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2024.11.22 (금)

  • 맑음동두천 7.1℃
  • 구름많음강릉 11.9℃
  • 맑음서울 8.9℃
  • 구름많음대전 9.4℃
  • 맑음대구 6.1℃
  • 맑음울산 8.1℃
  • 연무광주 8.1℃
  • 맑음부산 10.3℃
  • 맑음고창 5.0℃
  • 구름조금제주 13.8℃
  • 맑음강화 7.7℃
  • 구름많음보은 9.0℃
  • 구름많음금산 6.3℃
  • 맑음강진군 6.1℃
  • 맑음경주시 3.9℃
  • 맑음거제 9.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합리성 찾기 힘든 교장공모제

모든 제도는 정당성을 확보하고, 사회에 동의를 구하기 위해 합리성을 가정하고 만들어진다. 참여정부에서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교장공모제는 합리적인 제도일까? 교장공모제를 기술적·사회적·법적·정치적 합리성으로 구분, 분석해보면 오히려 비합리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교현장의 현실적인 문제보다는 이상적인 부분만 추구하고 있다. 잘못된 제도를 시행하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제도는 합리성을 가정하고 만들어진다. 제도의 합리성은 제도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결정된 제도를 관련자들이 받아들일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제도의 모습이 결정되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비추어 반대도 하게 되는데, 제각기 자기의 이익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합리성이 필요하게 된다.

일찍이 디싱(Dissing, 1962)은 합리성의 내용을 중심으로 사회적 조건에 따라 어떠한 내용의 합리성을 추구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합리성을 구분하였다. 즉, 합리성을 기술적·사회적·법적·정치적 합리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교장공모제의 합리성을 살펴보기 위해 디싱의 분류방식을 분석의 틀로 삼고자 한다.

목표 달성하기 어려운 해결방안
기술적 합리성(technical rationality)이란 목표에 대한 수단의 정확성을 의미한다. 목표와 수단의 이분적 관계를 전제하고 목표성취에 가장 적합한 수단을 찾는 것이 기술적 합리성이다. 교장공모제의 목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공모제를 통해 과열승진 풍토를 해결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모제를 통해 젊고 유능한 교원에게 교장응모 기회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먼저 전자의 주장을 살펴보면, 과연 교장공모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교원들이 승진으로 인한 교육력 낭비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예전의 승진임용제보다 경쟁자가 많아져서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교장 임용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교장 승진제도가 없다고 해서 교장이 되려고 경쟁하는 대신에 교사 본연의 역할에만 매진할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인간은 대부분 상위 지위에 오르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상위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거나 제한된다고 해서 그 욕구가 없어지거나 해소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예를 든다면 일선 학교에서는 교원들 가운데 일명 ‘교포교사(교장·교감 포기자)’가 있다. 교장공모제의 주장대로라면 교포교사는 학생들의 교육활동에 전념하는 교사였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교포교사 중에는 승진의 욕구를 학생교육활동에 전념함으로써 해소하는 경우보다는 각자의 취미, 여가생활을 통해 조직사회의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교장공모제의 두 번째 목표는 공모제를 통해 젊고 유능한 교원에게 교장응모 기회를 부여하자는 것이고, 그래서 공모교장의 응모자격을 초·중·고 교육경력 15년 이상의 현직교원 및 교육공무원으로 제시하고 있다. 초·중·고 교원의 교육경력 15년이면 1급 정교사에다가 보직 경험이 있을 정도의 경력이다. 보직은 해마다 업무분장이 바뀌게 되어 있어, 일관성 있고 체계성 있는 경험이 어렵다. 그리고 보직교사 중에서도 학교경영과 관련된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교무업무를 총괄하는 교무부장 경험이 필요한데, 교직경력 15년 정도에 교무부장을 경험하기는 우리나라의 교직풍토에서는 어렵다. 따라서 학교경영 소양을 가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교감 직급의 경험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교감은 법적으로 그 지위와 권한이 보장되고 있고, 그에 따라 교장의 학교경영을 보좌하고 때로는 그 직을 대행하기도 한다.

