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의 문제 행동에 대해 학생과 상담을 하는 도중 아이가(초등 4학년) 저에게 욕을 하며 발길질과 주먹질을 해 저는 그 아이의 손을 제압해 움직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이는 특수교육 대상학생이지만 옳고 그른 일에 대한 지식은 있습니다. 부모님께 전화했으나 오히려 제게 따지며 교육청에 신고하겠다고 했습니다. 생활지도와 문제 행동 지도가 가장 필요한 학생에게 아무런 지도를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수시로 몇몇 문제 학생이 지도에 불응하며 수업 분위기를 망쳐놓기 일쑤입니다. 학교에서 정한 벌점제(엘로우 카드)를 적용, 발부해도 만성적인 기만태도를 고치지 못합니다. 체벌금지 분위기를 악용하는 파렴치한 학생이 너무 많습니다. 정말 앞날이 걱정입니다.”
한국교총에 접수된 학생인권조례, 체벌금지관련 학교현장 고충 사례다. 갈수록 통제가 안 되는 학생, 갈수록 생활지도 하기 어려워지는 학교 현장 사이에서 교사들이 방황하고 있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체벌금지 조치와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다. 문제가 되느니 아예 학생 생활지도를 놓아버리고 싶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의 체벌금지 조치와 내년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문제에 대해 교원들이 생각하는 현실적인 대책은 무엇일까. 현장 교사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우선 교원들은 학생들이 권리만을 주장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지 않고 인권만을 강조할 때 오히려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고, 교사의 지도는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으며 학교 질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또 학생들의 무분별한 권리 주장 때문에 학교 본연의 교육활동마저도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도 많았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체벌과 학생인권을 어떻게 인지하고 규칙을 지켜야 하는지 알게 하는 사전 교육과 직접 체벌 대신에 간접 체벌을 우선 허용하게 하는 등의 경과 조치가 필요했는데 그런 준비 없이 무조건 시행에 들어가 여러 부작용들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본인의 권리주장 때문에 타인이 불쾌하거나 피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학생들이 교육을 통해 알아야 한다”면서 “앞으로 지속적인 학부모, 학생 교육을 펼쳐야 하는 이유다”라고 강조했다.
체벌의 대안 마련이 가장 큰 관건
체벌금지조치와 학생인권조례 문제의 핵심은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성 있게 활용될 체벌에 대한 대안이 나오느냐가 관건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또 대다수의 교원들은 즉각 시행보다는 교육적 목적을 가진 간접체벌 등을 두는 경과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경기 안양의 모 초등학교 교장은 “문제의 핵심은 학생인권조례 하에서 학교에서 즉각 적용할 현실성 있는 대안이 나오느냐 하는 것”이라며 “대안이 실효성 있게 나오지 않은 채 인권조례를 무조건적으로 시행하면 아이들의 교육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될 테고 그러면 결국 최고의 피해자는 학생이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일례로 최근 체벌을 전면 금지시킨 서울시교육청은 단위학교에 체벌전면금지와 대체 프로그램의 내용을 담은 학생생활 규정을 제 · 개정토록 했지만 학교마다 사정이 다르고,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아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S초 L교사는 “최근 만난 한 교장은 ‘내 인생 내가 사는데 교장선생님이 무슨 상관이냐’며 대드는 학생도 지도하기가 겁났다는 말을 하더라”면서 “대안으로 내놓은 성찰교실은 학교 사정상 마련하기 어렵고, 결손가정이나 맞벌이 부모의 경우 학부모소환에도 응하지 않으며 외국처럼 문제 학생을 교장, 교감이 상담하고 지도하려고 해도 업무가 많아 현실화하기 힘들다는 말이 와 닿더라”라고 말했다.
한국교총이 10월 14~20일 서울지역 학교 322개교의 교원 3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체벌전면금지 학생생활 규정 개정’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8.2%가 민주적 학생생활지도 방법으로 부적합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이 제시한 다섯 가지의 체벌대안 예시 프로그램 중에서 학교 현장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에 대해 응답자의 39.4%는 ‘봉사 및 노작활동 명령, 이행’을 37.9%는 ‘교실밖 지도’라고 답했다. ‘다섯 가지 모두 다 적용하기 어렵다’는 응답도 26.1%로 나와 체벌대안 프로그램의 효용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대안 프로그램 적용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응답자의 49.1%는 ‘법적 구속력 미비’, 27.9%는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인력과 시설 부족’을 꼽았다.
