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학교선택권 확대 계획’은 근본적으로 평준화 제도의 본질적 문제점을 해소할 수 없다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특히 평준화 제도에 근간한 현행 거주지 기준 고교입학제한 정책은 학생·학부모 학교선택권과 관련하여 ‘원칙적 제한 예외적 허용’이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는 교육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 요인이 되는 문제가 있으므로 계획의 시행과 함께 보다 적극적으로 평준화 제도의 본질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2월 ‘서울특별시 후기일반계고등학교 학교선택권 확대 계획’(이하 학교선택권 확대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는 지난 2004년 2월 교육부가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사교육비 경감 대책’ 일환으로서 선지원·후추첨 배정 비율 확대와 2005년 4월 서울시교육청이 ‘서울교육 발전 계획’ 과제의 하나로 고등학교 배정 시 학생·학부모 희망 반영 비율 확대를 제시한 것에 더하여 국회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한 학군 광역화에 대한 결론이다. 기본적으로 이번 서울시교육청이 제시한 계획에 대해 총론적 입장에서 찬성한다. 그동안 지나치게 제한받아 왔던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의 폭을 넓혀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에서 ‘서울특별시’가 갖고 있는 상징성을 고려할 때 이번 학교선택권 확대 계획은 이른바 평준화 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고교입학 체제에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고 서울시교육청이 제시한 방안에 다음과 같은 문제점도 있으므로 진정한 의미의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 확대를 위해 몇 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
비선호학교에 대한 현장 책임은 늘어 학교별 교육과정의 특성화 및 비선호학교에 대한 행·재정적 지원 강화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찬성하지만 비선호학교의 책무성 강화라는 명목 하에 학생의 선호도를 잣대로 취하고 있는 제반 내용들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특히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일차적으로 학교별 학급수를 감축하고 3년 후부터는 감축된 학급수로 인하여 발생하는 초과 교원에 대한 재정결함보조를 중단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사학교원의 신분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으로 교원지위 법률주의 정신에 전적으로 위반된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행위는 사립학교를 국·공립학교와 같이 평준화 제도에 묶음으로써 학생선발권 및 수업료책정권 등 자체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제도적 토대를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이에 따라 발생한 문제점에 대한 책임만을 사학에 전가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공립학교에 있어서도 비선호학교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교원 쇄신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발표해 이는 순환근무제라고 하는 교원인사 정책의 기조가 갖는 한계, 그리고 학교 자체의 교육력 못지않게 주변 교육환경이 학생·학부모가 학교를 선택하는 선호도의 중요 요소가 된다는 점을 간과했다.
또한 정책은 국민들의 이해 가능성이 높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시된 방안들은 과연 일반 학생과 학부모들이 자신 또는 자녀의 입학 학교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떻게 결정될 것인가를 쉽게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개선안을 구성하는 요소 준거들의 복잡함과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면 그 복잡성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각 방안들이 좀 더 단순화될 필요가 있다. 특히 통합학교군의 개념과 그 적절성은 개선방안의 복잡성을 가중시켜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또한 이와 같은 통합학교군이라는 새로운 추첨 및 배정기준이 필요하고 가능하다면 일각에서 주장하는 학군광역화는 왜 수용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지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제시한 계획은 앞서 기본적으로 평준화 제도의 본질적 문제점을 해소할 수 없다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특히 평준화 제도에 근간한 현행 거주지 기준 고교입학제한 정책은 학생·학부모 학교선택권과 관련하여 ‘원칙적 제한 예외적 허용’이라는 태도를 취해 학교선택권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 요인이 되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이 계획의 시행과 함께 보다 적극적으로 평준화 제도의 본질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평준화 제도 전제요건 우선 충족 평준화 제도는 학생의 평준화, 교원의 평준화, 교육여건의 평준화를 전제로 학군을 설정하고, 추첨을 통해 학생을 임의 배정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거주지 기준 입학제한을 통한 평준화 정책 특히 강제적인 추첨배정제도가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배정 대상이 되는 학교들이 학생의 성적분포, 교육과정, 교사 수준, 교육시설 등에서 동일할 것을 전제로 한다. 또한 이 모든 것들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면 최소한 교육여건에 있어서의 유사성은 갖추어져야만 강제 추첨배정제도가 국민들에게 용인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평준화 정책이 시행된 지 30여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실은 결코 이를 충족시키고 있지 못하고 있다. 