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선생님은 이름도 얼굴도 희미한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지만 그 느낌만큼은 분명히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초등하교 6학년 때 저희들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은 옆집 아저씨처럼 키가 크고 아주 소박하신 최상열 선생님이었습니다. 시냇물에 몸을 잠긴 조약돌처럼 가물가물한 추억들이 내 마음 속에 아련히 피어납니다.
선생님은 우리들이 잘못하면 무척 엄하시고 때로는 아버지처럼 따뜻한 손길로 저희들을 가르쳤습니다. 산 아래 아담하게 자리 잡은 학교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앞 냇가를 굽이쳐 흐르는 시냇물과 병풍처럼 둘러쳐진 뒷산은 우리의 꿈을 가꾸는 배움터요, 보금자리였습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뒷산을 다람쥐처럼 오르내리며 산토끼를 좇고 앞 냇가에서 가재를 잡으며 깔깔거리던 저희들을 큰사랑으로 보듬어 주신 선생님은 내 마음의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학교 실습지에서 고사리 손으로 직접 고구마와 감자를 캐며 수확의 기쁨들이 메아리 되어 운동장을 수놓았지요. 아이들이 “선생님, 재미있는 이야기 해주세요”하고 조르면 선생님은 구수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을 때마다 호리병 같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도깨비 이야기로 우리의 넋을 쏘옥 빼놓곤 하셨습니다.
그 때 선생님이 들려준 재미있는 이야기보따리가 밑거름이 되어 못난 제자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된 것도 모두 선생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공부를 마치고 우리들에게 글짓기 공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희들이 글짓기 한 것을 하나씩 읽어주시며 빙그레 웃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선생님의 지도로 제가 학교대표로 글짓기 대회에 나가는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설레는 가슴으로 각 학교에서 모인 대표들과 어깨를 나란히 겨누고 학교의 명예를 위하여 글짓기 한 것이 드디어 장원의 영광을 얻게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셔서 장원을 차지한 나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주시던 그 손길이 지금도 그립습니다. 내가 도 대회에서 장원한 글짓기 작품을 전교생이모인 운동장에서 직접 낭송하시며 용기를 북돋워 주실 때 저는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했습니다.
“글은 꾸며 쓰는 것이 아니라, 체험한 것을 느낌으로 쓰는 것이다”라고 몇 번이고 강조하신 말씀이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저희들의 마음 밭에 하늘의 은하수 같은 아름다운 꿈을 심어주기 위하여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직접 보고 느끼게 한 체험들이 먼 훗날에 제가 문학의 싹을 키우는데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나 봅니다.
늘 마음속에 그립고, 뵙고 싶은 선생님! 추억들이 고스란히 간직한 빛바랜 사진첩을 들쳐볼 때마다 인자하신 선생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풀 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새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배경 삼아 선생님은 하모니카를 불면 우리들은 신이 나서 노래를 목청껏 부르던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하모니카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오는 듯 합니다.
못난 제자의 출판기념회에 오셔서 축하의 말씀을 해주시고 시집을 받으시며 그렇게 기뻐하신 선생님 모습이 환상의 필름으로 뇌리를 스칩니다. 책이 출판될 때마다 선생님께 보내드리면 손수 격려의 말씀을 적어 보내셨지요. 그 말씀들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나침반이 되어 가슴에 아로새겨졌습니다.
문학가가 되어 아이들의 마음에 곱고 아름다운 꿈을 심어주며 또 선생님의 뒤를 이어 교직에 몸담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된 것도 모두 선생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니 절러 고개가 숙여집니다. 선생님 부디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