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유·초·중·고 학교 현장이 겪고 있는 진통과 수난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아프다. 무너진 교권을 바로 세우고 교육을 조금이라도 정상화하기 위해 밤낮으로 애쓰는 수많은 선생님의 눈물겨운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들려오는 현실의 소식들은 때로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최근 한 주요 언론을 통해 보도된 '여중생 제자 20여 차례 성폭행-추행한 40대 교사 구속기소'라는 기사는 참으로 수치스럽고 분노를 자아내며 차마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이에 앞서 근래 사회를 분노케 했던 초등학생 대상의 소속 학교 M씨라는 사람의 참혹한 살인 사건 역시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바른길로 인도해야 할 공간에서 벌어진 이러한 일은 단순한 사건·사고의 차원을 넘어 학교에 대한 우리 사회 전체의 신뢰를 뿌리째 흔드는 중대한 범죄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깊은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남는다. 바로 언론이 피의자를 부르는 ‘호칭’의 문제다.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여전히 ‘교사’라는 직함과 칭호를 붙여 보도하는 것이 과연 꼭 필요한가? 아이들의 미래를 밝히는 교육의 현장에서 묵묵히 헌신
“선생님보다 챗GPT가 더 잘 가르치는데요?” 이 말은 가상의 질문이 아니다. 이미 오늘의 학교 교실 현장에서 아이들이 피부로 느끼며 던지는 솔직하고도 서늘한 물음이다. 실제로 2024년 발표된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미래교육 인식 조사’에 따르면, 중·고생의 60% 이상이 “단순 지식 습득이나 문제 풀이 설명은 교사보다 인공지능(AI) 튜터가 더 효율적”이라고 응답했다.(한국교육개발원, 《AI 시대 학교교육의 역할 재정립 연구》, 2024) 전통적으로 지식의 전수자(Knowledge Transmitter)로서 교사가 가졌던 독점적 권위는 이미 완전히 해체되었다. 왜냐면 AI는 지치지 않고, 화내지 않으며, 학생 각자의 수준에 맞춰 24시간 1:1 맞춤형 해설을 제공하기 때문에 지식 전달의 속도와 정확도 면에서 인간 교사는 더 이상 AI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문명사적 대전환기 앞에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본질적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미래 교육에서 교사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그리고 지금과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이 글에서는 몇 가지 관점에서 이를 탐색해 보고자 한다. 첫째, 지식의 공급자에서 ‘맥락의
최근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나름 위원들의 노력의 산물로 총체적인 하나의 안(案)을 국민에게 보고하는 형식으로 위원장이 직접 “설명드립니다”라며 학교시민교육 국가 기본원칙(안)을 발표했다. 여기서 한눈에 띄는 요지는 독일의 저명한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표방한 것으로 다가온다. 우리에게 이는 과거 전범국가였던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교육을 통해 완전한 민주시민 국가로 발전한 것에 대한 부러움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계기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러한 발표의 배경으로는 최근 교실까지 침투한 혐오와 차별을 배격하고, 사회적으로 갈등이 첨예한 시의성 있는 공적 논쟁을 교실 안으로 끌어들여 학생들의 자율적 판단력과 민주시민 역량을 키우겠다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학교가 침묵하면 그 공백은 유튜브가 차지한다”라는 국교위 위원장의 발언은 학교가 정파적 시비를 두려워해 침묵하는 사이, 학생들이 숏폼과 자극적인 댓글, 검증되지 않은 정보망 속에서 혐오의 언어를 학습한다는 국가기관의 진단 자체는 매우 공감할 만하다. 그러나 아름다운 선언 뒤에 숨겨진 현실적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면 위험천만한 오판이 눈에 띈다. 현장의 준비와 구체적인 방어 시스
교직 사회에는 오랜 세월 전설처럼 내려오는 슬프고도 현학적인 명언이 하나 있다. 바로 “학기 중에 교사가 미칠 만하면 방학이 오고, 방학 때 교사가 살아날 만하면 개학이 온다”는 말이 그것이다. 이보다 교사의 생체 주기를 완벽하게 입증한 의학적·심리학적 진단이 또 있을까? 3월의 설렘으로 시작한 학기는 5월의 잔혹한 행사 퍼레이드를 지나, 6~7월에 이르면 교실 전체가 거대한 ‘멘탈 탈곡기’로 변신한다. 30여 명의 혈기 왕성한 아이들이 뿜어내는 정열과, 산더미 같은 행정 서류, 여기에 때때로 걸려 오는 서늘한 학부모의 민원 전화까지 겹치면, 교사의 멘탈은 어느새 OMR 카드의 채점 오류처럼 새하얗게 질려버린다. 바로 그 순간,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혹은 절벽 끝에 나타난 밧줄처럼 ‘방학(放學)’이라는 신성한 구원투수가 등판한다. 세상 사람들은 교사의 방학을 보며 “팔자 좋은 철밥통”, “달콤한 놀음”, “여행을 위한 선물”이라며 부러움이 지나쳐 야유를 보낸다. 하지만 단언컨대, 교사에게 방학은 단순히 놀고먹는 유흥의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타들어 간 영혼에 수분을 공급하는 ‘의학적 치료(Healing)’이자, 타인에게 나눠줄 지혜를 다시 채워