학교경영은 학교조직을 제대로 이해할 때 가능하다. 교직경력 15년 정도이면 가르치는 교수 전문성과 더불어 업무분장에 따른 담당 사무의 전문성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학교를 경영자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데에는 경험상, 직급상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교구성원 통합 저해할 수 있어
사회적 합리성(social rationality)이란 사회체제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간의 조화로운 통합을 의미한다. 사회체제의 구성요소들이 서로 갈등하지 않고 질서정연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에 나타나는 상호의존적인 질서체계를 사회적 합리성으로 간주한다. 교장공모제의 사회적 합리성은 이 제도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여 통합을 이루는지 그리고 교직문화에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지의 여부와 관련된다.

먼저 교장공모제의 사회적 책임 측면을 살펴보면, 학교교육은 공공재이므로 교육당국은 국민에게 운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현재의 교육체제로 보면 교육당국(교육부, 교육청)이 학교의 지도·감독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교장에게 일정 부분의 책임과 권한을 위임·이양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당국은 국민을 상대로 교장의 전문성을 보증하는 최소한의 기제가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자격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자격 없는 교장의 임용은 교육당국의 국민에 대한 책무성에 문제를 야기한다.

그리고 가르치는(teaching) 전문성과 경영(management) 전문성은 다르다. 교사로서 교수행위, 학급경영, 학생이해 등에 대한 능력이 교장으로서 학교경영의 전문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물론 교사로서의 경험이 학교를 경영하는 데 폭넓은 식견을 발휘하는 토대가 될 수는 있지만, 교장의 역할 수행에 직접적인 자질은 아니다. 이는 마치 기업에서 생산직 근로자 경력 15년이면 누구나 좋은 CEO가 될 수 있다는 논리와 같다.

최근에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교장의 자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다양화되었던 교장자격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전국적인 표준화를 진행시키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국립 교장자격 연수원을 설치하고 모든 교장에게 반드시 이곳의 자격증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교장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되고 있다는 시대적 흐름을 보여준다.

둘째로 교장공모제의 문화적 측면을 살펴보면, 공모로 선발된 교장이 교직사회 안에서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교직사회는 일반직 공무원이나 군인, 경찰 조직에 비해 상하 간의 관계가 느슨히 결합(loosed coupling)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직급에 따른 명령체계보다는 교직을 지배하는 문화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교직사회는 직급으로 보면 교장, 교감, 교사로 구분되지만, 그 안에 비공식적으로 교육경력에 의한 위계질서가 상당히 크게 작용하는 조직이다. 비록 교사들은 직급 상으로는 같은 교사이지만 교육경력이 높은 교사가 낮은 교사에게 작용하는 권위는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공모과정을 거처 임용된 교장은 이러한 연공서열에 익숙한 교직사회에서 적절한 권한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모교장과 교사 사이의 갈등과 더불어 교장 사이에서도 갈등의 소지가 많다. 교장들 사이에서 교사출신 공모교장과 교장자격증을 갖고 승진 임용된 교장 사이에도 갈등이 예견된다. 중앙집권적 학교관리 체제 하에서 단위학교의 교장은 인근 학교 교장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공모교장이 교장사회에서 주류로 진입하지 못한다면 교장직 수행에도 영향이 미치게 된다. 나아가 공모교장과 교육청(인사)과의 관계에서도 갈등의 소지가 있다. 중앙집권적 교육행정체제 내에서 교육청 인사는 그들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승진 임용된 교장에 더 호의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학습권 보장 위한 법적 타당성 부족
법적 합리성(legal rationality)이란 사람들 사이에 권리와 의무의 관계가 성립하고 이를 준수할 때 나타난다. 법적 합리성은 공식적인 질서와 규범을 제시해 주고 여기에 근거하여 인간행동을 예측가능하게 한다.

교장공모제는 학교의 책무성, 나아가 교장의 책무성에서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 공모교장은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당사자들이 교장 선발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들 참여자들은 권한과 권리만 있고 책임이 불확실하다. 현재의 학교는 학생들이 선택한 곳이 아니라, 교육청에서 지정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학생들은 학교가 좋으나 싫으나 다녀야 한다. 학교의 학부모들은 이들 자녀의 부모들로 구성되는데, 이들 중 학부모 대표가 공모교장의 심사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한편, 교사들은 그들이 영원토록 근무하는 학교가 아닌 잠시 근무하는 학교의 구성원이며, 교육청 인사 또한 잠시 담당하는 학교에 참여하게 될 뿐이다.

