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이면 산골짜기에서 쏟아지는 산야초의 풋풋한 향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출근을 한다. 교정을 한바퀴 돌고 교장실에 들어서면 어느새 우리 학교 유치원 꼬마들이 교장실로 몰려온다.
"교장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하는 합창소리를 듣는 것으로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나는 결혼이 늦어서 아직 할아버지 소리 한번 못듣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교장이 되자마자 '할아버지' 소리를 듣노라니 이제야 한 집안의 어른 역할인 교장이라는 것이 실감나며 한편으로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진다.
분명 교육자의 길은 신념의 길이요, 그래서 그 길은 메마르고 외롭다. 더구나 교장은 교육의 지표가 돼 도덕적이어야 하고 모든 면에서 모범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가는 길이 아무리 메마르고 외롭다 하더라도 '교장 할아버지'를 찾으며 따르는 우리 학교 유치원 꿈나무들이 있는 한 조금도 외롭지 않다.
갓 스물에 초임발령을 받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4년 6개월이란 세월을 교단에 섰고 이제 교장으로 승진해 부임한 것이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부족한 점이 많은 나로서는 내심 불안과 걱정이 앞을 가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교무실에 들어서자 꽃다발을 주며 반갑게 맞이하는 직원들, 조금도 때묻지 않고 순수 그 자체인 80여명의 해맑은 아이들이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긴장됐던 마음은 금새 사르르 녹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인정이 흘러 넘치고 사랑이 살아숨쉬는 그야말로 내가 서야할
행복한 일터가 바로 여기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의 빚을 지고 산다.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사랑의 빚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루빨리 진정한 '교장 할아버지'가 되어 순박한 꼬마들에게 '사랑과 꿈이 있는 교육'을 펼치는 것이 사랑의 빚을 갚는 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