오락가락하는 늦은 장맛비가 내리며 지독하게 습하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계절, 7월이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아스팔트는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고, 에어컨 바람 없이는 단 한 순간도 버티기 힘들 것 같은 이 여름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종종 지친 얼굴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학교 현장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1학기의 마무리를 앞두고 지치고 힘겨운 교사들과 학업 스트레스 및 더위에 지쳐 활기를 잃은 학생들로 교실은 어느 때보다 무겁고 정체된 공기가 가득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여름, 특히 7월은 단지 ‘버텨내야 할 더위’에 불과할까? 자연의 섭리 속에서 7월은 가장 치열한 성장의 계절이자, 가을의 결실을 위해 온몸으로 햇빛을 받아들이는 성숙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교육 역시 이 7월의 태양을 닮아야 한다. 당장의 시원함이나 편안함만을 좇는 유약(柔弱)한 온실 교육에서 벗어나, 때로는 뜨거운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내면의 단단한 성장을 이뤄내는 ‘생명력의 교육’이 필요하다. 여기, 여름과 7월을 노래하며 우리 교육에 깊은 울림을 주는 시 두 편을 통해, 오늘날 우리 교육이 되찾아야 할 본질적인 가치를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소개할 시는 도종
최근 신세계그룹스타벅스 코리아의 역사 왜곡과 혐오 사상에 근거한 저급한 청년 마케팅으로 전국이 몸살을 앓았다. 여기에당당해야 할 청소년의 스포츠 경기장에서도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의 구호를 외치며 또다시 비슷한 조롱과 혐오, 지역 비하, 역사 왜곡의 모습이 고등학생들에게 그대로 전이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먼저 교육 매체에서 전하는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고자 한다. “선생님, 5·18은 (어느 도시든 유명 빵집이 있듯이) 그냥 유명한 광주 빵집에서 일어난 이벤트 같은 거 아니에요?” 어느 고등학교 역사 수업 시간, 한 학생이 킥킥거리며 던진 이 한마디에 교실은 순식간에 침묵이 흘렀다. 이는 농담이 아니다. 요즘 중고등학교 교실이나 청소년들이 주로 상주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면, 가슴을 쓸어내리다 못해 피눈물이 날 지경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피로써 일궈낸 광주의 아픔과 상처는 어느새 ‘조롱거리’가 되었고, 청소년 사이에서 일종의 ‘핫(hot) 한 놀이문화’처럼 확산되었다. 이 철없는 청소년들을 보며 우리는 너무나 기가 막혀 혀를 차게 된다. 과거를 쉽게 잊는 민족의 특성을 가진 우리는 “요즘 애들은 철이 없
최근 전남·광주통합교육청은 지역의 초·중·고교에 논·서술형 평가를 채택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는 그동안 교육계 일각에서 끊임없이 주장해 온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비롯한 5지선다형 평가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교육개혁의 한 측면이다. 이로써 인공지능(AI)과 함께 사는 디지털 대혁명의 시대에 부합한 교육방식으로의 전환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된 것은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모든 사항에는 양면성이 있어 이에 즉각적으로 맞서 새로이 초래할 또 하나의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는 늘 하는 말처럼 “자녀 교육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당장의 학부모에게 불어닥칠 반응은 무엇인가? “교육청에서 시험 문제를 전부 논·서술형으로 바꾼대요! 당장 우리 여섯 살짜리 아이도 글쓰기 학원에 등록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런 불안과 우려가 벌써부터 학부모의 탄식으로 둔갑하여 저절로 들려오는 듯하다. 일단 동네 놀이터나 맘 카페에 이런 뜬소문이 한 바퀴 돌기 시작하면, 그날로 영유아 학원가의 간판은 재빠르게 교체될 것이다. 이름도 거창한 ‘창의·융합 영유아 논술반’, ‘대치동식 프리미어 7세 글쓰기
2026년 초여름, 대한민국 서울의 수은주가 가파르게 오르던 날, 광화문과 관악산 자락에 역사적으로 기묘한 모습이 펼쳐졌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은색 계통의 가죽 재킷을 전투복처럼 장착한 한 세계 초일류 기업의 CEO가 나타난 것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지배하는 ‘칩의 제왕’, 젠슨 황 엔비디아(NVIDIA) 회장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의 이번 한국 방문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였다. 예능 프로그램인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특유의 소탈한 미소로 대중과 눈을 맞추는가 하면, 서울대를 깜짝 방문해 미래의 인재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그런 와중에 압권은 국내 기업 총수들과의 이른바 ‘깐부 치맥 회동’이었다. 빳빳한 정장 대신 캐주얼한 차림으로 닭 다리를 뜯으며 세계 AI 흐름을 주도할 ‘AI 반도체 동맹’을 다지는 모습은, 권위주의에 익숙한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가 보여준 일련의 파격은 단순한 쇼맨십이 아니다. 그것은 고정관념의 틀을 깨부수는 강력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의 표출이었다. 지금 우리 교육과 청년들은 이 가죽 재킷을 입은 거장에게서 무엇을 배우고
