’이 온 나라를 들끓게 하고 있는 것.
사건개요야 이미 언론에 소상히 보도되었으므로 여기선 그 원인을 생각해보려 한다. 물론 원인분석은 현행 대학입시제도의 문제점과 그 대책 내지 대안까지를 예비한다. 그 지점에서 눈여겨 볼 것은 어느 교사의 참회 글이다.

한 고교 교사가 교육부 홈페이지에 올린 ‘국민 여러분 잘못했습니다. 저에게 돌을 던지십시오.’ 라는 글은 오늘날 일반고교가 학교 아닌 학원이 되었음을 웅변한다. 슬프게도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라져버린 인성교육
요컨대 교육의 한 본질인 인성교육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온통 성적에 의한 입시교육만 횡행하는 학교인 것이다. 아니 그것은 이미 교육이 아니다. 지식위주의 주입식 공부가 어찌 진정한 교육일 수 있는가. 문제집 풀이를 해 가며 이 문제는 수능에 나온다고 일러주는 것이 어떻게 참된 교육이란 말인가?

그 점은 입건된 학생들이 “이렇게 죄가 되는 줄 몰랐다”는 반응에서도 확인된다. 이른바 도덕성 불감증이라 불러도 좋을, 범행학생들의 반응은 ‘고교에서의 인성교육이 이루어지기는 하는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 누구 말처럼 “가정과 학교, 사회가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태도를 갖는 게 인성교육의 출발”이라면 적어도 일반계 고교에서의 인성교육은 없다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일례로 고3학생들의 계발활동, 과거 H·R이나 C·A시간 생략을 들 수 있다.

학급회의를 하거나 부서별 특별활동을 펼쳐야 할 그 시간에 고3학생들은 버젓이 같은 교실에서 보충수업을 받는다. 말하자면 불법이거나 위법이고, 그것을 조장하는 것은 학교(교장·교감)이다. 말할 나위없이 교사들은 학교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있다.
진짜로 웃기는 것은, 그들이 비위좋게도 학생들 공부를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공부하는 기계’ 만들기를 당연시한다는 점이다. 또한 놀랍게도 그들은 그것이 진정한 교육자의 길이며 교사의 몫이라고 의기양양해 하고 있다. 오히려 학원 강사처럼 ‘족집게’가 되지 못하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교사도 있다니….

하긴 수능시험을 앞둔 일반계 고교의 모든 학교생활은 탈법 내지 편법으로 얼룩져 있다. 0교시(09시 이전에 하는 보충수업) 금지, 심야자율학습희망자 실시 따위를 지키는 일반계 학교는 전국적으로 거의 없다. 많은 학생들이 교육부나 교육청 홈페이지에 고발과 함께 시정을 요구해도 웬일인지 수 년 동안 그대로이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정권이 바뀌어도 요지부동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입만 벌리면 교육개혁이니 공교육살리기이니 하며 떠들어 대고 있으니 할 말을 잃는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것도 2년이 되어가는데, 고작 EBS수능강의 시청을 사교육비 경감대책이랍시고 내놓았을 뿐이다.
이를테면 학교에서는 아직 가치관이 덜 성숙된 학생들에게 온갖 탈법, 편법의 교묘한 기술까지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둬야 하는가. 이번에도 냄비처럼 열나게 끓다가 쉬 식어 버리길 기다리면 되는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앞에서 말한 고교 교사는 “교사들의 대오각성만이, 그리고 그들을 믿는 국민 여러분만이 이 위기를 극복해 갈 수 있습니다.”라며 ‘참회’하고 있지만,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거나 명백한 착각이다.

‘공부하는 기계’를 만드는 학교 교육
지금처럼 책임만 있고 권한이 없는 교사들의 대오각성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특히 사립학교의 경우 학부모의 힘에 눌려 일사불란하게 학생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게 되어 있는 시스템인데, 교사들의 대오각성만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수능시험 폐지나 자격고사화 등이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치유책은 다른데 있다. 한줄 세우기 대학입시와 그에 부하뇌동 (물론 내 자식을 잘 되게 하고자 하는 순수하고 당연한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지만)하는 학부모들의 이기주의 극복이 그것이다.

전파 차단이니 일정기간 응시자격 박탈 등을 ‘수능부정’ 대책이라고 논의하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나라 망신의 전무후무한 이번 사건의 본질과 아무 관련 없는 미봉책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내는 학교 교육이 시급하고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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