최수룡 대전 버드내초 수석교사는 “이미 언론을 통해 학생들이 무조건 체벌은 안 된다고 알고 있고, 어떻게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다”면서 “현장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운동장 돌기, 벽을 보고 서 있기 등 교육 목적을 가진 체벌은 할 수 있도록 하는 경과조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학생의 권리에 따르는 ‘제한 규정’도 명시해야
체벌금지 조치와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는 학교 현장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교원들은 우선 학생의 권리가 법으로 인정되는 만큼 학교의 교육 목적에 따라 그 권리가 일부 제한될 수 있다는 제한 규정까지 명문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학생의 인권보장과 함께 그 한계까지도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광주 Y중 J교사는 “한 학급에 한두 명씩은 수업을 하지 못할 정도로 말썽 피우는 학생이 있는데 중학교에서는 이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그 학생들로 인해 학교 교육활동이 피해를 받는다면 마땅히 학생들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교권과 교육활동도 보호해야할 대상
교원들은 교권 침해 사건이 매해 증가하는 가운데 학생들의 권리 강화로 앞으로 교권이 더 위축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교원의 교육활동 역시 보호받아야 한다고 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교권침해 문제는 한국교총이 매년 발간하는 ‘교권회복 및 교직상담 활동실적’에서도 잘 드러난다. 교권침해 사건 중 학생 및 학부모의 폭언, 폭행, 협박 등 부당행위가 2001년 12건, 2002년 19건에 불과했으나, 2006년 89건, 2007년 79건, 2008년 92건, 2009년 108건으로 10년 사이 약 9배나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도 2006년에 63건이었던 교권침해 사례가 2007년 89건, 2008년 162건, 2009년 161건으로 지난 4년 동안 1. 5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수룡 수석교사는 “그렇지 않아도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있고 교권이 침해되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 인권만 강조하다 보니 학교에서 교사들은 어떤 것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학생들이 인권조례가 있듯이 최소한 교사의 교육활동을 보호할 권리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의 징계 세분화하고 강화해야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현재 학생의 징계 수준과 단계를 더 세분화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행 「초 · 중등교육법시행령」 제31조에 학교 내의 봉사, 사회봉사, 특별교육이수, 퇴학처분 등이 규정되어 있지만 퇴학의 경우는 의무교육대상자(초 · 중학생)가 아닌 고등학생의 경우에만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징계에 대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경우에는 학교폭력을 제외하고는 아무리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하더라도 ‘특별교육이수’가 최대 징계조치여서 징계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으며 반대로 고등학교의 경우 퇴학 전 단계의 징계조치가 없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석진 대전 송촌중 교감은 “대부분이 다 잘하는 학생이고 이들의 권리는 지켜져야 하지만 본인의 행동으로 모든 학생들이 피해를 보게 하는 나쁜 학생들로 인한 폐해는 최소한 막아야 한다”면서 “현재 중학교의 징계규정을 벌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없는 상황에서 교사가 통제할 수 없다면 상징적인 의미에서라도 더 강력한 징계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체벌 금지조치를 시행하고 있는 외국의 경우처럼 문제 행동의 정도에 따라 방과 후 잔류, 교육활동 배제, 출석정지, 전학(강제전학) 등 다양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현실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국교총이 교원대상(452명)으로 지난 8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징계사항으로 출석정지를 신설하더라도 ‘학생의 학습권 및 교사의 교수권 보호’에 충분하다(38.9%, 179명)는 의견보다는 불충분하다(58%, 267명)는 의견이 더 높게 나타난 바 있으며, 불충분하다고 응답한 경우 ‘출석정지’ 이외에 대안 방법으로 높은 의견은 학부모소환(26.3%), 생활기록부 기재(19. 6%), 강제 전학(17.4%)순으로 나타난 바 있다.
최진규 충남 서령고 교사는 “학교에서 상담이 강조되면서 학생들에 대한 학교의 징계는 사실상 이미 사라진 지 오래”라며 “학교 내의 봉사, 사회봉사에 그치는 솜방망이 징계로 생활지도는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 학생 대응 절차 담은 명확한 매뉴얼 필요
교원들은 현장에서 생활지도를 하는 데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문제 학생 지도 시 처벌 허용 범위와 절차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필요하다고 했다.
곽태훈 경기 수원 태장중 교사는 “경기도 학교 현장은 지금 우왕좌왕 하고 있다”면서 “대체로 조례로 인해 학생 지도는 해봐야 교사들만 손해라는 것이 전반적인 분위기다”라고 전했다.
그는 “혼란을 겪지 않도록 정말 학교 현장에 필요한 것은 ‘대충 이렇게 하라’는 피상적인 내용보다 상황별로 명확한 절차와 대응방안, 구체적인 처벌 방법까지 담은 매뉴얼이다”라고 강조했다. 또 “사실상 현행법상 퇴학처분이나 정학이 불가능한 중학교의 경우 사회봉사가 최고 처벌인데 정확히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사회봉사를 받을지까지 매뉴얼에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상담교사 배치, 지자체 연계 교육도
더 이상 학생 생활지도 문제는 학교에서만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 모두가 함께 고민해서 풀어야 할 일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최진규 충남 서령고 교사는 “중 · 고 교사들은 보통 교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을 뿐 학생 생활지도는 또 다른 노하우와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며 “현실적으로 교사가 문제 학생을 지도할 방법이 없다면 이 학생들을 전담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전문상담교사 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학교에서 해결되지 않을 정도의 심각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이제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면서 “지자체와 연계해 문제 학생을 교육할 별도의 센터를 마련해 위탁 교육하거나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동지도시스템을 계획하는 등의 장기적인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원들 “앞으로의 학교, 더 걱정스럽다”
이외에도 운동장을 돌거나 벌을 세우는 등 가벼운 체벌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체벌금지, 교육적 지도보다 학생들의 권리가 중요해지는 학교 현장의 앞날은 더 문제라는 교원들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오석진 교감은 “중 3보다 1〜2학년 지도가 더 힘들고, 초등도 이전에는 5〜6학년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4〜5학년부터 지도가 어렵다고 할 정도로 점차 교사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의 연령이 내려가고 있다”면서 “앞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나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탄하는 교사들이 많다”고 전했다.
최수룡 수석교사 역시 “교직 경험이 적어 여러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어려운 신규교사, 저 경력 교사의 경우가 더 큰 문제”라며 “원래도 생활지도, 학습지도에서 어려움을 겪기 마련인데 현실적으로 언론에서 체벌 전면 금지가 대대적으로 발표되고 난 후에는 교실이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하소연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최진규 교사도 “그렇지 않아도 학교 현장에는 생활지도가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으로 인식되어 있는데 이제는 남다른 소신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아이들 생활지도를 하고 바른길로 이끌겠다고 나서는 교사가 줄어들 것은 자명한 이치”라면서 “학교 현장에서 학생 생활지도를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생활지도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교사들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할 것인지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 이상미 smlee24@kf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