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여 평되는 잔디밭 한 곳에 세워진 비각. 개나리로 둘러친 울타리도 없는 집터에 무성한 잡초, 버려진 쓰레기 더미.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충절을 바쳤던 박팽년선생의 유허(遺墟)지인데 이토록 황폐하게 버려져 있다니…. 향 피우고 술 올려 제를 지내고 청소를 한다. 최중호 충남기계공고 기계과 교사(48). 그는 역사 속 유적지를 찾아다닌다. 그런데 조금 특이하다. 최교사가 즐겨 찾는 곳은 '묘'. 그것도 충신, 효자, 청백리라 불리던 이들의 무덤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역사책에서 민영환선생의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란 유서를 읽었어요. 그 분의 울분과 충성심이 어린 맘에도 큰 감동으로 다가왔지요. 그 때부터 충신에 얽힌 사연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무덤을 찾아 나선 것은 75년부터. 그의 선조(先祖)인 최만리선생을 비롯해 단종, 계백, 정몽주, 조광조, 성삼문, 민영환, 박문수, 이준 등 30여 묘를 찾아 참배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이준열사의 묘(63년 서울 수유리로 이장하기 전까지의 묘적지가 헤이그에 있다)를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찾아갈 만큼 최교사의 열정은 대단했다. "그 분들의 묘를 찾아내는 일도 쉽지 않았어요. 번지 수만 들고 묘를 찾다 이상한 사람 취급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 일을 계속한데는 사연이 있지요" 묘지를 방문하고 나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지고 정신이 맑아지더라는 것. 또 어쩌면 야사(野史)나 전설일 수도 있지만 그 분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씩 알게 되면서 무언가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교사는 무덤 주인공들에 얽힌 이야기를 수필로 엮기 시작했다. '충정으로 피어낸 혈죽(민영환)'. '천년 香火之地의 촛불(진묵대사 어머니 묘)', '유허에 핀 민들레(박팽년)', '走肖爲王(조광조)', '단재선생과 연(신채호)' 등 수십 편의 글을 발표해 "隨筆과 批評"誌가 선정한 화제의 작가로 뽑히기도 했다. "자료수집을 위해 문화원, 도서관, 박물관으로 정말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자료를 모아도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 때는 무덤을 찾았죠.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10번이고 20번이고 말이에요" 세월의 뒤안길에 묻혀 점점 잊혀져가는 인물들. '이월상품'처럼 퇴락하고 빛바래진 그들의 삶을 바르게 알리고자 최교사는 오늘도 돌보는 이 없는 무덤과 유허지로 향과 술을 싣고 떠난다. <서혜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