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 우연히 필자에게 다가온 행복의 미소는 일생에서 가장 멋진 삶의 이정표가 되었다. 필자의 취미와 적성에 맞는 글쓰기를 하면서 즐겁게 사는 방법을 깨닫게 해준 2006년은 더욱 잊지 못한다. 노랑과 빨강의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듯 아름다운 이 가을에 아직도 승진에 얽매어서 헤어나지 못하였다면 지금쯤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10월 중순경이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감독을 맡아 6학년 교실에 들어갔다. 요즘 아이들이 평가에 관심이 부족한 것을 알지만 혹시라도 긴장하는 아이가 있을까봐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신경을 썼다. 그런데 오히려 아이들이 필자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왔다.
그중 하나가 ‘선생님은 뭐가 좋아 매일 그렇게 즐거워하느냐’는 것이었다. 모범을 보여야 할 최고 학년인데도 철부지행동을 일삼는 아이들이 던진 뜻밖의 질문이었지만 마음속의 다짐까지 꿰뚫어본 관찰력이 대견스러웠다. 한편 낙천적으로 사는 모습이 아이들 눈에 좋게 보였다는 것도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다.
똑같은 사물을 보거나 사건을 접하더라도 보는 관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긍정적으로 보면 다 좋게 보이던 것도 부정적으로 보는 순간 다 나쁘게 보이는 게 순리다. 그러니 바보가 아니라면 굳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살 이유가 없다.
필자가 보내는 메일에는 ‘삶을 아름답게 하면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 집니다’라는 서명이 함께한다. 누가 만들어 줄 때를 기다리면서 불평만 하면 멀리 달아나는 게 행복이다. 항상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주변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내고 작은 것에도 만족해하면서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사는 삶이 바로 행복이다.
필자가 살아가고 있는 방법을 몇 가지 예를 들어가며 얘기해 주는 것으로 질문에 대해 답변했다. 아이들의 표정이 덩달아 환해지며 고개를 끄덕인다. 짧은 시간에 얼마나 가르칠 수 있으랴만 긍정적으로 즐겁게 사는 게 더 좋다는 것만은 이해한 분위기였다. 우리 반 아이들이 필자를 바라보는 눈도 6학년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가르치는 사람들은 그냥 아이들이 좋아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을 실천에 옮겼을 뿐이다. 친근감을 느끼도록 편안하게 대하면서 아이들과 가깝게 지냈더니 부모님들까지 필자를 신뢰한다. 학교와 교사를 믿고 따르니 참교육은 부수적으로 이뤄진다.
사회에서는 교사가 무릎을 꿇게 하는 사태를 바라보며 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잘못을 질타했었다. 하지만 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반의 부모님들이 보여줬다. 10월 초 이웃 반 선생님의 돈을 탐낸 아이들이 있어 급히 부모님을 학교로 불렀다. 부모님들에게 자초지종과 함께 사후처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해주자 다음날 바로 이웃 반 선생님을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비록 무릎은 꿇었지만 가슴 뭉클할 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누가 욕할 것인가?
교사라면 누구나 아이들에게서 행복을 찾는다. 그중에서도 담임을 맡은 아이들이 1년 동안 잘 따르면서 속 썩이지 않고, 말썽부리던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좋은 방향으로 생활태도가 변하고, 소외감을 느끼던 아이들이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게 가장 큰 보람일 것이다. 그러니 올 한해 필자는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생활하는 게 교사들의 일상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게 직장의 분위기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교직원 간에 마음을 터놓고 생활할 수 있다. 이왕이면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데 앞장서려고 노력했다.
누구라도 말 한마디만 꺼내면 회식을 비롯해 직원들과 어울리는 자리를 만들었다. 모든 것이 순리적으로 처리되니 직원들끼리 얼굴 붉힐 일도 없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방학 동안에는 학교에 출근한 직원들끼리 밥을 직접 지어먹으면서까지 동료애를 나누도록 만들었다. 2006년을 되돌아보면 아이들이나 직원들과의 삶 속에서 행복을 찾아내며 더 즐거워했던 한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