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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다

기여입학제와 관련된 논쟁은 때로는 공론화 되면서, 때로는 수면 아래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념적 갈등인 자유를 중시하는 입장과 평등을 내세우는 입장의 대립이 자리 잡고 있음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기여입학제 도입여부는 옳고 그름의 차원보다는 선택의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황준성 / 한국교총 교육정책연구소 연구원


자유와 평등의 이념적 갈등 산물
대학입시와 관련된 정부의 대표적인 규제정책으로서 본고사 금지, 고교등급제 금지와 함께 3불 정책을 이루는 기여입학제 도입 여부 문제가 또 다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즉 최근에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을 포함해 한국대학교육협회 소속 4년제 대학 총장들이 제한적인 형태로라도 기여입학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 달라고 정부에 건의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 논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총장들은 “기여입학제도의 전면적인 허용은 국민 정서 상 시기상조이지만 기여금의 용도와 기여입학 자격의 강화 등 문제의 소지가 있는 점을 보완하면 대학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하면서 제한적인 기여입학제 도입을 주장한 반면에, 교육부장관은 “기여입학제를 현 법령 체제하에서 적법하게 허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여 사실상 도입 불가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이러한 논쟁은 정부수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때로는 공론화 되면서, 때로는 수면 아래에서 암암리에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논쟁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에 있어 중요한 이념적 갈등인 자유를 중시하는 입장과 평등을 내세우는 입장의 대립이 자리 잡고 있음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유를 중시하는 입장은 대학이 학생선발권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비로소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하면서 여기에는 기여입학제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기여입학제는 현재의 국가유공자 우대 정책 또는 외교관 자녀 특례 입학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반면에 평등을 강조하는 입장은 신분제 사회의 음서제도를 통한 권력의 세습을 예로 들면서 특히 오늘날 대학 중심의 사회적 가치 분배체제에서 기여입학제는 부모의 돈으로 자식의 지위를 세습시키는 것과 같다고 하여 강력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기여입학제 도입반대라는 지금까지의 국민적 정서는 기여입학제에 대한 세밀한 검토에 따른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우리 국민들 다수가 무게 중심을 두는 평등주의적 가치관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질적․비물질적 기여 구분해야
기여입학제란 물질 또는 비물질적인 기여로서 특정 대학의 발전에 현격한 공적을 남긴 인사의 후손에게 해당 대학이 정한 기준과 방법에 따라 특별한 절차를 거쳐 입학을 허가할 수 있도록 특례를 인정하는 제도이다. 이러한 기여입학제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 속에는 일부의 오해가 있는데 그것을 먼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기여입학제를 물질적 기여로 제한하여 기부금입학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잘못된 인식이 있다. 즉 기여입학제는 크게 비물질적 기여입학과 물질적 기여입학으로 나눌 수 있지만, 현재의 논의는 주로 물질적 기여 즉 재정적 기부에 그 초점이 주어짐으로써 논의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 사실 물질적 기여입학제 도입에 대해서는 많은 저항이 있을 수 있지만, 비물질적 기여입학제 예를 들어 광복 60주년을 맞이하여 모든 가산을 털어 독립운동에 헌신한 독립유공자들의 자녀들을 국가 및 대학에 대한 기여를 이유로 특례입학 기회를 제공하자고 한다면 많은 국민들이 이에 동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기여입학제에 대한 논의는 재정적 기여로 한정되어 있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여입학제가 도입되면 기여입학제로 인하여 혜택을 받는 부유층 자녀들의 수만큼 우수한 학생들의 입학이 제한된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기여입학제는 어디까지나 특례로서 일반전형과 다른 특별전형의 형식을 띠고, 정원 외 입학이 될 것이므로 일반전형에 의한 일반 국민의 입학기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됨이 원칙이다. 또한 기여입학제가 도입된다고 하여도 제도 시행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은 법령에 규정되기 마련이므로 일정한 기여가 있다고 하여 개별 대학이 마음대로 최소한의 수학능력도 없는 이에게 대학 입학을 허용할 수는 없는 것이며, 정원 외라는 숫자의 범위도 당연히 법령에 의해 일정 제한이 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끝으로 일부에서는 기여입학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배려대상자와 사회기여자에 대한 특별전형의 근거가 되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34조 제2항과 정원 외로 입학할 수 있는 경우를 열거한 제29조 제2항의 개정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재적으로는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고등교육법시행령 그리고 고등교육법 이전에 우리나라 법체계에 있어서 최상위를 차지하는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의 제31조 제1항과 교육기본법 제4조의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신념,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 있어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과의 관계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고등교육법시행령이 개정되더라도 그 위헌성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헌법개정 또는 헌법개정에 이르지 않더라도 그 개정에 상응하는 헌법적 해석이 도출되어야 기여입학제의 합헌적․합법적 도입이 가능한 것이다.

