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 파리 외곽의 한 공립 고등학교 앞, 낡은 학교 건물의 창문 사이로 찬바람이 몰아치고, 부족한 교사 수로 인해 파행 운영되는 교실과 낡은 교육 시스템으로 인해 학생들은 당장 상급학교 진학과 진로에 불이익을 당하며 더 이상 미래를 꿈꾸지 못하고 학교 밖으로 나와 시위의 현장을 펼쳤다. 여기에는 공교육의 질적 저하와 열악한교육 시설그리고 양극화된 교육 기회에 분노한 고등학생들의 국가에 대한 불만과 저항이 저마다의 가슴에 깊이 내재(內在)되어 있었다. 교사와 시민들이 공감하여 참여함으로써 순식간에 거리를 점령하고 급기야는 폭력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는 선진국이자 대표적 복지국가, 인권의 보루라 불리던 프랑스에서 일어난 것이라 믿기 어려운 시위로 순식간에 전국으로 그리고 유럽의 국가들로 확산되었다. 문제는 이 순수한 학생들의 저항과 공교육 정상화 요구를 틈타, 검은 옷과 복면으로 무장한 정체불명의 극단적 아나키스트·극좌 투쟁 집단인 ‘블랙 블록(Black Bloc)’이 침투해 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폭력적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조직적 지도부도 없이 익명성 뒤에 숨어 화염병을 던지고 공공시설을 파괴하는 이들의 폭력 사태는, 평화롭던 학생 시위를
매년 10월의 마지막 밤이 오면 거리는 기괴하고도 화려한 유령과 괴물들로 메워진다. 아이들은 손에 호박 바구니를 들고 집집마다 벨을 누르며 “트릭 오어 트리트(Trick or Treat)”를 외치고, 청년들은 평소의 모습을 벗어던진 파격적인 의상(Cosplay)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한때 특정 문화권의 전유물이었던 할로윈(Halloween)은 이제 국경과 인종을 넘어 전 세계가 함께 즐기는 글로벌 축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할로윈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복잡미묘하다. ‘상업주의의 침투’, ‘외래문화의 무분별한 수용’, 혹은 ‘위험하고 무질서한 유흥’이라는 비판적 시각과 ‘자유로운 자기표현의 장’이자 ‘글로벌 문화 체험’이라는 긍정적 시각이 팽배하게 맞서고 있다. 할로윈을 단순히 즐기고 소비하거나, 혹은 반대로 배척해야 할 외부 문화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할로윈의 뿌리를 깊이 탐구하고, 왜 세계가 이 낯선 축제에 열광하는지 파헤치며, 나아가 한국 사회와 교육 현장에서 이 축제가 갖는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해야 할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근래 새롭게 할로윈 축제의 모습을 다시 쓴 참극의 역사가 우리에게 존재하기 때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평생을 항일(抗日)과 극일(克日)의 정신을 지침 삼아 교단을 지켜온 원로 교육자의 고백 하나로 이 글을 시작하려 한다. 솔직히 말하면 필자에게 일본은 오랜 시간 동안 ‘가깝고도 먼 나라 그 자체’였다. 뉴스에서 빈번하게 들려오는 독도 문제나 역사 왜곡 소식을 들을 때면 여전히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토종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종국적으로 이 글의 진의를 알아채게 되면 앞선 말과는 다른 상황에 “(당신도) 별도리가 없군요”하고 살짝 미간을 찌푸릴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정치적 앙금을 잠시 내려놓고 교육, 문학, 그리고 스포츠 등 전반적인 영역으로 확대경을 통해 들여다본 일본은, 세간에서는 “저무는 나라”라고 평가하거나 “대한민국이 일본보다 잘 산다”라며 다소 들뜬 기분에 있을지라도, 솔직히 ‘부럽고도 무서운 나라’라는 인상을 지을 수 없다. 참고로 필자는 금년 6월에 일본 홋가이도를 다녀와 느낀 소감을 일차적으로 언론 매체에 글로써 피력한 바가 있다. 특히 금년에 치러진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보여준 일본 축구의 발전 모습은 비록 상위권 진출에는 실패했으나 축구 최정상 국가들과의 비등한 경
최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또다시 씁쓸하고도 치명적인 지적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는 작년에 이어 2년 연속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일종의 신사협정을 위반한 것으로 이 시대 청년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공정성을 파괴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연인즉, 올해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최종 합격자 152명 중 서울대 출신이 94명으로, 전체의 61.8%에 달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더 우리 사회를 씁쓸하게 만든 것은 그 과정의 공정성에 던져진 의문이다. 타 대학들은 모두 ‘세로 형식’의 성적증명서를 사용하는 반면, 오직 서울대만 ‘가로 형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 것이다. 신사협정(Gentlemen's Agreement)이란 국가 간 또는 개인·단체 간에 법적 구속력이나 문서화된 계약 없이, 상호 간의 신의와 명예를 바탕으로 맺는 비공식적 약속(또는 합의)을 말한다, 이는 비록 법적 구속력이 없어 한쪽이 이를 어기더라도 법적인 처벌이나 손해배상 청구를 하기 어렵다. 하지만 도덕적·정치적 구속력은 사회가 기대하는 강한 약속에 기인한다. 법 대신 ‘상호 신뢰’, ‘명예’가 이행의 원동력이 되어 위반 시에는 도
