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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무대돋보기> 최승희

춤밖에 몰라서 불행했던 춤꾼


그녀는 정성 들여 화장을 한다. 흐트러짐 없는 쪽진 머리에 꽃분홍 두루마기를 입은 자태가 너무도 꼿꼿하다.

"나는 조선의 춤을 추고 싶었을 뿐이에요."

조선이 낳은 세계적 무용가의 삶을 그린 극단 미추의 뮤지컬 '최승희'(연출 손진책·12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02-747-5161). 결벽에 가까운 완벽주의자, 사회주의자 남편의 아내, 딸을 남의 손에 맡겨둬야 했던 어머니,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인으로서 폭풍 같은 시대를 살다간 천재 무용가는 이 대사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일본인 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공연에 감동받은 소녀 최승희는 춤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무용수들과 달리 서양춤이 아닌 조선춤에 눈을 돌린다. 전통춤으로 미국과 유럽 순회공연에서까지 대성공을 거둔 그녀는 세계적인 무용수로 일본에 되돌아온다.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 조선인 무용수'는 일제의 좋은 선전도구로 활용되지만 연일 이어지는 전쟁포화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이 발굴해낸 춤을 지켜내려 애쓴다. 해방을 맞아 서울에 되돌아온 기쁨도 잠시, '새조국 건설'에 발맞춰 친일파 처단 여론이 높아지면서 전선위문공연 등 친일행각이 문제가 된 최승희는 쫓기듯이 월북길에 오른다.

'조선의 꽃'으로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북으로 간 최승희는 다시 화려하게 날아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정치적 소용돌이는 이번에도 그녀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가장 강력한 후원자이자 동지였던 남편이 숙청당하면서 한 마리 새처럼 자유롭게 세계 무대를 누비던 최승희는 찢겨진 자신의 날개를 붙잡고 눈물 삼킨 자아비판을 한다.

"나, 최승희는 개인적인 명예욕 때문에 당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독단적인 행동을 했음을 인정하고 반성합니다."

그리고 춤을 향한 무용가의 그칠 줄 모르는 열망은 어머니의 재능을 이어받아 인민배우로 칭송을 날리던 딸까지 파멸의 길로 떨어뜨리고 만다. 유독 예술가 중에서 불행한 삶을 살았던 이들이 많은 이유는 그들이 예술 이외의 세상사에는 순진할 정도로 무지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연극은 다른 사람들의 입을 빌려 최승희라는 무용가에 대한 우리의 복잡한 평가를 대신해준다.
"선생님이 나한테 너무 심하다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선생님을 미워할 수 없어. 선생님의 춤을 볼 때마다 저런 춤을 추려면 자기 자신에게는 또 얼마나 모질게 대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 그래서 나는 선생님을 미워할 수가 없어."

"역사를 두려워하게. 살아남아야 했다는 것이 모든 것을 정당화해주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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