즉, 현재의 학군별, 학교별 그리고 공·사립별로 학교의 교육시설과 교육환경의 차이는 국민들의 수인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교육여건의 차는 교육효과의 차이를 가져오게 되고 이는 교육결과의 평등은 물론 교육기회의 평등 자체까지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따라서 평준화 정책은 거주지 기준의 고교입학 제한정책으로서 결국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요소를 중요한 기준으로 하여 교육여건에 대한 차별을 통해 결과적으로 교육기회균등 전반을 위태롭게 하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것은 선지원 비율이나 대상을 일부 늘렸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교육당국에서는 학교들의 교육여건을 평균적인 국민과 지역주민들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으로 균등화하는 노력을 선행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의 교육여건은 단순히 학교 시설 및 교육용 기자재뿐 아니라, 재직 교사들의 평균 연령 및 경력 그리고 학교밖(최소한 스쿨존 내)의 환경 여건 등을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그 어떠한 부수적인 시도들도 평준화 제도 그 자체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립학교는 평준화 대상에서 배제해야 학생·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제한하는 현 고교입학제도를 개선하는 가장 빠른 길은 평준화 제도와 같은 거주지 기준 입학제한정책을 폐지하는 것이다. 즉, 모든 학교들에 대한 개별적인 학생선발권 부여를 전제로 학생·학부모의 교육적 필요에 따른 자율적 선택을 완전히 보장하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평준화 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현 체제도 나름의 장점이 있고 보완적 유지라는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이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학교선택권을 확대하면서 평준화 제도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은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군, 거주지 등의 제약조건 없이 희망에 따라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고 사립학교들은 지원자를 대상으로 건학이념에 적합한 학생을 선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사립학교의 학생선발권을 전적으로 배제하면서 국가가 학생을 임의 배정하는 우리와 같은 사례는 사학제도를 두고 있는 국가들에 있어서는 찾아보기 힘든 경우이다. 사학제도의 본질적인 존재 의미가 공학과 달리 학생·학부모의 자율 선택권을 중심으로 국민들의 다양한 교육적 수요에 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있을 수 있다. 2005년을 기준으로 일반계고에서 사립이 차지하는 비중이 학교수로는 46.5%, 학생수로는 49.5%이며, 전체 일반계사립고 중 64.0%(학생수 기준 77.3%)가 학군별 추첨배정제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립학교를 그 대상에서 제외함은 거주지 기준의 학군별 추첨배정제도 자체를 유명무실하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립학교를 일시에 거주지 기준의 추첨배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어렵다면 일정한 조건과 절차에 따라 희망 사립학교를 우선적으로 그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추첨배정 대상에서 제외된 사립학교의 자체 입학전형 방법을 지필고사 이외로 한정한다면 평준화 제도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70년대 당시의 사회적 문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방안이 충분히 검토되고 수용된다면, 공립학교의 경우에는 거주지 기준 학군별 추첨배정제도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도 대폭 확대해 줄 수 있으며 추가적으로 사립고교에도 나름의 학생선발권을 부여함으로써 사학제도의 본질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또한 이와 같은 방안은 학군별 배정 등 평준화정책에 따라 불가피하게 사학에 지급하고 있는 사학재정결함보조금의 규모를 줄이거나 폐지함으로써 공립학교의 교육여건 개선에 투입할 재정적 여유를 확보하는 더욱 큰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평준화, 교육의 다양한 요구 감당 못해 평준화 제도와 관련해서는 지난 1974년 제도 도입 이래 그 공과에 대하여 무수히 많은 논의를 거듭하여 왔다. 따라서 평준화 제도의 존폐 문제는 더 이상 이론적인 옳고, 그름을 다투는 것은 무의미하며 국민의 그리고 정책결정자의 선택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평준화 제도의 속성상 제도의 일차적 피해집단이라 할 수 있는 우수집단이 일반인에 비해 절대적으로 소수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국민들의 찬성과 반대라는 이분법적 선택에 의한 정책 결정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지론자의 상당수 역시 ‘절대적 유지’가 아닌 ‘보완적 유지’를 주장하고 있을 정도로 현재의 고교평준화 제도에 대한 문제인식은 상당 수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의 교육경쟁력은 해가 갈수록 뒷걸음질하고 있다. 이는 교육을 하나의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집중 육성하고자 하는 세계적 추세를 우리나라가 따라가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가 우리 학생들의 주요 조기유학처가 미국·캐나다·호주·영국 등의 국가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로까지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다양한 측면에서 논할 수 있으나, 그 중심에는 우리 교육이 국민들의 다양한 교육적 요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것은 학생·학부모들의 교육·학교선택권이 지나치게 제한되어 있다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이다. 하루아침에 우리나라 교육의 경쟁력을 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한다는 차원에서 학생·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확대하여 줌으로써 우리 국민들의 마음부터 붙잡을 수 있는 방안들이 앞으로도 적극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