최근 경기부천교육지원청이 추석 연휴를 기해 아파트 단지 내에 설치한 “가르치기만 하십시오. 지켜드리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은 짧은 문장이지만 그 속에는 오늘날 우리 교육이 처한 현실과 교육행정의 책무가 함께 들어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이 현수막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교육청의 의도와 지향점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으나 가르침을 본업으로 하는 교사들에게 이 글만큼 격려와 응원이 되는 정책이 있을까 싶다. 이 글에서는 교사의 측면에서 이 슬로건이 내세우는 의미와 목적을 살펴보고 교육 당국의 의지와 비전을 높이 사기 위한 방안으로 이를 탐색해 보고자 한다. 한때 교사는 교실의 주인이었다. 학생을 가르치고 생활을 지도하며 학부모와 소통하는 일이 교사의 본업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교사는 수업만으로도 부족한 존재가 되었다. 민원에 답하고, 갈등을 중재하고, 각종 행정업무를 처리하며, 때로는 자신의 교육적 판단 하나하나를 설명하고 방어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특히 교육에도 ‘소비자주의’가 널리 침투함에 따라 공교육을 서비스로 간주하며 마치 학부모라는 고객이 왕인 양 교사의 교육활동에 지나친 요구와 간섭,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교사가 이러한 서비스
매년 10월 11일은 고려대장경이 완성된 1251년 10월 11일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기 위해 출판계가 1987년에 제정한 ‘책의 날’이다. 수백 년 전 우리의 선조들이 숭고한 염원을 담아 목판에 한 자 한 자 새겨 넣었던 그 거대한 지혜의 유산은, 오늘날 디지털 화면의 불빛 속에서 파편화된 정보와 자극적인 영상에 밀려 점점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다. 202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격년 발표) 결과에 의하면 대한민국 국민의 연간 종합독서율(교과서, 학습참고서, 수험서, 잡지, 만화 등을 제외한 일반도서를 1년간 1권 이상 읽거나 들은 비율)은 충격적이다. 성인 연간 종합독서율은 38.5% 즉, 성인 10명 중 6명 이상이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독서 인구 저하가 심각한 사회적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런 뼈아픈 현실 속에서, ‘책의 날’이 갖는 무게감은 우리에게 단순한 기념일 이상의 깊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이 침묵의 시대에 오직 책을 통해 삶의 변혁을 이뤄낸 생생한 다독가들의 증언은, 왜 우리가 다시 활자의 바다로 뛰어들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등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사회 각계에서 독서를 통해 자신
오늘날 K-문화의 세계적인 유행에 따라 우리의 ‘한글’은 세계인이 각별한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배움의 욕망을 자극하는 문자로 위상을 견지하고 있다. 한글은 역사적으로 창제 당시(1443년)부터 ‘언문’ → ‘훈민정음’ →‘한글’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리기도 했다. 특히 여성들이 좋아하고 백성들 사이에서 확산의 큰 역할을 하게 됨에 따라 한글을 비하하는 ‘암글’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반면에 기득권을 가진 사대부들은 ‘한자’만이 진정한 글, 즉‘진서’라고 칭하며 상대적으로 한글에 대해서는 배척에 나선 비운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올해는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이다. 1446년, 우리 민족의 성군 세종대왕은 백성이 쉽게 익혀 날마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새 문자를 세상에 내놓았다. 더욱 뜻깊은 것은 2026년이 한글날의 전신인 ‘가갸날’을 처음 기념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는 사실이다. 580년 전 백성을 위해 탄생한 문자가 100년 전 민족의 자존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손에서 기념일로 되살아났고,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유산으로 우뚝 섰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는 한글날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 단지 태극기를 게양하고 세종대왕을 기
지난 9월 19일부터 시작해 16일간의 열전을 거친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의 성화가 꺼졌다. 아시아 45개 국가·지역의 선수들이 땀과 눈물로 승부를 겨룬 이번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폐막 전날까지 금메달 39개로 종합 3위를 달렸다. 원래 목표했던 금메달 40개에는 하나가 모자랐지만, 숫자만으로 이번 대회의 의미를 평가하기에는 우리가 놓친 것이 많지만 오히려 얻은 것도 많음에 위안을 삼고자 한다. 이번 대회를 지켜보면서 솔직히 운영상의 아쉬움은 매우 컸다. 이것이 과거 선진국 일본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크게 실망과 분개하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대회 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갖가지 혼선과 실수에서 출발했다. 한때 세계가 부러워하던 ‘축소 지향의 일본’이란 이름답게 치밀함과 정교함을 기대했던 만큼 실망은 더 컸다. 하지만 경기장 안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반전의 다른 장면들이 펼쳐졌다. 그곳에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교사들이 있었다. 바로 출전한 우리 선수들이었다. 한국 야구는 일본과의 결승에서 3-1로 승리하며 아시안게임 5연패를 달성했다. 특히 8회 김도영과 문보경의 활약으로 3-1로 앞서간 뒤