국민의 70% 이상이 부정적 의견
이유야 어떠하든 현재까지 기여입학제 도입에 대한 국민적 정서는 매우 부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70% 이상이 도입에 반대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반대 이유를 분석하면 그 핵심에는 사회적 지위의 세습으로 인한 위화감 조성이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학벌주의가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대학 졸업 여부는 물론 출신 대학이 그 사람이 앞으로 획득할 사회적 지위의 수준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대학 입학 기회가 선천적인 가족력에 의해 결정된다면 부, 권력, 사회적 위치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강화될 것이 자명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곧 과거 계급사회로의 회귀에 다름이 아니므로 부와 권력의 세습 그리고 이로 인한 사회적 위화감이 심각한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매우 의미가 있다. 특히 학벌주의가 만연되어 있는 현실과 대학 입학이 바로 졸업이라는 등식이 존재하는 현재의 대학 학사 시스템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또한 기여입학제 도입의 필요성으로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대학재정 문제의 해결인데 이 점에 대해서도 국민적 시각은 그다지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기여입학제의 도입여부가 공론화 되는 시점마다 먼저 불거지는 이슈가 대학 재정난이다. 정부의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투자가 OECD 국가의 평균 수준인 GDP 대비 1%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0.45%에 불과하며 특히,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 재정지원이 사립대 전체 재정의 5%에 못 미치는 현실 그리고 학교예산의 70%를 학생등록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에서 기여입학제가 도입된다면 많은 대학 특히 사립대학들의 재정난 극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유는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대학 재정 운영의 현실적 어려움을 인정하더라도 대학발전기금의 확충, 사립대학의 재단 전입금 증대 및 재정운영의 효율화 등의 대학 재정난 해소를 위한 제3의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 재정의 투명성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도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밖에 기여입학제 도입이 대다수 대학에 고른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부 대학만의 전유물이 되면서 그 혜택이 몇몇 특정 대학에만 한정되는데 반하여, 지방 소재 대학이나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은 대학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함으로써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되고 결국 대학 간 서열화만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없지 않다.[PAGE BREAK]
대학 재정문제 해결 등의 순기능
기여입학제가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문제점, 즉 역기능적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기여입학제도 순기능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기여입학제 도입 여부에 대한 문제의 답을 ‘시기상조’라는 용어로 압축하여 표현하고 싶다. 즉 제반 여건이 갖추어지는 시점에서는 그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지만, 현재는 그 여건이 갖추어지어 있지 않으므로 도입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여입학제의 순기능을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대학 재정문제의 해결이다. 앞에서 대학의 재정적 문제의 해결이 제도 도입의 정당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여입학제도가 도입된다면 대학들의 재정적 어려움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또한 이는 결국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질과 고등교육의 국제경쟁력의 상승까지도 연계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또 다른 순기능의 하나는 국가 경제적 차원에서 조기유학 등으로 인한 국부의 유출을 최소화하는 한편, 기여금의 활용을 통한 등록금 인상 요인 상쇄 그리고 장학금 지급 등을 통해 부의 재분배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유층의 경우 국내 대학 진학에 실패한다면, 이들의 자녀들은 엄청난 금액을 쏟아 부어 가며 외국 대학으로의 진학을 추진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부유층 가정의 조기유학으로 인한 엄청난 국부가 유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용은 순수한 국부의 유출로서, 국내에는 어떠한 기여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기여입학제가 도입된다면 부유층 자녀들의 해외유학 경비는 크게 줄어들 것이며, 그 비용은 국내 대학에 유입됨으로써 대학 운영비용에 있어 등록금의존비율을 낮출 수 있는 계기가 됨과 아울러 등록금인상을 억제하거나 장학금 확충의 계기가 됨으로써 제3의 학생들에게도 많은 경제적 이득을 안겨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며 대학등록금이 서민들에게 대학 진학에 있어서의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때, 기여금입학제의 도입을 통해 등록금 인하 또는 경제적 약자를 위한 장학금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면 그 순기능적 의미를 높이 살 수 있을 것이다. 