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K-문화의 세계적인 유행에 따라 우리의 ‘한글’은 세계인이 각별한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배움의 욕망을 자극하는 문자로 위상을 견지하고 있다. 한글은 역사적으로 창제 당시(1443년)부터 ‘언문’ → ‘훈민정음’ →‘한글’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리기도 했다. 특히 여성들이 좋아하고 백성들 사이에서 확산의 큰 역할을 하게 됨에 따라 한글을 비하하는 ‘암글’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반면에 기득권을 가진 사대부들은 ‘한자’만이 진정한 글, 즉‘진서’라고 칭하며 상대적으로 한글에 대해서는 배척에 나선 비운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올해는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이다. 1446년, 우리 민족의 성군 세종대왕은 백성이 쉽게 익혀 날마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새 문자를 세상에 내놓았다. 더욱 뜻깊은 것은 2026년이 한글날의 전신인 ‘가갸날’을 처음 기념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는 사실이다. 580년 전 백성을 위해 탄생한 문자가 100년 전 민족의 자존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손에서 기념일로 되살아났고,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유산으로 우뚝 섰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는 한글날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 단지 태극기를 게양하고 세종대왕을 기
지난 9월 19일부터 시작해 16일간의 열전을 거친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의 성화가 꺼졌다. 아시아 45개 국가·지역의 선수들이 땀과 눈물로 승부를 겨룬 이번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폐막 전날까지 금메달 39개로 종합 3위를 달렸다. 원래 목표했던 금메달 40개에는 하나가 모자랐지만, 숫자만으로 이번 대회의 의미를 평가하기에는 우리가 놓친 것이 많지만 오히려 얻은 것도 많음에 위안을 삼고자 한다. 이번 대회를 지켜보면서 솔직히 운영상의 아쉬움은 매우 컸다. 이것이 과거 선진국 일본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크게 실망과 분개하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대회 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갖가지 혼선과 실수에서 출발했다. 한때 세계가 부러워하던 ‘축소 지향의 일본’이란 이름답게 치밀함과 정교함을 기대했던 만큼 실망은 더 컸다. 하지만 경기장 안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반전의 다른 장면들이 펼쳐졌다. 그곳에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교사들이 있었다. 바로 출전한 우리 선수들이었다. 한국 야구는 일본과의 결승에서 3-1로 승리하며 아시안게임 5연패를 달성했다. 특히 8회 김도영과 문보경의 활약으로 3-1로 앞서간 뒤
우리의 초중고 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학부모 간의 신뢰가 붕괴된 서글픈 현실은 단순히 ‘교권이 추락했다’거나 ‘학부모의 이기주의가 심각하다’는 식의 피상적인 진단으로는 절대 풀어낼 수 없는 문제다. 이는 오늘날 교실 내 신뢰 자본(Social Capital)이 완전히 파탄이 났기 때문이다. 신뢰가 붕괴된 현실의 원인을 3가지 관점으로 압축해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교육의 ‘소비자주의(Consumerism) 전환’과 공공성의 해체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학교라는 공간이 ‘함께 인성을 키우는 공적인 공동체’에서 ‘내가 돈과 세금을 내고 지식 서비스를 구매하는 계약 관계’로 급격히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학부모는 자신을 ‘소비자’로, 교사를 ‘서비스 제공자’로 인식하고 원치 않는 서비스는 컴플레인을 걸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비자의 기본 생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지불한 비용(세금, 기회비용) 대비 내 아이가 최대의 이익과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권리 의식’일 것이다. 소비자주의 메커니즘 안에서는 교사의 권위나 지도권이 ‘고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부당한 행위’로 손쉽게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세금을 내는데 왜