우리의 초중고 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학부모 간의 신뢰가 붕괴된 서글픈 현실은 단순히 ‘교권이 추락했다’거나 ‘학부모의 이기주의가 심각하다’는 식의 피상적인 진단으로는 절대 풀어낼 수 없는 문제다. 이는 오늘날 교실 내 신뢰 자본(Social Capital)이 완전히 파탄이 났기 때문이다. 신뢰가 붕괴된 현실의 원인을 3가지 관점으로 압축해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교육의 ‘소비자주의(Consumerism) 전환’과 공공성의 해체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학교라는 공간이 ‘함께 인성을 키우는 공적인 공동체’에서 ‘내가 돈과 세금을 내고 지식 서비스를 구매하는 계약 관계’로 급격히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학부모는 자신을 ‘소비자’로, 교사를 ‘서비스 제공자’로 인식하고 원치 않는 서비스는 컴플레인을 걸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비자의 기본 생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지불한 비용(세금, 기회비용) 대비 내 아이가 최대의 이익과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권리 의식’일 것이다. 소비자주의 메커니즘 안에서는 교사의 권위나 지도권이 ‘고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부당한 행위’로 손쉽게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세금을 내는데 왜
필자는 지금도 과거 어느 고등학교에 재직 시에 아주 특이한 사정을 목격한 경험을 잊을 수 없다. 어느 주요 교과의 정규 교사 7명이 모두 휴직 상태에 들어가 전원이 기간제 교사로 채워진 경우였다. 다른 주요 교과도 미소한 차이는 있지만 대개 7~8명의 정규 교사가 절반 정도는 기간제 교사로 충원되는 경우가 흔한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학교는 일체의 흔들림 없이 기초 학력 향상이나 내실 있는 수업 등을 강조하며 밖으로 전혀 이런 상황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만큼 기간제 교사 충원이 일반화되었고 그 맡은 역할이나 책임도 차별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매년 학년 초, 각 학교의 학생들은 학교 측의 인사 방침을 통해 정규 교사와 기간제 교사를 구별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이 지나면 “우리 선생님은 기간제 교사다”라고 알아차리며 실망 아닌 실망의 모습을 보인다. 현재 우리 초중고 교육 현장은 기간제 교사가 없이는 학사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그 숫자와 역할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수용하는 태도는 겉과 속이 다르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의 인지처럼 눈에 띄지 않게 평가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최근 우연히 달력을 넘기다 순간 동작을 멈추고 말았다. 내 나이 어느덧 우리 나이로 예순일곱, 주민등록상 정년이 만 62세였으니, 벌써 몇 해가 흐른 것이다. 교단을 떠난 뒤의 시간은 교단에 있을 때보다 이상하게도 훨씬 빠르게 흐른 것 같다. 그래서 삶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해 달려간다고 하는가 보다. 속도 계기판에 찍힌 속도가 시속 67km였으니 말이다. 학교에 있을 때는 시속 40~50km로 하루가 그렇게 천천히 지난다 싶더니, 학교를 떠나고 나니 이젠 “세월이 유수(流水)처럼” 한 해가 한 계절처럼 지나가고 있다. 40년. 참 긴 세월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인생의 가장 싱싱한 시절을 학교에서 보내며 정열과 사도(師道) 실천의 거룩한 임무를 다했다. 아직은 앳된 청년의 얼굴로 교단에 들어가 어느덧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되어 순백의 머리칼로 치장하고 학교를 떠났다. 그 사이 대한민국 교육은 몇 번이나 얼굴을 바꾸었다. 교과서가 바뀌고, 입시제도가 바뀌고, 교육과정이 바뀌고, 컴퓨터가 교실에 들어오더니 스마트폰과 인공지능까지 학생들의 손에 들어왔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순수한 꿈을 꾸었고, 나는 교사로서 여전히 그 꿈을
