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인생역전'이라는 말이 크게 유행했다. 어디 인생역전뿐인가. 소설을 읽건 영화를 보건 사람들은 항상 짜릿한 극적 반전을 기대한다.
극단 작은신화의 '채플린, 지팡이를 잃어버리다'(극본 서현철·연출 최용훈·22일까지 서울 대학로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 02-764-3380)는 이런 극적 반전에 충실한 연극이라 할 수 있다.
#상황 하나, 태어남.
만삭에 가까운 임산부가 산부인과 로비에 앉아 배를 쓰다듬고 있다. 늦은 나이에 임신한 여자는 장차 태어날 딸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행복한 꿈에 젖는다. 이때 10대 소녀 하나가 병원에 들어선다. 소녀는 아무렇지 않게 아이를 낙태하러 왔다고 말한다.
#상황 둘, 사랑.
연인이 시소 위에 걸터앉아 있다. 이미 헤어지기로 결심했지만 뭔가 미련이 남는지 자꾸 지나간 추억을 곱씹는다. 그러나 서로에게 잘해주지 못한 자신을 반성할 때마다 상대방에게 쌓였던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상황 셋, 일.
지하철 안, 소심해 보이는 청년 하나가 커다란 가방을 들고 쭈뼛거리며 앞으로 걸어온다. "아, 아…, 안녕하세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렁찬 목소리의 아주머니가 보따리를 끌고 등장한다. "바르는 찰나에 붙어버립니다. 차아아아알라 접착제!" 청년은 힘없이 돌아서서 자리에 앉고
만다. 찰나 아주머니가 사라지자마자 청년은 다시 일어나 지하철 가운데에 선다.
#.상황 넷, 죽음.
양복을 차려입은 젊은 남자가 구두를 벗고 흰 봉투를 그 사이에 끼워놓더니 한강 다리 난관 앞에 선다. 뛰어내리려는 순간, 낯선 노인이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여기는 물이 얕아. 저쪽에서 뛰어내려." 신경이 곤두선 남자는 노인을 향해 소리를 질러댄다.
네 개의 에피소드를 따라가다 보면 고개를 내밀고 내 주변 사람들의 일상을 깊숙이 들여다본 느낌을 받는다. 실업, 불황, 낙태, 자살의 무게 아래 짓눌린 현대인. 연극은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게 풀어나가고 있지만 마지막 반전 뒤에 찾아오는 웃음은 왠지 쓸쓸하다.
물론 채플린은 출연하지 않는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은 지팡이도 없이 뒤뚱거리는 채플린과 닮아있다. 우스꽝스런 채플린의 모습에 폭소를 터뜨리면서도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거린 30년대 관객들처럼, 200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등장인물들의 엉뚱한 행동에 웃음과 연민을 동시에 뱉어내게 된다.
극단 관계자는 "진지한 웃음바다, '앗'하는 마지막 반전이 극의 핵심"이라면서 "어렵지 않은 내용으로 꾸며져 있으니 특히 학생들이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