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특수교사의 하루“잘 오셨어요. 오늘이 좀 바쁜 날인데, 그래도 보실 건 더 많을 거예요. 이리 따라오세요.” 미끄러운 빙판길을 종종 걸음으로 빠르게 걸으며 황윤의 특수교사가 말했다. 작은 체구에도 힘이 넘치는 목소리와 환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오늘은 학생들이 은행에 가서 그들의 월급을 확인하고 돈을 출금하는 날이라고 한다.
황 교사를 따라 간 학교 옆 농협에는 성남방송고 특수학급 학생들이 벌써 대기하고 있다. 그들은 입·출금기 앞에서 교사의 지시에 따라 통장을 넣고, 비밀번호를 눌러 잔액을 확인하고 돈을 출금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볍게 처리하는 일이지만, 이 학생들은 옆에서 하나, 하나 순서를 콕콕 짚어주지 않으면 힘들다. 직접 모은 돈도 스스로 꺼내 쓸 줄 모르는 이들이 오늘은 황 교사의 도움으로 모두 자기 손에 3만 원씩을 쥐게 됐다. 이 돈은 겨울방학 동안 함께 영화를 보고 눈썰매장도 가는 등 문화활동을 즐기는 데 쓸 예정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다양한 종류의 직업훈련이 이루어지고 있죠. 요즘은 주변의 사업체에서 도움을 많이 줘서 학생들의 활동이 실습으로만 끝나지 않고 본격적인 생산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3년간 90만 원 정도 모은 학생도 있답니다. 우리 아이들 너무 대견하지 않나요?”
은행 업무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 보니 이번엔 트럭 한 대가 황 교사를 기다리고 있다. 학생들에게 작업을 맡기고 월급을 주는 업체에서 완성된 상품을 운반하기 위해 온 것이다. 마스크 팩, 네일아트 상품 등이 담겨 교실 한쪽 벽면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상자들은 황 교사의 인솔에 따라 학생의 손을 통해 하나씩 트럭으로 옮겨졌다.
다음 장소는 실습실. 제과제빵실에서는 용인의 포곡고등학교에서 실습 온 특수학급 학생들이 케이크를 만들고 있었다. 전문 조리사 선생님의 지도아래 티라미수와 치즈케이크를 만드는 학생들의 눈빛이 진지하다. 성남방송고에 구비된 다양한 실습실에 직업 교육을 위해 방문하는 다른 학교 특수학급 학생들은 월간 500여 명, 이들이 매끄럽게 실습을 진행하기 위해 시간표를 짜고 필요한 물품을 관리하는 일도 모두 그에게서 시작된다.
시혜적 복지에서 생산적 복지로황 교사가 근무하는 성남방송고는 2010년 통합형 직업교육 거점학교로 선정됐다. 특성화 고등학교에 통합된 장애학생의 진로·직업교육 내실화를 위해 지정·운영되는 이 학교는 장애학생에게 현장실습 위주의 직업교육을 제공하고 인근 특수학급 학생에게도 직업훈련 및 컨설팅을 해주며 지역 장애학생의 직업교육 거점학교로서 기능을 수행한다.
발달·지적·자폐성 장애 등을 가진 학생들은 현실적으로 고등교육기관 진학보단 고교 졸업과 동시에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학생들에게 직업교육은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과정임과 동시에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더해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발휘한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장애인 직업교육 분야는 황무지였어요. 그때부터 직접 돌아다니며 장애인시설 현황, 관리 실태 등을 확인하고 특수학생의 직업훈련을 돕는 특수학교 전공과를 공부했죠. 장애인은 도움만 받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똑같은 우리사회의 한 구성원임을,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알리고자 노력했어요. 지금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많이 좋아지고 사업체와 공공기관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어요.”
그는 장애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도움과 복지보다는 함께 어울려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그들만의 능력을 찾고 그것을 토대로 직업을 갖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훈련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직업훈련은 사회 적응 훈련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그들의 성과나 능력에 따라 연봉이 차등지급 되듯, 성남방송고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작업량이 많은 학생들에게 월급을 더 많이 지급해 자기 노동의 가치와 그에 따른 사회생활의 모습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것도 수업의 하나인 것이다.
잘한다, 칭찬이 우리의 힘“옳지, 네 혼자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그렇지, 아주 잘하고 있어” 인터뷰 중간 중간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황 교사로부터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은 “그렇지”와 “잘한다”이다.
칭찬은 학생들의 성취감과 자신감을 회복하게 하고 이제껏 발휘하지 못했던 의사소통도 더욱 원활하게 해준다. 격려의 말 한마디에도 학생들은 목소리가 커지고 표정이 밝아진다. 그에게 칭찬은 가장 효과적인 교육법이다. 잘못하거나 틀려도 야단치기에 앞서 “다시 생각해보자”며 기회와 힌트를 주고, 칭찬스티커를 만들어 교실에 비치된 판넬에 붙이는 방식으로 독려해 주기도 했다. 학생들이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황 교사는 언제나 칭찬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렇게 얻어지는 성취감과 자신감은 장애학생은 물론 청소년 시기의 모든 학생들에게 큰 위력을 발휘하는 요소이다. 그래서 ‘꾸준히 지켜보고 기다려주고 칭찬해주기’는 일반 학생에게도 필요하다.
“장애학생들은 보이는 장애의 어려움을 지원하면 되지만, 일반 학생들은 환경적, 정신적 어려움 등 문제를 가지고 있어도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지도하기 더 어려워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럴 때면 특수교육이 일반교육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요.”
특수교육과 일반교육의 효과적인 접목 방법을 고민 중이라는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돕고 의지해서 살아야 하듯, 교육에서도 특수교육, 일반교육이 서로 보완점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한다.
“웃으면 예쁜데, 선생님 웃어요!”
교실에서 진행된 사진촬영을 지켜보던 학생들이 황 교사를 향해 외쳤다.
“웃으면 예쁜데, 선생님 웃어요!”
“너희들이 선생님을 웃게 해줘야지.” 황 교사의 대꾸에 교실은 온통 웃음바다가 됐다.
“와하하하하.”
자기 몸이나 행동을 쉽게 제어하지 못하는 학생들, 정말 단순한 사실부터 하나하나 알려줘야 하고, 같은 작업도 몇 번의 반복 학습이 있어야만 하는 이 학생들. 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학교의 여타 업무까지 소화하다보면 평균 퇴근 시간은 오후 9시라는 황 교사의 표정이 너무 편안하다.
“우리 학생들 참 예쁘지 않나요? 이 아이들은 누굴 속일 줄 몰라요. 순수하고, 머리를 굴릴 줄도 몰라요. 혹여 잔머리 돌리는 모습까지도 다 눈에 보이죠. 누군가 사랑을 주고 아껴주면 자기가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느껴요. 그리고 또 그만큼 숨김없이 표현한답니다. 제 일이 힘들어 보이나요? 이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이렇게 즐거운데, 힘들 틈이 어디 있나요.”
학생들 덕분에 언제나 웃으며 젊게 살아간다는 황 교사. 이 학생들이 장애와 비장애 구분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의 희망과 노력 속에 성남방송고 특수학급 학생들, 모든 장애학생들은 환한 웃음으로 사회와 함께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