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신록의 계절이다. 산의 푸르름이 쥐어짜면 연두색 물이 주르르 흐를 것만 같다. 눈을 더 들면 산줄기마다 엷은 초록 너울을 드리운 듯 아늑하고 평화롭다. 어쩌면 아름답다고 하기보다는 정겹다는 표현이 알맞을 것 같다. 피천득은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며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라고 했다. 시보다 아름다운 수필의 한 문장이다. 이 문장에서는 젊음, 청춘, 화려함이 묻어난다.
'청춘' 참 좋은 말이다. 이 오월은 일 년 사계절 중의 화려한 청춘이다. 오월은 해마다 반복되지만, 사람에게 있어서 청춘은 일생에 단 한 번 뿐이다. 돌이켜 보면 순간으로 걸어온 길은 짧게만 보인다. 오월은 가정의 달, 감사의 달이라고 하지만 스승의 날이 있어서 그 의미가 깊다.
종착역을 얼마 남기지 않은 38년이란 교직 생활을 하면서 우여곡절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전에 비하여 교육 현장 변화의 파고는 자꾸만 높아지는데 기쁨과 아픔을 몸으로 부딪치면서 고개를 넘다 보니 어느덧 지금에 서고 있다.
지난 삼월을 돌아본다. 이제 처음으로 교단에 선 신규 선생님 두 분이 동 학년이 되었다. 첫 부임지 첫날의 기분이 어떨지 나의 신규 교사 시절을 돌아보며 그 마음을 적셔본다. 학급 챙기랴, 업무 챙기랴 어디에 정신을 두어야 할지 어리둥절한 표정은 참 아프기만 하다. 게다가 첫 한 주는 퇴근하기가 바쁘게 저녁도 거르고 곯아떨어졌단 말을 들으며 안타까움에 어쩌면 조금의 힘이라도 되어줄까 하는 마음이 앞섰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게다가 학부모 공개수업을 앞두고서는 더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수업안을 같이 협의하고 도움 될 만한 말을 몇 마디 했지만 내심 걱정이 앞섰다. 수업이 교사의 본질이고 본업이니 공개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울 게 없다고 말했지만, 타인 앞에서 내 수업을 공개한다는 일은 언제나 긴장되는 일이 아닌가?
교직은 그리 만만한 길이 아니다. 교육은 교사가 한평생을 노력해도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의 최고에 도달하기 어려운 하나의 예술이다. 아이들과 마주하는 하루하루는 건축가가 건물을 쌓는 것처럼, 좋은 교사와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뿐이다. 좋은 교사는 실력이 있는 교사이고 훌륭한 교사는 가슴이 따뜻한 교사라고 했다. 선생은 좋은 교사이고 스승은 훌륭한 교사라면, 좋은 교사는 잘 가르치는 사람이고, 훌륭한 교사는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교직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있다. 그것은 ‘교직은 철밥통이라 하고 방학이 있어서 좋겠다. 놀면서 월급 받는다’이다. 이 말에는 부러움과 질시가 같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교직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 말도 혐오한다. 좋은 대우와 안정적이기 때문에 ‘좋은 직업’이라는 말이다. 2015년 7월 15일 오바마 대통령은 오클라호마주 듀런트고등학교 에서 ‘한국은 교사들에게 의사만큼 봉급을 주고, 교사를 최고의 직업으로 여긴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 교육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아울러 교사는 존경받는 직업이라는 칭찬의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도 그랬고 10년이 지난 지금의 교단은 더 각박해지고 있다.
어느 직업이 그렇듯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일으키는 각종 돌발 상황을 관리해야 하고 학부모와의 마찰 등은 교사를 지치게 만든다. 특히 진상 학부모를 만나면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막무가내식 요구나 이해 불가의 교육이론을 나열하며 들이대는 학부모를 대한다는 것은 고충 중의 고충이다. 또한 근무 강도도 생각보다 강하다. 이전보다 전산화가 되어 행정절차가 간소화되어 간다고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내려오는 공문에 보고할 것들이 쌓인다. 근무시간 내내 쉬지 않고 일을 해야 업무를 다할 수 있다.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사무 처리를 하는 행정요원인지 현실을 착각할 때도 있다. 그러나 업무도 교육과 관련이 있다고 하니 무슨 이론을 둘러야 하는가?
이런 여러 악조건에서도 교사들이 위로를 받고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직도 교사를 교사로 바라봐 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스승은 학생에게 가르침으로써, 그리고 제자는 배움으로써 진보한다는 교학상장의 의미를 담은 헨리 반 다이크의 ‘무명 교사 예찬’, 조지 E. 모건의 ‘교사 예찬’, 엘바 자크리슨의 ‘교사 예찬’ 등이 교사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격려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격려도 이제 한계에 오지 않았나 싶다. 교단을 떠나는 젊은 선생님들의 수를 보며 알 수 있다.

아침 등교 시간이다. 한 아이가 교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나를 보자 반색하여 달려와 손을 잡는다. ‘선생님 기다렸어요’. '왜'라고 묻자 같이 교실에 가고 싶어서라고 한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이 내 일인 만큼 다시 한번 기쁨과 사랑의 기운이 가슴에서 뻗쳐오며 처진 어깨가 올라간다.
새 학년 학기가 시작된 지 석 달이 지나가고 있다. 다행히 첫 발령을 받은 선생님들도 무던히 적응 하며 잘 가고 있다.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의 길에 파고가 낮고 적기를,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마음에 상처를 입지 말고 굳건하고 평정한 마음의 성을 쌓고 걸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나이든 교사, 만년 평교사 어쩌면 오늘의 교단을 지키는 한몫이 바로 승진이나 출세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교단을 지키며, 학문에만 전념하는 교사들의 헌신이 아닐까 한다.
오월 생명의 계절이 꽃피고 있다. 힐끗 가벼이 봐 넘기던 푸름이 매 순간 소중하게 느껴진다. 말라 죽은 줄만 알았던 나무의 앙상한 가지마다 연록의 잎이 반짝일 때면 내 나이에 새삼스레 자신감이 생긴다. 겉모습은 주름져도 아직 마음은 열정과 사랑 헌신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