쉬운 예로 기여입학제 1명을 정원 외로 받음으로써 등록금 마련이 곤란하여 대학 진학의 꿈을 접어야 하는 서민층 자녀 2~3명에게 대학진학의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장학금 지급이 가능할 수도 있다면, 이것이 오히려 사회정의 및 평등 그리고 실질적 교육기회의 균등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접근은 기여입학제도에 대한 위헌론에 대응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도입을 고려할 수 있는 전제조건
이러한 순기능도 갖고 있는 기여입학제에 대하여 무조건적인 반대는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비용을 요구하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앞에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였듯이 언젠가 즉 그 도입의 여건이 성숙되어질 때 기여입학제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서 용인되고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그 조건의 충족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노력 특히, 기여입학제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대학 측의 특별한 노력이 요구된다.

먼저 기여입학제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줄이고 순기능을 대학이 앞장서서 알림으로써 제도 도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이루어야 한다. 일전에 필자가 대학 강의 중에 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부금입학제에 대한 찬․반 토론을 실시하였던 기억이 난다. 토론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기부금입학제 자체를 금기시하였던 것에 반하여, 토론이 진행되고 기부금입학제의 취지 및 순기능적 측면이 언급되면서 점차 기부금 입학의 도입에 대한 찬성 쪽 입장이 커졌던 것이다. 일반 국민들도 이와 같을 것으로 본다. 대학들이 무리하게 기여입학제 도입을 추진하기보다는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들에 대한 대안을 마련함과 아울러 기여입학제의 순기능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국민적 정서를 완화시키는 작업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물론 이에 더하여 대학은 재정운영의 투명화를 먼저 도모하여할 필요가 있다. 기여입학제에 대한 반감 한 편에 대학 재정운영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는바,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또한 기여금의 용도, 기여입학 자격 등 기여입학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구체적 방안에 대한 논의와 첨삭의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그리고 도입가능한 제도의 모습이 갖추어져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 당국도 대학 학사에 대한 전반적인 시스템 정비를 대학과 함께 이루어 가야 할 것이다. 특히 어떻게든 입학만 하면 졸업은 당연시되는 현재의 시스템에 대한 재고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이 시스템 하에서는 기여입학제가 말 그대로 돈으로 대학 졸업장을 사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학입학=대학졸업’이라는 등식이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경쟁력 약화의 주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차제에 이에 대한 체제의 정비가 새롭게 이루어지기를 희망해 본다. 입학한다고 하여 모두가 졸업하는 것이 아니며, 입학이 사회적 지위 획득의 열쇠가 아니고 졸업이 그 열쇠가 될 때, 기여입학제와 관련된 반감은 크게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찬반 주장보다는 열린 시각 필요
기여입학제 도입과 관련된 견해를 명백하게 밝히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여입학제에 대한 견해가 자칫 그 사람 또는 그 집단의 성향을 대변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와 평등의 우선순위에 관한 논의의 각 주장이 공고한 이론적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주장을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고 또 그 반박을 자신만의 이론으로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순환적 논의인 것과 같이 기여입학제 도입 찬반에 대한 논쟁도 이와 같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기여입학제 도입의 문제가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하기보다는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본고가 찬반의 어느 한쪽에 경도 되어 있는 분들에게 다른 쪽의 시각을 열린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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