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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토론 문화의 첫 걸음, ‘5분 말하기’

신아연 | 호주 칼럼니스트


호주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저학년들을 대상으로 매주 한 차례씩 돌아가며, 무언가를 가지고 나와 그것에 대해 약 5분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초등과정의 약 2~3년간에 걸쳐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사물과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의견을 바르게 전달하려는 연습을 반복하면서 어린이들의 논리적 사고와 표현력은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게 된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한 동네 사는 꼬마 녀석은 다른 날에 비해 월요일이면 학교 갈 준비로 더욱 부산하다. 학교생활이 아직 서툰데다 이틀을 쉬고 난 월요일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매주 월요일이면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긴장과 흥분이 겹쳐 더욱 그러하다.

지난 주 월요일에는 등교하던 녀석의 손에 빨간색의 부드러운 고무공이 쥐어져 있었는데 이번 주에는 뭘 들고 가는지 은근히 궁금해져서 일부러 앞마당에 나가 녀석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호주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저학년들을 대상으로 매주 한 차례씩 돌아가며, 무언가를 가지고 나와 그것에 대해 약 5분간 자유로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이야기의 주제나 소재, 방식 등에 아무 구애 없이 그저 급우들 앞에 나와서 짧게 발표를 하게 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매주 그 시간에 대비하여 평소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장난감을 비롯하여 동화책이나 새로 산 학용품, 여행지에서 산 진기한 기념품, 특별한 날, 특별한 의미가 담긴 선물 등을 한 가지씩 가지고 등교하는 설렘과 즐거움에 흠뻑 젖는다.

자녀들의 5분 발표를 돕기 위한 부모들의 정성 또한 이에 못지않다. 매주 한 가지씩 꼬박꼬박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발표대상 또한 인공적인 것에서 자연물로, 무생물에서 생물에 이르기까지 주변의 모든 것들에 관심을 두게 되고 선정대상 또한 광범위하고 다양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정작 학교에 가지고 갈 마땅한 것이 언뜻 떠오르지 않을 때나 들고 갈 것이 궁해져 걱정이 될 때면 어린이들은 부모들의 도움을 청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필자 또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일일 발표가 있던 어느 날, 집에서 기르던 햄스터를 폭신한 천에 감싸 안고 함께 등교했던 적이 있다. 아마도 그때 햄스터가 새끼를 낳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아이들이 그 이야기를 급우들 앞에서 하고 싶다고 해서 햄스터 가족을 교실까지 조심스레 데려 갔다가 데려왔었다.

아이가 둘이다 보니 우연히 발표가 겹치는 날은 눈독들인 물건을 서로 가지고 가겠다고 두 녀석이 싸우는 날도 있었는가 하면, 저 혼자 들고 가기에 버거운 덩치 큰 것이나 화분 따위 등 깨지기 쉬운 것을 학교까지 옮겨달라고 할 때도 있었다.
그 때는 솔직히 귀찮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두 아이 모두 고등학생이 되어 더 이상 소동을 벌일 일이 없어지고 나니 그 대신 동네 꼬마가 뭘 들고 학교에 가는지 슬그머니 궁금해지고, 그때 생각이 나서 혼자 미소 짓곤 하는 것이다.

햄스터나 토끼뿐 아니라 개, 고양이들도 특별한 사연이 있는 한 아이들 앞에서 5분간 서기 위해 한 차례씩 주인을 따라 등교를 해야 하는 일은 물론이고, 만약 그날의 주인공이 새라면 일찌감치 모이를 얻어먹고는 새장에 실린 채 부모들의 손에 들리어 아이들의 학교로 가야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과정의 약 2~3년간에 걸쳐 이렇게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대해 자기 의견이나 사물의 특성에 관한 관찰과 설명, 어떤 물건을 소유하게 된 배경과 구입하게 된 경위 등을 조리 있는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어린이들은 논리적 사고와 표현력이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게 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

뿐만 아니라 남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수줍음을 타는 성격도 반복되는 발표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고쳐져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고, 반대로 지나치게 부산스럽거나 집중력이 부족한 어린이들도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는 습관을 들이는 훈련을 몸에 익히는 동안 성격교정이 가능하게 된다.

흔히 서구사회는 토론문화가 발달되어있다고 대부분 인정하지만, 아닌 게 아니라 호주 사람치고 학력이 높든 낮든 말 못하는 사람을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듯하다. 그 이유가 아마도 초등학교 때부터 ‘말을 잘하는’ 연습을 반복해서 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보곤 한다.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사물과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묘사하고 바르게 전달하려는 습관이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배이다 보면 그것이 곧 문화로 자리 잡는 토양이 될 터이니.

초등학교 저학년들의 ‘5분 말하기’로 기초를 다진 후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조리 있는 표현과 논리가 한 단계 심화된 형태로서 ‘토론광장’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는다. 이제는 구체적인 사물에 대한 단순한 설명이 아닌 한 가지 이슈나 주제, 사안을 놓고 학생들 간에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가는 것이다.

학년별로 토론에 참여하고 싶은 학생들을 선발하여 팀을 구성한 후 각각 두 팀씩 설전을 벌이게 되는데, 어떤 주제에 대해 보다 논리적이며 타당한 논거를 제시하며 조목조목 자기주장을 잘 펼쳐나가는 팀이 우승을 하게 된다.

토론의 주제로 주로 선정되는 이슈는 학생들에게 익숙한 학원 내 문제나 시사, 혹은 사회적인 현안 중에서 잡히는 일이 대부분으로, 예를 들어 ‘왕따나 학원 폭력’ ‘입시제도 개선안’,‘학생 흡연이나 음주 약물’ 등을 놓고 토론을 벌이게 것이다.
학생들의 토론 광장은 학교대항 토론대회로까지 행사의 폭을 넓히면서 ‘제대로 말하는 법’의 중요성과 효율성을 심는다. 상대방을 설득하면서, 자기주장을 무리 없이 펼치는 대화와 토론의 문화가 이렇게 해서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

호주인들은 유난히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시시콜콜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대화의 소재나 주제에 대해서도 자기 나름의 심각하고 독자적인 견해를 가지고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보고 감탄을 할 때가 자주 있다. 그런가하면 어릴 때부터 말하고 듣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받아온 탓에 아무리 하찮은 생각이라도 자기의 독자적인 아이디어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갖는다는 느낌도 함께 받는다.

등굣길의 초등학교 저학년들의 소지품을 유심히 관찰하며 곰곰이 생각할수록 말이 5분이지, 어린 아이들에게 혼자 말하기로 주어지는 5분이란 결코 적지 않은 시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정작 당사자들은 발표에 대한 기대와 재미로 표정조차 상기된 채 학교로 향하고 있다는 것에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스런 동기유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아울러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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