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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배부 프로세스 개선 시급하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집중해야 할 교사가 교과서를 배부하는 일에 매년 홍역을 치르고 있다. 교사가 교과서 유통업자도 아니건만, 왜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교과서담당교사협의회 회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새 학년 새 학기를 앞둔 한 고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무거운 박스를 이리저리 옮기느라 부산하다. 이 학교 학생 1500여 명에게 나눠줄 교과서를 보관장소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책을 모아둘 공간도 마땅치 않아 여러 장소에 나눠놓아야 하는데, 교사가 어린 학생들만 데리고 일을 해야 하니 앞이 깜깜할 지경이다.
이는 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학생 1인당 15~20권(고1 기준)의 교과서를 신청부터 분배, 반품, 정산까지 담당교사가 도맡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도서 유통업자도 아니건만 매년 이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정당한 금액을 내고 교과서를 구입하고도, 교사를 도와 책을 날라야 하는 학생입장에서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러한데 정작 공급수수료를 받는 지역 소장이 하는 일은 미미하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학교별로 주문을 받아 해당 학교에 책을 내려주기만 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교과서 대금의 5.88(검정)~6.00(국정)%의 이득을 취하고 있다.

학생 걱정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교사들
학교에 분배경비금으로 10~40여만 원을 일방 책정해 지급하고 있으나, 실제 소요되는 비용에 턱없이 부족할 뿐더러 아예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립의 경우는 그나마 한 교사가 수년간 이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지급하지만, 담당이 자주 바뀌는 공립에서는 이런 돈이 있는 지도 모른 채 힘들게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는 가족들을 동원해 책을 나르기도 한다.
선택과목이 늘고, CD까지 더해지면서 일은 훨씬 복잡해졌다. 교과서 신청이 끝난 후 선택과목을 바꾸는 학생도 있고, 신입생 수가 크게 변동하는 경우도 있다. 담당교사가 일일이 파악해 신청해도, 다른 책을 들고 가거나 잃어버리는 학생들도 있다.
문제는 교사에게 이런 책임을 지울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에도 학교장이 해당 교과용도서의 발행자 또는 그 대리인에게 주문해야 한다는 내용만 있을 뿐이다.
법적 의무가 없으니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지만,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사입장에서는 학생들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억울함을 참아가며 계속 이 업무를 진행하고는 있지만, 가끔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소장들의 횡포에는 분노를 넘어 큰 수치심을 느낀다고 한다.
“책 수량도 제대로 파악 못하느냐”, “책 왔으니 어서 받아라”, “책이 남으면 알아서 책임지라” 등 아랫사람 부리듯 대하고, 심지어는 교장을 찾아가 호통 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횡포는 지난해 교과서담당 교사들이 협의회를 결성, 한국교총을 통해 교과부에 정식으로 개선을 요청하는 등 움직임을 보이자 다소 누그러졌다고 한다. 그러나 업무 프로세스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에, 횡포만 덜할 뿐 업무가 덜어진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처방 내놔야
동덕여고 전상룡 교장은 “이런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함에도, 학교현장에서조차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특히 관리자들이 이런 불합리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과서담당협의회 교사들은 “교과서를 납품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 직접 배부하는 것이 순리”라고 입을 모은다. 공급자가 각 학생들에게 택배로 배부하든, 학교로 책을 가져와 나눠주든 교과서 공급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배명고 김용준 교사는 “일본은 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업자들이 트럭에 교과서를 싣고 와서 직접 나눠주거나, 집으로 부쳐준다”며 우리나라도 이러한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작년 3월 ‘교과서 선진화 방안’ 세미나에서 교과부와 교사, 검정교과서협회가 택배 전환 시 비용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기로 합의하고 연구를 완료했으나, 아직까지도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교사들이 교과부에 연구결과 공개를 수차례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사는 “공동으로 방안을 찾아보기로 해놓고, 연구결과조차 공개하지 않으니 답답하다”며, 연구결과만이라도 공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매년 반복되는 교과서 문제는 별다른 조치가 없다면, 내년에도 교사와 학생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남게 될 것이다. 교과부가 교사의 잡무를 경감해 교육에 더욱 매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만큼 철저한 조사를 통해 근본적인 처방을 내놔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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