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경쟁이 없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세계의 모든 선진국은 선진국이 되는 과정에서 교육의 역할이 컸고 교육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필수적이다. 다만 대학입시 경쟁이 요란하냐, 아니냐 하는 것은 성숙된 사회냐, 아니냐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대학입시 경쟁 없는 나라는 후진국
일부 사람들이 마치 선진국들은 입시경쟁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선진국들에서 입시 경쟁이 더 심하다. 우리가 자주 언급하는 미국의 주요 대학들은 지원자의 합격률이 10%대에 머물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일본도 전체 대학 진학자가 고등학교 졸업자의 50%를 넘지 않을 정도다. 중국도 명문대학에 대한 열기가 대단하고 우리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유사한 대학입학통일고사에 대한 전 국민의 관심은 지대하며 6월에 치르는 이 시험시기에는 전국의 도관과 사찰에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기도 인파가 쇄도한다.
상대적으로 유럽 국가들의 대학입시는 비교적 조용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유럽도 대학입시가 치열한 것은 여타의 국가들과 다름이 없다. 유럽 국가들은 고등학교 진학단계에서 대학으로 갈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기 때문에 대학입시의 경쟁률은 미국이나 아시아 국가들보다 낮지만 실질적인 경쟁은 훨씬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비교적 대학문이 크게 열려있는 프랑스는 대학들과 소수의 엘리트 교육을 전담하는 ‘그랑제꼴(Grandes Ecoles)’이 이원화되어 있어서 마치 1부 리그와 2부 리그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달리 독일은 고등학교 진학단계에서 직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경우와 대학진학을 위주로 하는 인문계 고등학교로의 진학하는 것을 엄격히 분리하여 적용하기 때문에 대학 경쟁이 크지 않게 보일 뿐이다. 영국의 경우에도 대학 진학률이 1960년대 5%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지만 여전히 50% 미만에 머무르고 있을 정도로 소수의 엘리트가 대학을 진학하기 때문에 외형적으로 경쟁이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는다.
한국의 대학입시 경쟁이 사회문제가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며 최근에 크게 문제가 된 것은 대학입학 전형요소를 두고 정부와 대학들이 대립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대학들의 입장은 학교별로 수준의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고등학교에서 얻은 성적을 반영하여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려는 대학의 의도에 어긋난다며 반대하고 있고 더 나아가서는 대학의 입시에까지 국가가 간섭하는 것이 대학의 자율을 해치는 것이라 반발하고 있다.
한편 교육부가 대학입시에 내신반영비율을 높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목적이 있다고 한다. 즉, 고등학교 교육이 입시위주로 흘러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고등학교 교육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하기 위해서 고등학교가 평가하는 내신비율을 높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있는 이른바 일류고등학교에서는 내신우수자가 나오기 어려운 구조이고 농어촌이나 낙후지역의 내신이 좋은 학생들에게 유리한 입시제도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내신반영 비율을 높이라고 주문하고 있다.
대입제도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대입제도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은 가깝게는 학생과 학부모, 대학, 정부를 대표하는 교육부, 대학졸업자를 채용하는 기업 그리고 우리 사회전체가 될 수 있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대학교육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에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한다. 이에 비해서 대학은 우수한 학생들을 많이 유치할수록 자신들의 명성이 올라가고 동시에 더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고자 한다.
한편 기업은 인적자원들이 기업에 필요한 여러 가지 특성을 대학교육을 통해서 기르기를 원한다. 기업이 직접 기르기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가능하면 기업의 요구에 맞는 특성을 많이 갖추기를 바라고 교육부는 국가의 경쟁력을 갖춘 인적자원 개발은 물론이고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춘 국민들을 교육을 통해서 기르려고 한다.
이와 같이 대학교육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수용해야하기 때문에 대학교육이나 대입제도에는 항상 긴장과 갈등이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정부가 전인적인 인격을 가진 민주시민을 양성하려는 목표는 생산성 향상을 원하는 개인이나 기업의 바람과는 충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정부나 국가가 대학교육을 통해서 얻으려는 것과 개인이 대학교육을 받는 목적이 일치한다면 대학교육을 두고 발생하는 갈등은 줄어들게 된다. 예를 들어 우수한 인적자원개발이 국가의 목표라면 대학의 목표, 학생의 목표가 일치하기 때문에 갈등의 소지는 크게 감소한다.
