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생각을 아는 법경희여자중학교 3학년 6반의 언어문화 수업 시간. 오늘은 이면지 한 장으로 상대와 얼마나 마음이 통하는지 확인하는 일명 ‘텔레파시 대화’를 경험해본다고 한다. 두 학생씩 짝을 지어 반으로 나눈 종이를 한 장씩 들고 등을 맞대어 선다. 종이를 접거나 찢되 한 학생은 “종이를 가로로 한번 접고 오른쪽 귀퉁이를 작게 찢어”라는 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해주고 나머지 학생은 그 말을 듣고 따라한다. 행위를 다 마친 후 마주본 두 학생의 종이는 얼마나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을까?
여기저기서 새어나오는 탄식을 쫓아가보니 짝꿍의 두 종이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일치하는 부분이 없다. 다른 종이로 다시 한 번 시도. 대신 이번에는 설명을 듣는 학생의 추가 질문을 허용했다. 이번에는 여러 곳에서 아쉬움 대신 “우와, 똑같아”하는 탄성이 쏟아진다. 두 종이의 모양이 일치한다.
“처음에는 애매한 설명을 들으며 내 생각대로 했더니 종이의 모양이 달랐던 것 같아요. 주의를 기울여 상대의 말을 듣고, 이해가 안 될 때는 내가 받아들인 뜻이 맞는지 다시 질문하며 정보를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민경 학생은 교사가 굳이 설명을 해주기 전에 이미 수업의 의미를 찾아냈다. 생각을 표현하고 나누는 수단인 대화. 말하는 사람의 의도는 말하는 방법과 듣는 사람의 이해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쌍방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화자와 청자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하는지 체험으로 느끼며 학생들은 새롭게 ‘대화’와 ‘언어’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강용철 국어교사의 언어문화 수업은 지난해 12월 학생언어문화 개선 특별수업으로 진행되어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참관하기도 했다. 청소년 언어 사용 실태가 문제시 되는 요즘, 이 학교는 마치 게임하듯이 즐거운 수업으로 학생들에게 재미와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올바른 언어 사용법’이라는 교육적 의미까지 스스로 깨닫게 한다.
경희여중에 없는 세 가지벌점, 비속어, 쓰레기. 바로 경희여중에는 없는 세 가지다. 매년 경희여중은 아름다운 경희 ‘3행(三行) 3무(三無)’ 운동을 펼친다. 해야 할 것,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세 가지씩 정해 실천하는 운동이다. 2012년에는 ‘예절 바른 행동,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는 행동, 자기 계발을 위한 노력’ 세 가지를 행할 것과, ‘벌점 받지 않기, 비속어 사용하지 않기, 쓰레기 버리지 않기’의 세 가지 ‘무(無)’의 덕목을 제시했다. 그리고 다른 항목보다도 특히 ‘비속어’ 없는 학교 문화 만들기를 위해 힘썼다.
“언어는 단지 말하는 수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교양, 정서, 표현, 이 세 가지 측면을 함께 생각해 봐야 해요. 언어에는 말하는 사람의 사고와 정서가 담겨져 있거든요.”
강 교사의 말처럼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학교의 모든 교육이 언어교육은 아니지만, 어떤 교육에도 언어에 대한 교육이 녹아있음은 바로 이러한 교사들의 철학 덕분이다.
매일 아침 정규 수업에 앞서 실시하는 독서·명상 교육은 학생들의 감정을 순화시킨다. 교실과 복도에는 학생들이 직접 만든 ‘우리말 행동강령’이나 ‘우리말 신문’ 등이 걸려있다. 국어시간은 물론 수학시간에도 떠들다 걸린 학생, 욕을 하는 학생에게는 ‘시 써오기’와 같은 과제가 부여된다. 이러한 활동은 모두 단기간의 이벤트나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지속적이고 꾸준하게 펼쳐진다. 언제까지? 학생들 모두가 스스로 ‘우리가 변하고 있구나’ 하고 느낄 때까지.
우리의 힘으로 바꿔가요언어문화 개선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의 하나로 김동희 교장은 ‘학생들의 자발성’을 꼽았다.
“우리 학교는 학생회 등 다양한 측면의 학생 활동이 발달해 있어요. 학생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그들이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고 고민할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하죠. 3행 3무도 마찬가지에요. 첫 항목을 제시한 건 저였지만, 매 해 지날 때마다 학생들이 의논을 하여 잘 지켜지고 있는 것은 빼고, 새롭게 지켜야 할 것을 추가시키며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학생회는 물론 35개의 동아리 역시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활동력을 넓히는 중요한 창이 된다. 편집반 ‘다솜누리’는 학교의 학기별 신문과 매년 발간되는 교지를 제작한다. 회원 모두가 기자와 편집자가 되어 콘텐츠를 찾고 취재와 편집을 하기에 학생들의 이야기를 더욱 실감나게 담을 수 있다.
언어순화 동아리인 ‘너나들이’는 바른 언어 사용의 필요성을 느낀 학생들이 직접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춘 활동을 벌이며 친구, 선·후배들에게 많은 공감을 이끌어 냈다. 각자 해보고 싶은 언어문화 개선 안건을 제출하면 동아리 회원들이 모여 그 중 파급력 있고 실현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를 채택,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작년 한 해 동안 너나들이 회원들은 순우리말 신문 및 사전 제작, 언어순화 홍보를 위한 포스터와 UCC 제작, 대중가요 속 언어 순화 프로젝트 등을 시행했다.
너나들이 회원인 3학년 윤한실 학생은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고 흔하게 사용하는 욕설의 뜻을 알아보는 과정을 통해 “대부분의 욕설에 좋은 뜻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막상 욕이 담고 있는 뜻을 찾아보고 나니, 생각보다 더 심하고 상대를 저주하는 의미가 담긴 말도 있었다. 줄여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주변 친구들에게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고 말했다.
마음에서 시작되는 변화
그렇다면 이 학교 학생들은 정말 나쁜 말을 사용하지 않을까? 학생들은 혹시 보이는 데서만 언어순화를 외치는 것은 아닐까.
“욕이요? 솔직히 하죠. 하다가 갑자기 안 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근데 줄여야겠다는 생각은 자꾸 해요. 우리 학교 분위기도 그렇고, 친구들도, 다 같이 안 쓰려는 노력은 하니까요.”
3학년 김예은 학생의 솔직한 대답이다. 당장 고치기는 어렵지만 노력하고 있다는 말. 학생들이 스스로 깨닫고 꾸준하게 천천히 바꿔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사들의 뜻을 알 듯 하다.
벌점이나 강요 등으로 학생들의 습관을 빠르게 교정시키려 하는 것은 드러나는 성과는 있을지언정 마음에서 우러나게 할 수 없는 법이다.
교사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의 문화에 다가간다. 즐거운 수업을 만들기 위한 연구는 물론 사제동행 프로그램을 통해 함께 야구장을 찾고 등산도 가며 서로간의 소통 고리를 만든다. 교사는 물론 교장도 전교생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챙겨주며 드러나지 않게 바른 정서와 인성을 가르친다.
이심전심이라고 할까, 교사들의 사랑과 관심 아래 학생들은 학교문화운동을 벌이며 스스로 변하고 있다. 지킬 것은 지키고, 버려야 할 것은 버려가며 아름다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경희여중. 다가오는 새 학기, 또 다시 힘차게 시작될 학생들의 활동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