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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선생님, 저희들 물러갑니다"

잊지 못할 제자, 잊지 못할 졸업식


누구나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중 하나가 바로 입학식과 졸업식이다. 마냥 들뜨는 입학식과 달리 졸업식은 헤어짐의 아쉬움,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로 가득하다. 엄숙한 분위기, 눈물 쏟는 학생이 흔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웃고 떠드는 '가벼운' 졸업식 일색이지만 제자들의 앞날을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바라보는 교사들에게 졸업식은 여전히 뜻깊은 행사다. 한 학년을 마무리하는 2월, 교사들이 말하는 '잊지 못할 졸업식'을 모아봤다.

#헹가래치며 아이들도, 나도 울었다
졸업 때만 되면 20여년 전 부임 첫 해 첫 졸업생들과의 헤어짐이 생각난다. 오지 산촌에서 35명과 함께 지낸 그 해는 내 교직 생활의 하이라이트였다. 밤늦도록 교실에 남아 함께 가르치고 배웠으며, 오후에는 들로 산으로 함께 어울렸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복사기 하나도 없었던 그 때, 담임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문집을 펴내 졸업기념으로 나눠 가진 기억이 난다.

"어려움이 있을 때 스스로를 비추어 보라"며 학생 모두가 사인한 편지와 함께 작은 손거울을 받고 얼마나 감격했던지…. 졸업식 후 엉엉 울던 학생들이 담임인 나를 헹가래칠 때 감격에 겨워 닭똥 같은 눈물을 주르륵 흐리던 청년 교사의 순수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박은종 충남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반 이상이 저녁에 집으로 찾아와
1971년 2월, 17명 정도를 졸업시키는 산골마을의 졸업식이었다. 졸업식장도 6학년 담임인 내가 직접 기안해 꾸몄다. 식이 끝나고 졸업식 노래를 부를 때는 우는 소리도 들렸다. 담임인 나도 목이 메이고 눈물이 글썽거렸다.

저녁에는 졸업한 제자들이 반 이상 찾아 왔다. 선물로 스웨터를 하나 포장했고 과자와 음료수를 사왔다. 값으로 치면 얼마 되지 않지만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처음 졸업시킨 제자들이 준 선물이라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시골의 조촐한 졸업식이
그리워진다. /윤종을 강원 인구초 교감

#구속됐다 풀려난 제자 눈물의 다짐
처음 교직에 발을 들여놓았던 15년 전쯤에는 졸업식날 우는 학생들이 너무 많았고 그래서 담임 선생님도, 심지어는 학부모들도 함께 울던 기억이 있다. 요즘도 여학생들 중에는 졸업식 후에 교무실에 와서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녀석들이 있기는 하다. 초임 발령을 받았던 학교에서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돈을 빼앗다가 구속된 적이 있었다.

가정환경이 매우 어려웠던 데다가 졸업을 몇 달 앞두고 구속됐기에 정말 암담했다. 학부모와 함께 이웃주민들에게 그 학생을 용서해달라는 탄원서 연명부 서명을 받아 법원으로 갔다. 결국 그 학생은 졸업을 며칠 앞두고 풀려나게 돼 무사히 졸업식을 맞았다. 부모님도 울고 나도 눈물을 글썽였다. 인생을 열심히 살겠노라고 울먹이던 그 학생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전웅주 충남 성환고 교사

#아직도 그리운 마지막 졸업식
1997년 2월 22일, 전교생 3명에 졸업생이 2명이었던 초미니 학교. 졸업생 2명은 오누이였다. 사방이 거대한 댐으로 둘러싸여 뱃길이 유일한 교통로였던 곳. 통학선의 선장님이 폐선의 아쉬움을 한잔 술로 달래던 그날 밤이 아직도 엊그제처럼 느껴진다.

졸업식이 끝나고 10여호의 동네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마지막으로 교문을 나서는 나에게 작별의 아쉬움으로 힘없이 흔들던 주름진 손들이 아련하게 그립다. 지금은 대학생이 됐을 제자들 모습도 보고싶어진다. /박용수 경남 계룡초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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