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위기가 심화되면서 학업 중단 고민과 우울·고립감 등이 함께 확산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여학생의 정신건강 위험 수준이 남학생보다 높게 나타난 가운데 학업 스트레스와 무기력, 번아웃 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25 아동·청소년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이행 연구-한국 아동·청소년 인권실태’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7.0%로 조사됐다. ‘가끔 생각한다’는 응답이 23.0%, ‘자주 생각한다’는 응답은 4.0%였다. 실제 자해를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9.9%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전국 초등학교 4~6학년과 중·고등학생 8764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유엔아동권리협약(UNCRC)의 11개 권리 영역을 기준으로 아동·청소년 권리 수준을 분석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 주요 이유로는 ‘학업 문제’가 37.9%로 가장 높았고, 미래·진로 불안(20.0%), 가족 갈등(18.5%)이 뒤를 이었다. 여학생의 정신건강 위험은 더욱 두드러졌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경험은 남학생 20.1%, 여학생 34.3%로 약 1.7배 차이를 보였다.
사회적 고립 문제도 확인됐다. ‘항상 외로움을 느낀다’는 응답은 4.1%, 고민이 있을 때 털어놓을 대화 상대가 없다는 응답은 8.9%, 위기 상황에서 도움받을 사람이 없다는 응답은 9.0%로 조사됐다. 특히 조손가정의 경우 도움받을 사람이 없다는 응답 비율이 24.6%로 나타나 다른 집단보다 높았다.
학교생활에 대한 피로감도 높게 나타났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전체의 28.5%였다. 학교급별로는 초등학생 21.8%, 중학생 28.6%, 고등학생 35.1%로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이유로는 ‘공부하기 싫어서’가 26.4%로 가장 많았고, ‘귀찮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가 25.9%로 뒤를 이었다. 연구원은 이를 단순한 일탈보다는 학업 스트레스 누적에 따른 무기력과 번아웃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도 아동·청소년의 권리 인식과 참여 수준은 높아지는 흐름을 보였다. 청소년 참여권이 보장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74.3%로 조사됐으며, 2021년 이후 상승세를 이어갔다. 반면 청소년 참여가 어려운 이유로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39.3%)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디지털 환경과 기후위기에 대한 불안도 확인됐다. 온라인 환경에서 혐오·폭력 표현 등으로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71.0%였고, 기후변화가 사회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느낀다는 응답도 각각 80.5%, 60.2%로 나타났다.
유민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동·청소년의 심리·정서적 어려움이 초등학생 때부터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투표권이 없는 아동·청소년 정책은 선거 과정에서 우선순위가 밀리기 쉬운 만큼 정부가 제7차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아동·청소년 권리 보장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