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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방학은 교사에게 영혼의 심폐소생술이다

​교직 사회에는 오랜 세월 전설처럼 내려오는 슬프고도 현학적인 명언이 하나 있다. 바로 “학기 중에 교사가 미칠 만하면 방학이 오고, 방학 때 교사가 살아날 만하면 개학이 온다”는 말이 그것이다. ​이보다 교사의 생체 주기를 완벽하게 입증한 의학적·심리학적 진단이 또 있을까? 3월의 설렘으로 시작한 학기는 5월의 잔혹한 행사 퍼레이드를 지나, 6~7월에 이르면 교실 전체가 거대한 ‘멘탈 탈곡기’로 변신한다. 30여 명의 혈기 왕성한 아이들이 뿜어내는 정열과, 산더미 같은 행정 서류, 여기에 때때로 걸려 오는 서늘한 학부모의 민원 전화까지 겹치면, 교사의 멘탈은 어느새 OMR 카드의 채점 오류처럼 새하얗게 질려버린다.

 

​바로 그 순간,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혹은 절벽 끝에 나타난 밧줄처럼 ‘방학(放學)’이라는 신성한 구원투수가 등판한다. ​세상 사람들은 교사의 방학을 보며 “팔자 좋은 철밥통”, “달콤한 놀음”, “여행을 위한 선물”이라며 부러움이 지나쳐 야유를 보낸다. 하지만 단언컨대, 교사에게 방학은 단순히 놀고먹는 유흥의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타들어 간 영혼에 수분을 공급하는 ‘의학적 치료(Healing)’이자, 타인에게 나눠줄 지혜를 다시 채워 넣는 ‘재충전의 심폐소생술’이다.

 

잠시 ‘'방학(放學)’의 의미를 살펴보자. ​우리가 무심코 쓰는 ‘방학’이라는 단어의 한자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철학적 반전이 숨어 있다. 놓을 방(放)에 배울 학(學), 즉 ‘배움을 잠시 놓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국가와 학교는 아이들과 교사에게 배움을 잠시 놓으라고 명령하는 것인가? 중국의 고전 《장자(莊子)》에는 ‘비어 있음이 빛을 낸다’는 뜻의 ‘허실생백(虛室生白)’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방이 비어 있어야 비로소 햇살이 들어와 환해지듯, 사람의 마음과 뇌도 비워내지 않으면 새로운 지혜와 온기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학기 중의 교사는 끊임없이 지식과 감정을 ‘퍼주는 존재’다. 그래서 학기 말이 다가올 쯤이면 배터리가 1% 남았는데 연신 고화질 영상을 재생하는 스마트폰과 같다. 방전 직전의 교사가 교단에 서면 어떻게 될까? 아이들의 작은 실수에도 신경이 예민해지고, 수업은 영혼 없는 지식의 나열이 되며, 교실은 차가운 기계적 공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 ​따라서 교사가 방학을 맞이해 집에서 멍을 때리든, 산을 오르든, 침대와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되든, 또는 여행의 여유있는 삶을 잠시라도 이어가든, 그것은 벼랑 끝에 선 교사가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정당방위’이자, 다음 학기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예방주사’라 할 수 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와싱턴 대학교의 신경과학자 마커스 라이클(Marcus Raichle) 교수는 인간의 뇌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할 때 작동하는 특정한 뇌 부위인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Default Mode Network)’를 발견했다.(Marcus E. Raichle, 『The Brain's Default Mode Network』, Annual Review of Neuroscience). 이 글의 핵심은 ​뇌가 멍하게 쉬는 동안 DMN이 활성화되면서, 그동안 축적된 정보들이 정리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감정적 상처가 치유된다는 것이다. 이는 의학 관련 글이지만 교육 잡지에서도 발견할 수 있고 글 속에서도 흔히 인용하는 글이기도 하다.

 

​교사의 방학은 바로 이 DMN을 가동하는 골든타임이라 할 것이다. ​교재 연구와 평가 기준표라는 좁은 굴레에서 벗어나, 평소 읽고 싶었던 고전과 소설책을 들추는 시간이기도 하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나는 왜 교사가 되었는가?”, “그 아이는 왜 그때 그런 말을 했을까?” 등등 조용히 지난 학기를 사색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사색의 시간을 거친 교사는 개학 날 완전히 다른 사람, 즉 눈을 비비고야 상대를 알아볼 수 있다는 삼국지 고사의 ‘괄목상대(刮目相對)’한 상태로 탈바꿈하게 된다. 비워진 마음에 ‘사유의 깊이’가 들어차고, 날카로웠던 감정의 가시가 깎여 나가 유연하고 너그러운 ‘선한 영향력의 인격체’로 거듭나는 것이다. 교사의 방학 동안 깊어진 영혼의 공간은 2학기 교실에서 아이들을 안아줄 품의 크기와 정확히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그의 저명한 저서 『에세(Essais)』에서 “타인을 가르치려는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의 영혼을 가꿔야 한다”고 말했다. 영혼이 가뭄처럼 타들어 간 스승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어떻게 온전한 감수성과 지혜를 배울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교사들을 비난하고 질투하기보다는 방학 동안 마음 놓고 힐링하라고 격려할 일이다. 단지 부러움과 질투로 폄훼할 일이 결코 아닌 것이다.

 

교사 제위여, ​학기 중에 아이들에게 치여 차마 읽지 못했던 무거운 고전을 꺼내 들어라. ​멍하니 창밖의 녹음을 바라보며 영혼의 먼지를 털어내라. ​땀 흘려 산을 오르고, 좋은 음악에 온몸을 내맡겨라. ​그것은 결코 게으름이 아니다. 2학기에 만날 아이들에게 더 맑은 눈빛과 더 깊은 질문, 그리고 더 따뜻한 미소를 선물하기 위해 준비하는 ‘가장 숭고한 수업 준비’라 할 수 있다.

 

​방학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짧고, 개학은 다시 거대하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방학 동안 사색과 독서로 영혼을 단단하게 채운 교사는 더 이상 학기 중의 풍랑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학부모와 사회에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에게 방학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사랑과 지혜의 연료’를 주유하는 시간”이라고 말이다.

 

​이 짧고도 눈부신 방학의 끝자락, 마음을 비우고 지혜를 채운 모든 선생님들이 다시 교단에 서는 날, 그들의 손끝에서 대한민국 교실을 환하게 밝힐 가장 아름다운 배움의 불꽃이 다시 피어오르기를 간절히 응원하고자 한다. 잘 쉬어라, 교사들이여! 그대들이 살아나야 대한민국 교육이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교사가 살아야 학생이 살고 결국 국가가 산다”는 진리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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