필자는 지금도 과거 어느 고등학교에 재직 시에 아주 특이한 사정을 목격한 경험을 잊을 수 없다. 어느 주요 교과의 정규 교사 7명이 모두 휴직 상태에 들어가 전원이 기간제 교사로 채워진 경우였다. 다른 주요 교과도 미소한 차이는 있지만 대개 7~8명의 정규 교사가 절반 정도는 기간제 교사로 충원되는 경우가 흔한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학교는 일체의 흔들림 없이 기초 학력 향상이나 내실 있는 수업 등을 강조하며 밖으로 전혀 이런 상황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만큼 기간제 교사 충원이 일반화되었고 그 맡은 역할이나 책임도 차별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매년 학년 초, 각 학교의 학생들은 학교 측의 인사 방침을 통해 정규 교사와 기간제 교사를 구별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이 지나면 “우리 선생님은 기간제 교사다”라고 알아차리며 실망 아닌 실망의 모습을 보인다. 현재 우리 초중고 교육 현장은 기간제 교사가 없이는 학사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그 숫자와 역할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수용하는 태도는 겉과 속이 다르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의 인지처럼 눈에 띄지 않게 평가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최근 우연히 달력을 넘기다 순간 동작을 멈추고 말았다. 내 나이 어느덧 우리 나이로 예순일곱, 주민등록상 정년이 만 62세였으니, 벌써 몇 해가 흐른 것이다. 교단을 떠난 뒤의 시간은 교단에 있을 때보다 이상하게도 훨씬 빠르게 흐른 것 같다. 그래서 삶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해 달려간다고 하는가 보다. 속도 계기판에 찍힌 속도가 시속 67km였으니 말이다. 학교에 있을 때는 시속 40~50km로 하루가 그렇게 천천히 지난다 싶더니, 학교를 떠나고 나니 이젠 “세월이 유수(流水)처럼” 한 해가 한 계절처럼 지나가고 있다. 40년. 참 긴 세월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인생의 가장 싱싱한 시절을 학교에서 보내며 정열과 사도(師道) 실천의 거룩한 임무를 다했다. 아직은 앳된 청년의 얼굴로 교단에 들어가 어느덧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되어 순백의 머리칼로 치장하고 학교를 떠났다. 그 사이 대한민국 교육은 몇 번이나 얼굴을 바꾸었다. 교과서가 바뀌고, 입시제도가 바뀌고, 교육과정이 바뀌고, 컴퓨터가 교실에 들어오더니 스마트폰과 인공지능까지 학생들의 손에 들어왔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순수한 꿈을 꾸었고, 나는 교사로서 여전히 그 꿈을
2023년 서이초 20대 신규 교사의 사망 사건이 ‘교권 보호 5법’의 퍼스트펭귄이 되어 순차적인 교권 보호를 위한 법령의 통과를 이끌었다. 이는 공교육 보호를 위한 거대한 제도적 진전이었다. 예컨대, 교원지위법으로 인해 최근 교원 대상 아동학대 신고 385건 중 281건(73%)에 대해 교육감이 ‘정당한 생활지도’라는 의견이 제출되었고, 수사가 완료된 110건 중 95건(86.3%)은 불기소 또는 불입건으로 종결되기도 했다. 또한 아동학대처벌법으로 인해 정당한 교육활동과 학생 생활지도가 아동학대로 오해받는 것을 방지하고, 교육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한 사안 처리가 가능해진 것은 대표적인 긍정적 효과라 할 것이다. 하지만 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현장 교사들이 체감하는 온도는 여전히 차갑고 잔혹하다. 교육부 및 각 시·도교육청 통계에 따르면, 교원지위법 개정 이후에도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 심의 건수는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매년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교사 사기 지수의 경고음도 크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의 교원 인식 조사에 따르면, “교권 5법 통과 이후 현장 체감 변화가 크지 않다”거나 “여전히 악성 민원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고 응답
우리는 대한민국 교육을 말할 때 습관처럼 따라 붙이는 수식어들이 있다. ‘지옥 같은 입시 경쟁’, ‘한 줄 세우기식 평가’, ‘공교육의 해체’ …. 수십 년간 언론과 교육 평론가들은 한국 교육의 병리적 현상을 제거하기 위해 날카롭게 펜 끝을 세워왔다. 그러나 비판의 칼날이 너무 예리했던 탓일까? 우리는 그 칼끝 밑에 숨겨진 한국 교육 본연의 위대한 유산마저 스스로 도려내는 우(愚)를 자행해 왔다. 외국의 교육학자들과 정치가들은 한국을 바라볼 때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자원 하나 없는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어떻게 한두 세대 만에 세계 최첨단 디지털 국가가 될 수 있었는가?” 그들의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하나, 바로 ‘교육’이다. 우리가 스스로 폄하하기 바빴던 K-교육은 실상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강력한 DNA를 내포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교육에 대한 과도한 자학(自虐, self-hatred)을 멈추고, 한국 교육이 가진 가장 강력한 장점과 유산이 무엇인지를 냉철하게 재고(再考)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미래 사회에 맞게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해 획기적인 담론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잠시 우리 교육에 대해 냉
