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하는 늦은 장맛비가 내리며 지독하게 습하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계절, 7월이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아스팔트는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고, 에어컨 바람 없이는 단 한 순간도 버티기 힘들 것 같은 이 여름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종종 지친 얼굴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학교 현장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1학기의 마무리를 앞두고 지치고 힘겨운 교사들과 학업 스트레스 및 더위에 지쳐 활기를 잃은 학생들로 교실은 어느 때보다 무겁고 정체된 공기가 가득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여름, 특히 7월은 단지 ‘버텨내야 할 더위’에 불과할까? 자연의 섭리 속에서 7월은 가장 치열한 성장의 계절이자, 가을의 결실을 위해 온몸으로 햇빛을 받아들이는 성숙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교육 역시 이 7월의 태양을 닮아야 한다. 당장의 시원함이나 편안함만을 좇는 유약(柔弱)한 온실 교육에서 벗어나, 때로는 뜨거운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내면의 단단한 성장을 이뤄내는 ‘생명력의 교육’이 필요하다. 여기, 여름과 7월을 노래하며 우리 교육에 깊은 울림을 주는 시 두 편을 통해, 오늘날 우리 교육이 되찾아야 할 본질적인 가치를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소개할 시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다. 비록 시에 ‘7월’이라는 단어가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세찬 비바람과 뜨거운 여름볕을 견뎌내고 기어이 꽃을 피워내는 자연의 역동성은 7월의 계절감과 완벽히 맞닿아 있다 할 수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현대의 교육은 지나치게 안전하고 매끄러운 길만을 제공하려 한다. 부모는 아이의 앞길에 놓인 돌멩이를 미리 치워주려 안달하고, 학교는 갈등과 실패가 없는 ‘무균실’ 같은 공간이 되기를 요구받는다. 하지만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이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운 꽃도 흔들림 없이 피어난 것은 없다. 7월의 폭풍우와 뙤약볕 속에서 줄기를 곧게 세우는 식물처럼, 아이들에게는 ‘넘어져 보고 다시 일어서는 기회’가 필요하다.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회복이 절실하다. 실패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작은 좌절에도 쉽게 바스러진다. 교육은 아이들이 흔들릴 때 잡아주는 버팀목이 되되, 흔들림 자체를 원천 봉쇄해서는 안 된다. 또한 젖어보는 경험의 가치가 중요하다. 비바람에 젖어보는 고통 속에서 비로소 따뜻한 꽃잎을 피울 수 있는 내면의 힘이 길러진다. 시행착오를 성장의 당연한 과정으로 인정하는 너그러운 교육관이 절실한 때이다.
다음으로 마주할 시는 여름 시의 대명사이자 우리 민족의 저항 시인 이육사의 「청포도」이다. 7월이라는 구체적인 시간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과 연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내 고장 칠월은 /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 먼 데 하늘이 꿈꾸며 들어와 박혀 /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이육사, 『문장(文章)』 7호, 1939년 8월 발표.)
이육사의 7월은 단순한 더위의 계절이 아니다. 마을의 전설이 열리고,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며, 마침내 고달픈 몸으로 찾아올 '청포를 입은 손님'을 기다리는 약속과 환대의 계절이다. 오늘날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무한 경쟁으로 얼룩진 교육 현장에서 우리에게 커다란 경종을 울린다. 이를 교육적 맥락으로 순수하게 치환해 본다.
먼저 ‘환대(Hospitality)’의 교육이다. 시인은 손님을 위해 은쟁반과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하라고 말한다. 타인을 배제하고 나만 살아남는 교육이 아니라, 상처받고 지친 이웃(고달픈 손님)을 기꺼이 맞이하고 포용하는 ‘환대와 배려의 태도’를 가르쳐야 한다.
다음으로 함께 적시는 두 손, ‘연대’의 기쁨이다. 청포도를 따 먹으며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다”는 구절은 나눔과 공유의 극치를 보여준다. 협동 학습, 프로젝트 기반 학습 등 배움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하고 타인과 연대하는 즐거움을 깨닫게 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의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이 해석은 일반적인 민족의 저항, 독립을 바라는 간절한 소망 등의 전통적인 해석과는 달리 순수하게 교육적 맥락에서 재사유한 것임)
그렇다면 우리는 이 아름다운 시적 통찰을 어떻게 구체적인 교육으로 실행할 수 있을까? 7월의 뜨거움을 성장의 에너지로 바꾸는 두 가지 교육 패러다임을 적용해 본다.
첫째, ‘에어컨 교실’에서 벗어나는 ‘흙밭 프로젝트’이다. 현대의 학교는 지나치게 쾌적하다. 문제는 그런 쾌적함 속에서는 야성이 자라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기 말인 7월 중 일주일간, 인위적인 통제 상태를 벗어나 자연과 직접 부딪히는 생태적 불편함을 온몸으로 그대로 체험하는 ‘여름나기 주간’을 제안하고자 한다. 땀 흘려 텃밭을 가꾸고,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노작(勞作) 활동을 하며, 더위를 이겨내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몸의 정직한 힘과 자연의 질서를 배울 것이다. 땀방울의 가치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타인의 노동에 대한 존중을 기대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교사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그늘막 철학’의 정립이다. 여름철 땡볕 아래 가만히 서 있는 느티나무는 아무런 말이 없지만, 지친 나그네에게 가장 넓은 그늘을 제공한다. 따라서 제안하고자 하는 바는 교사가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스피커’가 아니라, 거친 삶의 폭풍 속에서 잠시 쉴 수 있는 ‘그늘막’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성장의 통증(흔들림)을 겪을 때 섣불리 개입해 문제를 해결해주기보다는 이육사의 시처럼 “은쟁반과 모시 수건”을 조용히 준비해두고 아이가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는 ‘조력자’로서의 자세가 필요하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육사 시인의 선언처럼, 지금 우리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은 저마다의 푸른 청포도 알알을 키워가고 있다. 비록 아직은 거칠고, 시고, 불완전해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저 머~언 하늘의 꿈”이 가득 들어차 있다. 아이들이 흔들리고 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격려하자. 그리고 그들이 뜨거운 여름을 온몸으로 통과해 낼 때, 기꺼이 그늘이 되어 주자. 7월의 뙤약볕은 파괴의 열기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영혼을 가장 찬란하고 성숙하게 빚어낼 ‘은혜의 빛’이라 믿기 때문이다.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찬 교육의 현장에서, 가을날 주저리주저리 열릴 눈부신 결실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