갈등의 출발은 대입제도를 사이에 두고 이해당사자 간의 목적이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하게 된다. 이 중에서 어떤 갈등들은 구조적인 문제로서 해결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불가능에 가까워서 해결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다. 대학입시 경쟁 자체를 없애려는 노력, 사교육비를 줄이려는 노력이나 정책은 구조적인 문제들로서 정부의 정책과 단기적인 노력으로 해결 불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해결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시장을 통한 효율적인 자원배분은 생산자들의 경쟁과 소비자들의 경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생산자는 더 많은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하여 품질을 개선하고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한다. 언제나 낮은 가격을 지불하기를 원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은 시장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대학입시 경쟁도 시장의 경쟁과 원리는 같다.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자 하는 학생은 그에 상응하는 실력을 쌓아야 하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야 한다. 한편 대학도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교육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하고 또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든지 교육비가 싸야한다.
이와 같이 대학은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교육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비용을 낮추는 노력을 해야 하고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기르는 능력은 개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목적 달성에도 기여한다. 예를 들어 외국어 구사 능력이 입시전형으로 들어가면 학생들은 외국어 구사능력을 신장시킬 것이고 그 과정에서 대학과 국가는 외국어 구사능력이 뛰어난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셈이 될 것이다.
잘못된 수단과 목적이 갈등 야기해대학입시 경쟁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게 하는 좋은 수단이 되고 동시에 대학은 우수한 인적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선별도구가 된다. 그러나 대학입학시험은 한정된 입학정원을 두고 서로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쟁은 당사자에게는 힘이 들겠지만 개인이나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경쟁이다.
그동안 대학입시 경쟁을 없애기 위한 정부의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대학입시 경쟁을 줄이려는 정부의 정책은 경쟁의 본질을 오해한 것이거나 목적 달성에 적합한 수단이 되지 못했다.
대학입시 경쟁을 줄이기 위해서 여태까지 해온 노력 중의 하나가 대학의 정원을 늘리거나 대학 설립을 자유롭게 하여 대학의 문호를 넓히는 것이었다. 이런 정책은 대학입시 경쟁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것이었다. 대학입시 경쟁의 본질은 대학의 입학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대학을 통하여 좋은 일자리를 갖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대학입학 정원을 늘려서 대학을 쉽게 들어가게 만드는 것은 좋은 일자리 얻는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오히려 대학졸업자의 기대감을 높여서 일자리를 위한 경쟁을 더 치열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대학입시 경쟁 과정에서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사교육비를 줄이는 정책을 여러 가지 시도하였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서 대학입학시험 문제를 쉽게 내고 내신을 강화한다는 정책을 펴는데 일견 그럴싸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역시 수단과 목적이 잘못된 것이다. 경쟁은 자신에게 유리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를 얻겠다는 사람들의 욕망이 지속되는 한 경쟁은 치열하고 경쟁에 이기기위해서라면 사교육이든 공교육이든 더 많은 투자를 하고 비용을 지불하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가경쟁력 약화시키는 평등 정책
대입제도와 관련하여 이른바 ‘3불 정책’이 존재한다. 기여입학 금지, 고교등급제 금지, 그리고 대학별 본고사 금지의 3불 정책은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학생들이 대학입학에서 유리한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이다. 흔히 교육의 수월성을 포기하고 평등을 인위적으로 강조하는 정책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을 통하여 입시경쟁이 없어지고 학교의 서열화가 없어지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교육당국의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싶을 따름이다.
수능시험 성적의 비중을 높이든 낮추든, 본고사를 보든 보지 않든, 내신의 비중을 높이든 낮추든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일자리나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경쟁은 치열하고 경쟁의 결과는 항상 불평등하다. 다만 그 경쟁을 대학입학시험에서 하느냐 아니면 취직시험에서 하느냐하는 시기와 방법의 차이일 뿐이다.
더구나 고등교육은 본래의 목적이 수월성임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단계인 대학교육에서 평등을 찾으려는 것은 세계화의 시대적인 상황과도 맞지 않다. 세계화에 따른 국가의 경쟁력을 강조하면서 교육에서 경쟁을 빼겠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이 정부에서나 시도할 만한 무모한 발상이다.
고등교육을 평등기조로 운영하려는 정부의 발상이 잘못된 것이고 또 평등을 달성하려는 정책수단이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오죽 대학입시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이면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가 하는 안쓰러운 느낌도 있다.
그러나 교육이 평등을 통해서, 인위적으로 평등이 유지될 수는 없다. 정말 평등한 사회를 유지하려면 조세제도를 통해서 소득의 평등을 추진해야지 능력과 적성이 다른 사람들을 평등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은 매우 큰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