2500년 전 동양의 스승 공자는 논어(論語) ‘위정편’에서 아주 완곡한 표현으로 교육의 정석을 밝혔다. “법률과 형벌로 백성을 인도하면 형벌만 면하려 할 뿐 부끄러움을 모른다. 덕과 예로써 인도해야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 바르게 된다(導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導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이 고결한 도덕 교과서적 말씀에 2026년 글로벌 시청자들이 돌연 환호하는 대반전이 일어났다.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전 세계에 공개되어 2주 연속 글로벌 TV쇼 1위를 차지하고 美포브스가 “올해 최고 드라마중 하나”라고 극찬을 한 참교육 열풍 때문이다.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넷플릭스 시리즈는 무너질 대로 무너진 교권을 회복하기 위해 교육부가 신설한 가상의 기관, ‘교권보호국’의 활약을 담아낸 판타지 액션물이다. 극 중에서 특전사 출신의 베테랑 감독관과 현직 교육부 장관은 무법지대가 된 교실을 바로잡기 위해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빌런들을 처벌한다. 촉법소년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교사를 폭행하고 친구를 괴롭히는 불량 학생들에게 법보다 빠른 ‘매운맛의 물리력’과 물리적인 정의 구현을 펼치는 것이다. “어른이 애들을 무서워하면
우려하던 교육 현장의 붕괴 징후가 결국 차가운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 최근 종로학원이 발표한 학교알리미 공시 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2025년) 전국 일반고에서 학업을 중단한 고교생 1만8661명 중 고교 1학년생이 무려 1만450명(56%)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고1 자퇴생 수가 1만 명을 돌파한 것은 우리 교육 역사상 최초이자, 대단히 충격적인 신호탄이다. 학교에 입학해 새로운 교복을 입은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수많은 아이가학교 울타리 밖으로 스스로 걸어 나가고 있다. 더 절망적인 것은 이들의 자퇴가 학업을 포기하기 위함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점이다. 과연 이대로 우리 교육은 괜찮은 것인가? 이러한 기현상의 중심에는 교육부가 내신 부담을 완화하겠다며 전면 도입했던 ‘내신 5등급제’가 자리 잡고 있다. 제도의 취지와 달리 입시 현장에서는 상위 10%인 ‘1등급’을 확보하지 못하면 서울 주요 상위권 대학이나 의대 진학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공포 마케팅이 작동했다. 첫 중간고사에서 삐끗해 2등급(상위 34%)으로 밀려난 아이들은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나 검정고시와 수능 올인이라는 각
선거철마다 찾아오는 ‘거리의 유세 음악’의 소음이 걷히고 마침내 성적표가 나왔다. 지난 6·3 지방선거를 통해 향후 4년간 우리 아이들의 교실을 책임질 대한민국 교육 수장들의 면면이 확정된 것이다. 선거 결과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진보 성향 교육감들의 강한 귀환, 그리고 곳곳에 심어진 중도·보수의 견제구”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언론은 이를 10:6의 구도로분석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인천 등 수도권을 비롯한 대다수 지역에서 민주·진보 성향의 후보들이 깃발을 꽂으며 이른바 ‘진보 교육감 시대의 부활’을 알렸지만, 대구·경북·충북 등 보수의 텃밭은 건재했고 세종과 제주에서는 역사상 첫 여성 교육감이 탄생하는 이정표를 세우기도 했다. 특히 여성 교육감 출신이 이전의 1명에서 이제 3명으로 늘어난 것은 여성 특유의 더욱 섬세한 교육행정을 예측하기에 이른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거리와 교문 앞에 서서 “내가 적임자”라며 손을 흔들던 당선자들은 이제 교육청 집무실에 앉아 날카로운 예산서와 산적한 현안들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이 묵직하고도 치열한 교육 전쟁의 서막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감시해야 할까? 이 글에서는 주요 언론의 관점을 반영