2023년 서이초 20대 신규 교사의 사망 사건이 ‘교권 보호 5법’의 퍼스트펭귄이 되어 순차적인 교권 보호를 위한 법령의 통과를 이끌었다. 이는 공교육 보호를 위한 거대한 제도적 진전이었다. 예컨대, 교원지위법으로 인해 최근 교원 대상 아동학대 신고 385건 중 281건(73%)에 대해 교육감이 ‘정당한 생활지도’라는 의견이 제출되었고, 수사가 완료된 110건 중 95건(86.3%)은 불기소 또는 불입건으로 종결되기도 했다. 또한 아동학대처벌법으로 인해 정당한 교육활동과 학생 생활지도가 아동학대로 오해받는 것을 방지하고, 교육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한 사안 처리가 가능해진 것은 대표적인 긍정적 효과라 할 것이다. 하지만 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현장 교사들이 체감하는 온도는 여전히 차갑고 잔혹하다. 교육부 및 각 시·도교육청 통계에 따르면, 교원지위법 개정 이후에도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 심의 건수는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매년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교사 사기 지수의 경고음도 크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의 교원 인식 조사에 따르면, “교권 5법 통과 이후 현장 체감 변화가 크지 않다”거나 “여전히 악성 민원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고 응답
우리는 대한민국 교육을 말할 때 습관처럼 따라 붙이는 수식어들이 있다. ‘지옥 같은 입시 경쟁’, ‘한 줄 세우기식 평가’, ‘공교육의 해체’ …. 수십 년간 언론과 교육 평론가들은 한국 교육의 병리적 현상을 제거하기 위해 날카롭게 펜 끝을 세워왔다. 그러나 비판의 칼날이 너무 예리했던 탓일까? 우리는 그 칼끝 밑에 숨겨진 한국 교육 본연의 위대한 유산마저 스스로 도려내는 우(愚)를 자행해 왔다. 외국의 교육학자들과 정치가들은 한국을 바라볼 때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자원 하나 없는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어떻게 한두 세대 만에 세계 최첨단 디지털 국가가 될 수 있었는가?” 그들의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하나, 바로 ‘교육’이다. 우리가 스스로 폄하하기 바빴던 K-교육은 실상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강력한 DNA를 내포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교육에 대한 과도한 자학(自虐, self-hatred)을 멈추고, 한국 교육이 가진 가장 강력한 장점과 유산이 무엇인지를 냉철하게 재고(再考)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미래 사회에 맞게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해 획기적인 담론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잠시 우리 교육에 대해 냉
최근 경기도의 대표적 다문화 도시인 안산을 비롯해 전국 도로 위에 중국산 전기차와 이륜차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다. 이는 저렴한 가격과 화려한 디자인, 첨단 제어를 내세운 마케팅으로 인해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상황에서 무언가 서늘한 기시감을 느낀다. 불과 수년 전 몽골과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도로를 가득 채웠던 중국산 버스와 자동차들의 운명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초기 가성비로 큰 인기를 끌었던 중국산 차량들은 험준한 지형과 극심한 기온 변화라는 현장의 조건을 견디지 못했다. 부품 수급 불능, 조기 부식, 엔진 결함이 잇따랐고, 결국 수많은 차량이 폐차장으로 직행하며 해당 국가들의 대중교통 정책을 대혼란에 빠뜨렸다. 화려한 스펙만을 믿고 ‘현장 검증’ 없이 속전속결로 도입한 정책이 가져온 예산 낭비이자 참혹한 ‘정책적 도박’의 결과였던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 현장이 딱 이 모습이다. 다양한 교육정책들이 ‘증명(검증)’이 안 된 채 도입됨으로써 마치 ‘도박’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탁상공론과 유사한 것으로 현장의 적합성과 실효성에 대한 엄밀한 검증 없이, 정권의 국정 홍보와 치적 쌓기를 위해
최근 매우 반가우면서도 가슴 한구석을 묵직하게 만드는 기사가 언론을 장식했다. 지난 7월 23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가 국적심의위원회를 열어 세계적인 우수 인재 특별귀화 8명, 국적회복 8명 등 총 16명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부과했다고 한다. 이번 명단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은 인물은 여성 최초의 예일대 종신교수이자 수학과 석좌교수이고 미국 수학회 부회장을 역임한 세계적 수학자 오희 교수와첨단 공학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밀자이 모하메드 연구원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석학들이었다. 세계 최고 학문의 봉우리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인물들이 “나의 나라, 대한민국”을 선택하고 한국 국적을 가슴에 품었다는 소식은 실로 가슴 벅찬 일이다. 변변한 천연자원 하나 나지 않는 나라에서 오직 ‘인적 자원’ 하나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대한민국에, 세계 최고 수준의 지적 자산이 다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단 쌍수를 들어 크게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가슴 뿌듯한 자긍심 뒤편으로, 한 가지 냉정한 현실에 근거한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가 어렵게 모셔 온 이 세계적 석학들에게 과연 마음껏 연구하고 인재를 키울 ‘진짜 무대’를 제공할 준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