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가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방안으로 제시한 ‘성취평가제’가 중학교, 특성화·마이스터고 1학년을 대상으로 2012학년도부터 시작됐다. 성취평가제는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전환해 평가방법의 획기적 개선을 추구한 교육정책이라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선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공존한다. 이미 시작된 성취평가제 도입 자체에 대한 찬반 의견을 제시하기보다는 성공적 정착을 위해 고민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에 현직 중학교 교사로서 필자가 느끼고 생각하게 된 성취평가제의 성공적 정착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성취평가제 그 실제적 과정을 들여다보다 성취평가제라는 절대평가로의 전환에 대해 일부 중학교 교사들이 큰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정책의 중대한 변화에 대해 일부 중학교 교사들이 관심이 없다거나 무책임할 정도로 무관심하다는 극단적이고 양면적인 이분법 논리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다만 고등학교가 아닌 현 중학교에서는 그동안에도 절대평가 방식으로 평가가 진행되어 왔었고, 성취평가제가 도입된다 하여도 ‘수, 우, 미, 양, 가’로 표시되던 성취도가 ‘A, B, C, D, E’로 대체되고, 과목별로 표기되었던 석차 대신 원점수와 표준편차가 표기되는 정도로만 이해하였기 때문에 중학교보다는 고등학교에서 더 크고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성취평가제를 단순히 절대평가라는 단편적 개념만을 가지고 생각했던 것으로, 그 본질에 숨어있는 과정상의 중요한 점들이 미처 확인되지 못한 아쉬운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성취평가제란 한마디로 ‘성취기준에 따라 학습자들의 성취수준을 평가하는 개선된 절대평가(고등학교에서는 현재 실시되고 있는 석차 9등급의 상대평가가 성취기준이라는 규준을 참조하여 그 성취수준을 평가하는 성취평가로 대체(代替)되는 것이고, 중학교의 경우는 현재 실시되고 있는 절대평가를 더욱 진보된 형태인 성취평가로 강화(强化)하는 것)’의 방법이라 정의할 수 있다. 여기에서 성취기준이란 학습자들이 도달하기 위한 목표이자 평가를 위한 준거가 되는 것으로 내용목표와 행동목표의 이원목표가 하나의 문장처럼 서술되어 구성되는 것이며, 성취수준은 이 성취기준에 학습자들이 어느 정도까지 도달하였는지를 성취도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성취평가제가 그 근본취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위학교에서 학습자들의 철저한 분석을 통해 교과별 성취기준과 성취수준의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급선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 있어 성취평가제의 도입에 조금 아쉬운 점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너무 급하게 도입이 되어 시간에 쫓겨 중요한 과정이 등한시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이다. 성취평가제의 도입 취지가 단편적인 평가방법의 개선만은 아니다. 본질적 목표는 평가방법의 개선을 통해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창의력과 인성을 겸비한 인재육성을 달성하기 위함인 것이다. 많은 논란 속에서 절대평가로의 전환과 강화를 결정한 근본적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일선 학교현장에선 국가 교육과정의 커다란 틀 아래서 많은 고민과 노력을 통해 해당 학교의 학습자 수준에 맞는 성취기준을 개발하고 그에 따라 성취수준을 기술하는 것이 올바른 시작이 되는 것이다.
풀리지 않은 학교와 교사의 고민 과정 수행에 필요한 시간적 여력이 확보되지 않은 현 시점에서 교과별로 성취기준과 그에 따른 성취수준의 기술을 개발하려다 보니 학교단위 및 교과단위의 고민이나 노력이 지속되기보다는 이미 개발·보급되어진 교육과정평가원의 성취기준을 여과 없이 활용하는 경우가 증대하게 되었고, 이마저도 개발되어 있지 않은 일부의 선택과목이나 특성화 및 마이스터고등학교의 전문교과들의 경우엔 상당히 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평가를 목전에 둔 바쁜 학교단위에서는 ‘그저 성취기준과 성취수준의 기술이 학교 내에 내부결재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져 있으면 된다’라는 잘못된 적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적용의 선례는 자칫 2013학년도부터 활용되어질 2009개정교육과정 각론에 따른 교과내용의 성취기준 개발에 있어서도 그대로 답습돼 성취평가제에서의 성취기준과 성취수준 기술의 개발이라는 것이 평가방법의 개선은커녕 그저 매 학기 초마다 빨리 해결해야 하는 행정적인 한 과정의 잡무로 전락해 버릴 위험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선 우리 교사들이 먼저 생각하고 반성해야 할 점도 존재하고 있다. 지난 2007개정교육과정의 각론에 따라 교과서가 개발될 때, 이미 이러한 성취기준과 성취수준에 대한 개념이 함께 고민되었고 학교단위에서 교수-학습과 평가방법의 개선을 고민해 보는 것이 권장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교사들을 통해 학교 현장에 올바르게 정착되지 못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성취평가제의 성공은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와 ‘성취평가제의 성공은 쇠뿔도 단김에 빼야 효율적이 아닌가?’라는 두 가지의 명제 속에서 실제 평가를 운영하고 있는 학교 교육현장에서의 아쉬움만 커져가는 상황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성취평가제 성공적 정착을 희망하다 아쉬움이 있어야 기대와 갈망이 크게 되며, 이런 기대와 갈망이 더 나은 발전을 위한 초석으로 작용하여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되었던 성취평가제에 대한 아쉬움이 그저 아쉬움으로 남고 개선되지 못한다면 성취평가제는 그 원대한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그저 시대를 거쳐 간 하나의 교육정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교육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떠나 현재 자신의 미래를 꿈꾸고 희망을 그려나가는 많은 학생들에게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중차대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앞에 언급된 2가지 명제 간의 조화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되어진다. 성취평가제의 기획과 지원을 담당하는 주체라 할 수 있는 교육과학기술부와 교육과정평가원은 ‘도입원년의 해’, ‘시행초기’라는 중요성과 부담감으로 접근하기보다는 2012학년도 내에서의 성공적 연착륙, 나아가 2009개정교육과정 각론의 개발에 따른 성취기준 개발과 성취수준 기술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시범과 계도적 성격의 지원 강화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성취평가제의 학교단위 적용과 시행의 주체라 할 수 있는 교사들은 성취기준의 개발과 성취수준의 기술, 그리고 평가문항의 개발 등과 같은 일련의 과정과 절차를 그저 일거리의 증가라 불평하지 않아야 한다. 이미 시행을 하여 학습자들에게 적용을 했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를 잠시 잊고 있었다고 생각해야 하며, 미뤄두었던 학습자들을 위한 중요한 과제를 지금이라도 수행해야 한다는 교육자로의 투철한 소명의식을 회복하기 위한 의식전환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와 같이 ‘급할수록 돌아가되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한다’는 이원화된 원리가 상호 조화되어 시간적 여유와 교육자의 소명의식이 공존할 때, 2012학년도의 중학교와 특성화 및 마이스터고등학교를 시작으로 2014학년도 고등학교의 보통교과에 이르기까지 성취평가제는 그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교육과정의 이상과 평가방법상의 괴리라는 커다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학교 교육의 선진화를 통하여 창의력과 인성이 겸비된 미래사회의 인재를 육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