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교육과 관련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원래 배우고 가르치는 것 자체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이주민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면서 단순히 법제만 바뀌어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 때문입니다. 외국인 노동자와 관련된 여러 문제만 보더라도 UN헌장 등 여러 국제규약이 존재함에도 사람들이 이를 중요하지 않게 여기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교과부를 비롯해, 법무부, 노동부 등 여러 기관의 연수를 맡아 진행하면서 앞으로는 교육의 영역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어 보충교육은 다문화교육 아니다
다문화 관련 여러 강좌를 진행하셨는데, 다문화교육에 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문화교육에는 3가지 핵심 사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성’, ‘관계성’, ‘창조성’이 바로 그것인데요. 우리나라는 아직 다양성도 해결하지 못한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현재 우리 교육현장을 보면 다문화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주로 언어교육을 하고 있는데, 이는 보충교육으로 봐야지 다문화교육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국제결혼자녀를 중심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한국 사회 적응교육은 내용적으로 봤을 때, 획일적인 동화주의(同化主義) 교육으로 다문화교육이 지향해야 할 다양성과는 오히려 대척점에 있습니다. ‘관계성’은 인권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데서 차이에 대한 가치를 찾는 것을 말합니다. 다문화가정 이외의 사람들이 다문화사회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창의성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다문화교육이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이런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다문화운동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직접 경험하는 일반 대중의 의견이 정책 결정자에게 전달 · 반영되는 상향식 의견전달이 이뤄져야 하는데, 상명하달식으로 정책이 이뤄지다보니 현실과 괴리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교육현장 역시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아직 현장 교사들은 다문화교육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상층부에서 일방적으로 다문화교육을 실시하라고 하니 올바른 방향을 잡지 못하고, 쉽게 생각할 수 있고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적응교육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양한 문화의 충돌은 큰 발전 가능성 내포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문화교육의 지향점을 명확히 설정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다문화와 관련한 교육의 종류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단일민족중심교육인데 이것은 문화적 예외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가장 폐쇄적인 교육을 말합니다. 두 번째로 동화주의 교육은 차이는 인정하되 기존의 사회 · 문화체계에 동화시키기 위한 교육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다문화교육을 동화주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다문화 공생주의로 차이를 인정함은 물론 이를 존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지만, 서로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방관할 뿐 서로 융합하지 않기 때문에 발전적인 형태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문화 창조주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문화화를 통해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가 서로 충돌하며 새로운 형태로 나아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문화화로 인해 우리의 고유성이 침해되지 않을까 우려하는데, 이러한 충돌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용한다면 우리 문화의 진면목을 발견해 오히려 고유성을 강화하고 다문화 사회의 중심을 확립할 수 있습니다.”
네 가지 다문화교육 방향을 말씀하셨는데, 이들의 관계를 단계적(순차적)인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동화주의 교육을 했다가 다문화 공생주의를 거쳐 점차적으로 다문화 창조주의로 나아가는 그런 관계는 아닙니다.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아 창조주의적인 시각으로 다문화교육을 해야 합니다.”
다문화가정 학생에게 한국인일 것 강요 말아야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다문화교육에 대해 비판하셨는데, 그렇다면 다문화가정 출신 학생들에 대한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까요?
“다문화가정 학생들은 문화적, 언어적으로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이런 교육도 필요하지만, 이는 보충수업으로 봐야 합니다. 다문화교육의 차원으로 접근할 때 가장 중요하게 다룰 것은 다문화가정 학생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도록 하는 돕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아시아계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일컫는 코시안(Korea+ Asian)이라는 단어가 차별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우리는 상대를 한국인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잠재적인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피부색, 가정환경, 혈통 등 여러 가지 것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모두 갖추지 않는 한, 사실 동등한 한국인으로서 인정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다문화가정 학생들에게 한국인이기를 강요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절반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가진 두 가지 혈통 모두에 자부심을 갖고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야 합니다. 미국의 오바마와 타이거 우즈가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문화적인 시각이 필요해
다문화교육의 개념 정립을 누차 강조하셨는데, 어떤 측면에서 바라봐야 할 지 추가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선 다문화를 명사가 아닌 동사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문화라는 것은 하나의 형태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다문화교육을 국제이해교육과 구분해서 바라봐야 합니다. 실생활에서의 부딪힘 없는 다른 나라에 대해 가르치는 국제이해교육은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 생활에서 느낄 수 있냐는 것이지요. 글로벌리더교육이라는 말도 많이 쓰이고 있는데, 이 용어는 지나치게 경쟁주의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경쟁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문화라는 것은 경쟁력과 상관없이 보존해야 할 것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무형문화재 같은 것들은 경쟁의 측면에서 보자면 당장이라도 폐기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를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는 것은 그 자체가 갖는 문화적 가치가 갖는 의미를 인정하기 때문이지요. 문화적인 시각이 필요합니다.”
‘문화적 시각’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역사를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1990년대에 중국 만주에 황하문명보다 1000년이나 앞선 흥산문화가 발견됐는데, 이것은 중국문화가 아닌 한반도의 것과 유사한 형태를 보입니다. 또 산둥반도에 백제의 영토 즉, 외백제가 존재했음을 추측하게 하는 유물도 발견됐습니다. 이런 사실을 민족중심적인 사고로 보면 원래 중국도 우리 땅이었다는 식의 생각으로 자부심이 좀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발전적인 사고는 아닙니다. 하지만 민족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문화적으로 바라보면 우리 역사의 콘텐츠가 상당히 풍부해집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임란 때 포르투갈에서 온 흑인병사가 참전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이런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 바라보면 훌륭한 문화 콘텐츠가 탄생하는 것이지요.”
다문화교육이 교육현장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활동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다문화교육 자체에 관심이 없는 교사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체감을 하지 못하는 교사들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제가 봤을 때는 교사들이 너무 여유가 없는 탓이 크지 않나 합니다. 요즘 너무 바빠진 교사들에게 다문화교육은 업무를 가중시키는 또 다른 업무로만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교사들이 다문화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고 올바른 방향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좀 여유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얼마 전 한 지역에서 열린 다문화포럼에 초청받아 참석한 적이 있는데, 다문화를 예산 확보를 위한 프로젝트로 여기는 모습이 보여 아쉬움이 컸습니다. 다문화교육은 또 다른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가치 · 신념 · 철학이 돼야지 정책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 사회는 다문화에 매우 빠르게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방향설정을 잘해야 합니다. 무조건 섞기만 하면 문화적 난장이 만들어질 뿐입니다. 교육학에만 연연하지 말고 범학문적으로 접근해 올바른 다문화교육의 철학을 만드는 데 많은 분들이 함께 힘을 모았으면 합니다.” | 강중민 jmkang@kf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