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 주머니 안에 있던 휴대폰의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액정 위에 찍힌 휴대폰 번호가 그다지 낯설어 보이지 않았다. 2학년 O반의 OOO였다.
"선생님, 저희 학교 개학일이 언제예요?"
안부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개학 일을 물어보는 녀석이 괘씸했다. 한편, 성적과 관계없이 학생이라면 최소 개학이 언제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따끔하게 혼을 내줄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오랜만에 연락 온 녀석에게 핀잔을 주는 것도 아닌 듯싶어 개학 일을 일러주었다.
"2월 6일 월요일이야. 이번에는 잊으면 안 돼. 알았지?"
사실 녀석은 지난 여름방학 때도 개학일이 훨씬 지난 일주일 뒤에 학교에 나와 담임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녀석은 방학 때가 되면 가방 하나를 메고 전국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녔다. 그리고 개학 때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매번 녀석은 그곳에서 자신이 찍은 사진을 SNS으로 내게 보내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내 휴대폰에는 녀석이 보내준 사진이 많이 저장되어 있다.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녀석은 이런 식으로 해소하곤 하였다. 녀석은 일탈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새 학기를 위해 자신을 재무장 하는 듯싶었다.
방학 때가 되면 잘 짜인 각본대로 무대 위에 오르는 연극배우처럼 아이들은 학원과 도서관 등으로 내몰리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 현실이다.
그런데 이제 예비 고3인 녀석은 이런 현실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상을 꿈꿔 왔다. 그래서일까? 녀석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항상 여유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오직 일류대학 합격을 위해서라면 자기몫 챙기기에만 여념이 없는 아이들보다 녀석은 항상 주변을 둘러볼 줄 아는 배려심이 많은 아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는 녀석에게 단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개학 일을 잘 모른다는 것.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개학, 이번 개학 때는 녀석의 얼굴을 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행여 녀석이 개학 일을 잊지 않을까 싶어 개학 일을 문자로 보내주었다.
개학일: 2017년 2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