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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하는 여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큰 고릴라가 산꼭대기에 올라 석양을 봅니다. 망망대해. 그에게 세상은 섬과 바다, 그 뿐입니다. 바다 저편으로 넘어가는 붉은 해를 넋 놓고 바라봅니다. 그러나 고릴라에게 그 너머 세상은 아직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잠이 들고 다시 저 너머에서 해가 솟아 아침이 되면 배를 채우기 위해 섬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먹히지 않으려면 싸워야했고, 싸워야만 배를 불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는 산을 오르고 석양을 보고, 배를 채우는 일을 매일같이 되풀이했습니다.

그런 녀석 앞에 한 여인이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잡아먹어야 할 일이었지만 그녀의 재롱(?)이 귀여웠던 탓인지, 녀석은 여자를 죽이지 않고 보살펴줍니다. 물론 여자는 그런 그에게서 도망을 칩니다. 녀석은 여자를 찾아 나섭니다. 아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르는 여자를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자와 다시 산에 올랐을 때, 녀석은 많이 싸운 뒤였습니다. 여자를 잡아먹으려는 공룡들과 싸우며 온몸에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그녀를 지키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공룡 녀석은 아가리를 찢어 죽였음에도 분이 안 풀려 확인사살까지 한 번 더했습니다. 산꼭대기에 올라앉은 녀석은 천천히 숨을 고릅니다. 바다 저편으로 붉은 노을이 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그 때 여자가 고릴라를 향해 손으로 가슴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말합니다. “너무 아름답다”고.

녀석은 순간, 알게 되었습니다. 아름답다 부르든, 가슴을 치며 울부짖을 수밖에 없든, 무엇이든 간에, 삶에는 먹고 먹히는 싸움을 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을 말입니다. 석양너머 저 편에 있는 그 무엇의 존재를 말입니다. 그 것의 존재를 여자가 일깨워줬고, 지금, 그녀와 함께 그것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 ‘킹콩’(2005)은 누가 뭐라 해도 멜로 영화입니다. ‘사랑’이라 불리는, 감정을 너무나 잘 그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 알게 된 소중한 가치를 모른 척하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살 수는 없다는, 바로 그 것을 말입니다. 인간들에게 붙잡혀 뉴욕까지 끌려온 건, 그녀를 좇아가고 싶었던 까닭입니다. 그녀가 없는 섬은 이제, 녀석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녀를 좇아감이 비록 비극의 시작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다시 여자를 만난 녀석은 뉴욕 최고층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옥상에 올라갑니다. 여자를 구해 산꼭대기로 올랐던 때처럼,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때는 석양(夕陽), 지금은 여명(黎明)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그게 뭐 그리 대수이겠습니까. 녀석은 여자를 향해 손으로 가슴에 동그라미를 그려 보입니다. “당신과 함께하는 저 여명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렇습니다. 영화 속에서 덴헴이 말했던 것처럼 킹콩을 죽인 건 비행기가 아니라 사랑이었습니다. 녀석은 사랑의 본질을 깨닫고, 사랑 속에서 죽어간 것입니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라 우기며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은, 녀석이 깨달은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 합니다. 약육강식의 전쟁터에서 살아남는데 급급해, 잇속을 좇는 목소리의 달콤함에 이끌려, 바른 가치의 말들은 자꾸만 저 깊은 바다 속으로 밀어 넣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래 세상에서의 이전투구(泥田鬪狗)만이 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이제 우리도 그만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요. 더 늦기 전에 녀석처럼 우리도 산에 올라 숨고르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사랑의 초심’을, ‘삶의 본질’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요. 설령 녀석의 경우처럼 그 끝이 죽음이 되더라도 말입니다. |한국교육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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