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앞에 처음 맞는 바람이 불어오고, 앞이 안 보이는 더 험한 날이 찾아올지라도 친구, 너와 함께 걷고 있다면’ -박노해, 2008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친구와 아픔을 나누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와 희망을 준 교사와 학생들의 사연이 주변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최한 ‘제5회 대한민국 교육기부대상’에서 홍보UCC 부문을 수상한 이정미 서울 가락고 교사와 여학생 학교스포츠클럽 ‘발모아’ 학생들의 이야기다.
가락고 ‘발모아는’ 창단 4개월 만에 서울시교육감배 학교스포츠클럽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실력 있는 팀이다. 이 교사 역시 15년 이상 아마추어 축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체육인으로 이들은 2014년부터 매월 1회 뇌성마비 장애인 선수로 구성된 ‘곰두리축구단’과 합동훈련을 통해 재능기부를 해오고 있다. 이 교사는 “학생들은 자신의 재능을 나누면서 조금 느려도 함께하는 법을 배운다”며 “운동 후 환하게 웃으며 행복해하는 장애인 친구들에게 힘을 얻어 3년째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발모아의 활동은 지난 6월 같은 학교 친구인 서범석(3학년) 군이 운동장에서 갑자기 쓰러진 후 뇌경색 판정을 받게 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평소 활동적이고 누구보다 축구를 좋아했던 학생이기에 주변의 안타까움은 더욱 컸다.
서 군은 현재까지 재활치료를 하며 사투를 벌여이고 있다. 처음에는 오른쪽 팔과 다리를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축구 사랑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이 교사와 발모아는 범석이를 사랑하는 모임 ‘범사모’를 만들어 서 군이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다. 이 교사는 “친구들 5~6명이 우르르 병문안을 간 후 차츰 방문이 끊기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며 “순번을 정해 병문안을 갔고 매일 방문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구체적인 재활 목표를 가질 수 있도록 과거 축구 할 때 찍었던 사진, 응원카드 등을 꾸준히 보냈다. 응원판에는 ‘빨리 쾌유하길 바라’, ‘얼른 나아서 계속 축구하자’ 등 친구‧후배들의 메시지가 가득했고 서 군은 응원판을 침대 옆에 놓고 보면서 힘을 냈다. 서 군의 어머니도 숟가락으로 밥 먹는 모습, 처음 일어나 걷는 모습 등 회복 과정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전했다. 서 군은 “갑작스러운 변화로 속상하고 괴로 짜증부리고 싶어도 혀에 감각이 없어 소리를 낼 수 조차 없는 절망적인 시간이었다”며 “선생님과 친구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서 군은 마침내 지팡이를 짚고 조금씩 걷게 됐다. 처음 학교에 오던 날 서 군은 5분이면 오던 학교를 30분 만에 도착했다. 이날 서 군은 운동장에서 발모아팀과 장애인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보다 훨씬 힘들어 보이는 장애인들이 공을 차며 치열하게 뛰는 모습에 운동장에 가만히 서 있는 한이 있더라도 축구를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서 군은 “비록 뛰지는 못해도 미드필더 자리에서 친구들이 보내준 공을 힘껏 차려고 노력했다”며 “선생님과 학교의 교육기부를 통해 많은 희망을 얻었고 재활치료를 더욱 열심히 해서 장애인 축구 국가대표 선수가 되겠다는 새로운 꿈도 생겼다”고 말했다.
13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이 교사와 서 군이 함께했다. 이 교사는 서 군과 발모아 팀의 교육기부 이야기를 UCC로 제작했고 서 군도 자신의 이야기를 수기로 풀어 나란히 상을 받게 된 것이다. 이 교사는 “발모아는 앞으로도 더디게 걷는 사람들과 발을 맞출 것”이라며 “자신의 재능이 누군가에게는 금빛 같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점, 봉사는 받는 이보다 하는 이에게 더 큰 행복을 준다는 것을 기억하고 많은 사람들이 ‘더딘 걸음’에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