이와 같이 공모교장은 선택이 제한된 학생과 그들의 학부모, 책무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교사와 교육청 인사들이 구성돼 선발하게 된다. 이때 공모교장이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학교 교육력을 높이면 문제는 드러나지 않겠지만, 문제는 만약 공모교장이 교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을 때 그 결과를 누가 책임질 수 있는가이다. 그 책임은 교사, 교육청 인사도 아닌 학생들의 피해로 끝이 나버린다.

정부에서 임명한 교장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법적으로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민주적 절차에 의해 임용된 공모교장의 역할 수행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전적으로 질 수 있는지, 아니면 공모 심사과정에 참여한 이해당사자들이 책임을 질 수 있는지, 그것도 아니면 공모교장 개인이 책임을 질 수 있는지 등과 관련하여 법적 합리성이 미흡한 상태다. 즉, 교장공모제가 우리나라의 교육체제에서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하겠다.

선진국의 교장공모제는 우리나라와의 상황과는 다르다. 거기에는 학교자치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에 따라 학생 및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이 보장되어 있다. 따라서 학교 선택, 학교 자치와 같은 교육구조가 공모교장의 책무성을 통제할 수 있는 기제로써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즉, 공모교장의 경영실적이 부족하면 바로 해고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교장직에서 물러나면 다시 교원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교장하는 것이 밑져야 본전이다.

외국의 경우 공모교장이 운영하는 학교에 대해서는 학생들에게 선택권이 있기 때문에 교장의 학교경영에 대해 직접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일반학교는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이 제한되어 있으며, 만약 공모교장의 학교경영에 대해 불만이 있어도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교육연한을 마쳐야 한다. 이와 같이 교장공모제는 우리나라의 교육체제에서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법적 적합성이 상당히 미흡해 보인다.

학교의 정치장화 막을 길 막막
정치적 합리성(political rationality)이란 사회의 가치를 수렴하여 이익이나 목표들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인 절충이나 협상 및 흥정의 과정을 통한 합의 형성의 정도가 정치적 합리성의 평가기준이 된다. 여기에서는 참여자들 사이의 의견일치가 그 핵심이 된다.

교장공모제는 학교의 상급기관에서 교장을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관련된 다양한 인사들이 공모교장 심사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민주적인 교장 임용제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정치적 개념이라는 점에서 교장공모제가 학교에서 교장 임용과 관련하여 정치장화 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이때 교장 공모 과정에서 교육청 인사, 단위학교 교사, 학부모, 지역인사 간의 알력 다툼, 나아가 교직단체 간의 대립과 갈등이 예상된다.

예를 들어 새로운 교장을 공모할 경우 교직단체 사이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정치적 과정이 수반되게 되고 그 가운데 교사들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 그리고 특정 교직단체의 배경을 얻고 임용된 교장은 반대편 교직단체 소속 교사들과의 대립관계가 교장 임기 동안 계속될 수 있다. 그 단적인 예로 이미 일부 학교에서는 학교운영위원회의 구성과 운영과정에서 교직단체 간의 세력화 나아가 대립, 운영위원 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학교운영위원회의 기능뿐만 아니라 학교 구성원의 편 가르기로 이어지고, 결국 학교가 혼란에 빠지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학교의 정치장화는 교육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진다. 정치가로서 국회의원은 국정운영에서 제 할 일을 다하지 못하면 선거를 통해 평가를 받게 된다. 따라서 국회의원은 무작정 알력 다툼이나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일반 공립학교의 교원은 순환전보체제로 되어 있어서 구성원들 간에 정치적 다툼이 있다고 해도 몇 년 뒤에는 그 학교에 없다. 교원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면 다른 학교로 옮겨가기 때문에 학교의 정치장화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리고 학부모나 지역사회 대표 학교운영위원회 위원도 권리만 있지, 그 책임을 묻거나 직무수행을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이 전무하다. 결국 학교의 정치장화의 폐해는 오직 학생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이다.

잘못된 제도의 희생양은 학생들
교장공모제의 탄생 배경은 그동안에 교장의 직무수행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과 교장이 되기 위한 승진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문제점을 개선하도록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것이 안 좋으니까 저렇게 해보자는 식의 방향 설정은 곤란하다. 만약에 그 방향이 틀리면 그동안의 학생들은 어쩌란 말인가. 국가는 교육사업에 대한 책무가 있다. 그리고 교육의 질을 보장할 책임도 있다. 그 어떤 개선방향이라 하더라도 국가가 보장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면 곤란하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