푸릇푸릇한 신록의 계절, 6월이 되었다. 교정의 나무들은 어느새 짙은 녹음을 드리우고, 교실의 학생들은 여름방학을 향해 조금씩 시계를 앞당기기 시작한다. 교사들에게도 6월은 특별한 달이다. 새 학년의 긴장감은 다소 누그러지고, 교육과정 운영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그래서일까? 6월은 “무엇을 더 가르칠 것인가?”보다는 “나는 지금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를 되묻게 하는 성찰의 계절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학교 현장에는 디지털 전환, 인공지능(AI) 활용 교육, 기초학력 보장, 학생 맞춤형 교육, 정서·심리 지원 등 수많은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모두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과제들이다. 그러나 6월의 학교가 잠시 멈춰 서서 성찰해야 할 것은 정책의 숫자가 아니라 교육의 방향이다. 한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AI가 글을 써주는 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일까?”라고 물었다. 학생들은 “컴퓨터 잘하기”, “코딩”, “영어” 등을 답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 질문하는 능력이요.” 순간 교실이 조용해졌다. 생각해 보면 요즘 모두가 흔히 말하는 그 말이다. AI가 답을 찾는 시대일수록 인간
오늘날 우리가 교육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사자성어 중의 하나가 바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이 말은 원래 중국 고전 《순자(荀子)》의 「권학편」에서 나왔다. “푸른빛은 쪽에서 나왔으나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이다. 이는 제자가 스승을 넘어서는 일이야말로 배움의 완성이라는 선언이다. 놀라운 점은, 2000년 전의 이 문장이 오늘 대한민국 교실에 다시 소환해야 할 교육 철학이라는 사실이다. 왜냐면 우리는 오랫동안 ‘뒤처지지 않는 교육’에는 익숙했지만, ‘넘어서는 교육’에는 아직도 서툴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은 종종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 왔다. “틀리지 마라.” 그러나 미래는 틀리지 않는 사람보다, 새롭게 질문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인공지능(AI)이 계산을 대신하고, 검색엔진이 기억을 대신하는 시대에 교육의 핵심은 더 이상 “얼마나 많이 아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다르게 생각하는가”, “누구와 함께 성장하는가”가 중요해졌다. 이제 학교는 정답을 보관하는 저장고가 아니라, 가능성을 실험하는 연구소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말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질문을 한다. 그
오는 6·3 전국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곳곳에서 벌어진 후보 단일화와 경선 과정은 우리 교육자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언론 매체 역시 온통 이런 사실만을 경쟁하듯이 들추어 내고 있다. 본래 단일화의 목적은 가치와 정책을 공유하는 세력이 교육 비전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단일화는 교육철학의 통합이 아니라 세력 결집의 기술로 변질되었고, 경선은 정책 경쟁보다 조직 동원력과 절차 시비의 장으로 흐름에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나타난 갈등은 심각하다. 서울 진보 진영 단일화 과정에서는 일부 후보들이 “선거인단 등록이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고 주장하며 경선 결과에 불복했고, 각각의 지지 단체를 빌미로 출마를 선언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실제로 경선 과정에서 중복 등록과 대납 의혹, 선거인단 검증 문제 등이 제기되며 경찰 수사 요구로 이어졌다. 경남에서도 단일화를 외치던 진영이 오히려 다자 구도로 갈라지면서 “교육은 사라지고 정치 셈법만 남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선거 갈등으로 그치지 않는다. 교육감 선거가 정당 공천은 금지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진영 정
금년 초 동아일보(2026.1.13.) 이진영 논설위원의 횡설수설난에 올라온 글을 소개한다. “금값이 치솟는 가운데 한국주얼리산업단체총연합회가 전국 귀금속 제조 업체의 40%가 모여 있는 서울 종로 귀금속 거리 일대에 ‘함량 미달 금 척결을 위해 모두 나서 주세요’라는 제목의 긴급 담화문을 게시한 적이 있다. 연합회는 지난해 9월 9%의 이물질을 섞은 도매용 가짜 금이 유통된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가짜 금을 은이나 주석을 이용해 만드는데 요즘은 금과 성질이 비슷한 텅스텐에 두껍게 도금해 적발하기 어렵다고 한다.” 서두에 웬 뜬금없이 그야말로 지나간 금 이야기로 횡설수설하는가? “반짝인다고 해서 다 금은 아니다(All that glitters is not gold).” 이 오래된 서양 속담은 오늘날 겉은 화려하게 빛나지만 그 이면에는 알곡, 즉실속이 없는 우리 교육정책을 바라보는 데 유난히 묵직한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매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화려하게 포장된 교육 슬로건이 등장한다. 고교학점제, 인공지능(AI) 교육, 디지털 교과서, 유보통합, 국가 과학자 육성, 창의 융합, 개별 맞춤형 학습, 서울대 10개 만들기 등각 단어나 표현들은 그 자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