최근 경기도의 대표적 다문화 도시인 안산을 비롯해 전국 도로 위에 중국산 전기차와 이륜차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다. 이는 저렴한 가격과 화려한 디자인, 첨단 제어를 내세운 마케팅으로 인해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상황에서 무언가 서늘한 기시감을 느낀다. 불과 수년 전 몽골과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도로를 가득 채웠던 중국산 버스와 자동차들의 운명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초기 가성비로 큰 인기를 끌었던 중국산 차량들은 험준한 지형과 극심한 기온 변화라는 현장의 조건을 견디지 못했다. 부품 수급 불능, 조기 부식, 엔진 결함이 잇따랐고, 결국 수많은 차량이 폐차장으로 직행하며 해당 국가들의 대중교통 정책을 대혼란에 빠뜨렸다. 화려한 스펙만을 믿고 ‘현장 검증’ 없이 속전속결로 도입한 정책이 가져온 예산 낭비이자 참혹한 ‘정책적 도박’의 결과였던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 현장이 딱 이 모습이다. 다양한 교육정책들이 ‘증명(검증)’이 안 된 채 도입됨으로써 마치 ‘도박’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탁상공론과 유사한 것으로 현장의 적합성과 실효성에 대한 엄밀한 검증 없이, 정권의 국정 홍보와 치적 쌓기를 위해
최근 매우 반가우면서도 가슴 한구석을 묵직하게 만드는 기사가 언론을 장식했다. 지난 7월 23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가 국적심의위원회를 열어 세계적인 우수 인재 특별귀화 8명, 국적회복 8명 등 총 16명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부과했다고 한다. 이번 명단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은 인물은 여성 최초의 예일대 종신교수이자 수학과 석좌교수이고 미국 수학회 부회장을 역임한 세계적 수학자 오희 교수와첨단 공학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밀자이 모하메드 연구원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석학들이었다. 세계 최고 학문의 봉우리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인물들이 “나의 나라, 대한민국”을 선택하고 한국 국적을 가슴에 품었다는 소식은 실로 가슴 벅찬 일이다. 변변한 천연자원 하나 나지 않는 나라에서 오직 ‘인적 자원’ 하나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대한민국에, 세계 최고 수준의 지적 자산이 다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단 쌍수를 들어 크게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가슴 뿌듯한 자긍심 뒤편으로, 한 가지 냉정한 현실에 근거한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가 어렵게 모셔 온 이 세계적 석학들에게 과연 마음껏 연구하고 인재를 키울 ‘진짜 무대’를 제공할 준비가
오늘날 유·초·중·고 학교 현장이 겪고 있는 진통과 수난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아프다. 무너진 교권을 바로 세우고 교육을 조금이라도 정상화하기 위해 밤낮으로 애쓰는 수많은 선생님의 눈물겨운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들려오는 현실의 소식들은 때로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최근 한 주요 언론을 통해 보도된 '여중생 제자 20여 차례 성폭행-추행한 40대 교사 구속기소'라는 기사는 참으로 수치스럽고 분노를 자아내며 차마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이에 앞서 근래 사회를 분노케 했던 초등학생 대상의 소속 학교 M씨라는 사람의 참혹한 살인 사건 역시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바른길로 인도해야 할 공간에서 벌어진 이러한 일은 단순한 사건·사고의 차원을 넘어 학교에 대한 우리 사회 전체의 신뢰를 뿌리째 흔드는 중대한 범죄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깊은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남는다. 바로 언론이 피의자를 부르는 ‘호칭’의 문제다.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여전히 ‘교사’라는 직함과 칭호를 붙여 보도하는 것이 과연 꼭 필요한가? 아이들의 미래를 밝히는 교육의 현장에서 묵묵히 헌신
“선생님보다 챗GPT가 더 잘 가르치는데요?” 이 말은 가상의 질문이 아니다. 이미 오늘의 학교 교실 현장에서 아이들이 피부로 느끼며 던지는 솔직하고도 서늘한 물음이다. 실제로 2024년 발표된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미래교육 인식 조사’에 따르면, 중·고생의 60% 이상이 “단순 지식 습득이나 문제 풀이 설명은 교사보다 인공지능(AI) 튜터가 더 효율적”이라고 응답했다.(한국교육개발원, 《AI 시대 학교교육의 역할 재정립 연구》, 2024) 전통적으로 지식의 전수자(Knowledge Transmitter)로서 교사가 가졌던 독점적 권위는 이미 완전히 해체되었다. 왜냐면 AI는 지치지 않고, 화내지 않으며, 학생 각자의 수준에 맞춰 24시간 1:1 맞춤형 해설을 제공하기 때문에 지식 전달의 속도와 정확도 면에서 인간 교사는 더 이상 AI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문명사적 대전환기 앞에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본질적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미래 교육에서 교사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그리고 지금과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이 글에서는 몇 가지 관점에서 이를 탐색해 보고자 한다. 첫째, 지식의 공급자에서 ‘맥락의
최근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나름 위원들의 노력의 산물로 총체적인 하나의 안(案)을 국민에게 보고하는 형식으로 위원장이 직접 “설명드립니다”라며 학교시민교육 국가 기본원칙(안)을 발표했다. 여기서 한눈에 띄는 요지는 독일의 저명한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표방한 것으로 다가온다. 우리에게 이는 과거 전범국가였던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교육을 통해 완전한 민주시민 국가로 발전한 것에 대한 부러움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계기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러한 발표의 배경으로는 최근 교실까지 침투한 혐오와 차별을 배격하고, 사회적으로 갈등이 첨예한 시의성 있는 공적 논쟁을 교실 안으로 끌어들여 학생들의 자율적 판단력과 민주시민 역량을 키우겠다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학교가 침묵하면 그 공백은 유튜브가 차지한다”라는 국교위 위원장의 발언은 학교가 정파적 시비를 두려워해 침묵하는 사이, 학생들이 숏폼과 자극적인 댓글, 검증되지 않은 정보망 속에서 혐오의 언어를 학습한다는 국가기관의 진단 자체는 매우 공감할 만하다. 그러나 아름다운 선언 뒤에 숨겨진 현실적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면 위험천만한 오판이 눈에 띈다. 현장의 준비와 구체적인 방어 시스
교직 사회에는 오랜 세월 전설처럼 내려오는 슬프고도 현학적인 명언이 하나 있다. 바로 “학기 중에 교사가 미칠 만하면 방학이 오고, 방학 때 교사가 살아날 만하면 개학이 온다”는 말이 그것이다. 이보다 교사의 생체 주기를 완벽하게 입증한 의학적·심리학적 진단이 또 있을까? 3월의 설렘으로 시작한 학기는 5월의 잔혹한 행사 퍼레이드를 지나, 6~7월에 이르면 교실 전체가 거대한 ‘멘탈 탈곡기’로 변신한다. 30여 명의 혈기 왕성한 아이들이 뿜어내는 정열과, 산더미 같은 행정 서류, 여기에 때때로 걸려 오는 서늘한 학부모의 민원 전화까지 겹치면, 교사의 멘탈은 어느새 OMR 카드의 채점 오류처럼 새하얗게 질려버린다. 바로 그 순간,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혹은 절벽 끝에 나타난 밧줄처럼 ‘방학(放學)’이라는 신성한 구원투수가 등판한다. 세상 사람들은 교사의 방학을 보며 “팔자 좋은 철밥통”, “달콤한 놀음”, “여행을 위한 선물”이라며 부러움이 지나쳐 야유를 보낸다. 하지만 단언컨대, 교사에게 방학은 단순히 놀고먹는 유흥의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타들어 간 영혼에 수분을 공급하는 ‘의학적 치료(Healing)’이자, 타인에게 나눠줄 지혜를 다시 채워
오락가락하는 늦은 장맛비가 내리며 지독하게 습하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계절, 7월이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아스팔트는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고, 에어컨 바람 없이는 단 한 순간도 버티기 힘들 것 같은 이 여름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종종 지친 얼굴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학교 현장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1학기의 마무리를 앞두고 지치고 힘겨운 교사들과 학업 스트레스 및 더위에 지쳐 활기를 잃은 학생들로 교실은 어느 때보다 무겁고 정체된 공기가 가득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여름, 특히 7월은 단지 ‘버텨내야 할 더위’에 불과할까? 자연의 섭리 속에서 7월은 가장 치열한 성장의 계절이자, 가을의 결실을 위해 온몸으로 햇빛을 받아들이는 성숙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교육 역시 이 7월의 태양을 닮아야 한다. 당장의 시원함이나 편안함만을 좇는 유약(柔弱)한 온실 교육에서 벗어나, 때로는 뜨거운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내면의 단단한 성장을 이뤄내는 ‘생명력의 교육’이 필요하다. 여기, 여름과 7월을 노래하며 우리 교육에 깊은 울림을 주는 시 두 편을 통해, 오늘날 우리 교육이 되찾아야 할 본질적인 가치를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소개할 시는 도종
최근 신세계그룹스타벅스 코리아의 역사 왜곡과 혐오 사상에 근거한 저급한 청년 마케팅으로 전국이 몸살을 앓았다. 여기에당당해야 할 청소년의 스포츠 경기장에서도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의 구호를 외치며 또다시 비슷한 조롱과 혐오, 지역 비하, 역사 왜곡의 모습이 고등학생들에게 그대로 전이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먼저 교육 매체에서 전하는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고자 한다. “선생님, 5·18은 (어느 도시든 유명 빵집이 있듯이) 그냥 유명한 광주 빵집에서 일어난 이벤트 같은 거 아니에요?” 어느 고등학교 역사 수업 시간, 한 학생이 킥킥거리며 던진 이 한마디에 교실은 순식간에 침묵이 흘렀다. 이는 농담이 아니다. 요즘 중고등학교 교실이나 청소년들이 주로 상주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면, 가슴을 쓸어내리다 못해 피눈물이 날 지경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피로써 일궈낸 광주의 아픔과 상처는 어느새 ‘조롱거리’가 되었고, 청소년 사이에서 일종의 ‘핫(hot) 한 놀이문화’처럼 확산되었다. 이 철없는 청소년들을 보며 우리는 너무나 기가 막혀 혀를 차게 된다. 과거를 쉽게 잊는 민족의 특성을 가진 우리는 “요즘 애들은 철이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