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따른 여학생들의 폭행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충동적, 집단적이면서 죄의식마저 희박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학생간 폭력이 잔혹함은 배가되고 책임감은 줄어드는 경향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폭행의 정도가 어느 수준이냐를 떠나 피해 학생을 조롱하고 이를 SNS를 통해 생중계하다시피 하는 행위에 가슴을 떠는 시민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아이들끼리 치고받는 차원이 아니라 범죄의 카테고리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소년법 개정이나 폐지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교육적 책임론도 거세다. 공동체 의식 부재, 입시 위주의 가정·학교문화, 부실한 인성교육 등에서 찾는 목소리가 높다.
학교나 가정에서 입시 위주의 교육에만 집중하고 공동체 문화가 깨지면서 사회 전체가 공감능력을 잃고, 청소년들은 무차별적인 폭력에 노출됐다는 것이다.
조벽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지난 8월 교육부와 경북교육청이 공동 주최한 인성교육 포럼에서 “우리나라 인성교육이 입시 공부하듯 지식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많은 시간과 인력을 투입하고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한국 학생들의 민주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사회성, 협력성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지만 도덕에 대한 지식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즉, 책으로 공부해서 무엇이 옳고 옳지 않은지를 아는 것은 세계 최고지만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인성교육으로 인하여 학생들이 아무리 옳은 생각과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해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가치가 없다”면서 “인성이란 앎(지식)이 아니라 삶(행동) 이며 바람직한 생각도, 바람직한 의도도 아닌 바람직하게 살아가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단지 학생들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가르치는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이 바람직한 행동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조 교수는 또 미국에서의 인성교육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나라의 인성교육도 혁신적인 패러다임 변화가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인성교육은 지난 1980년대부터 대통령 주도로 시작됐다. 지난 30년간 시행해 온 미국의 인성교육 전략은 크게 네 가지다. 먼저 여론을 움직이는 슬로건과 캠페인을 벌이고, 보상과 처벌로 인성을 강화하는 방법을 썼으며, 반복적인 훈련을 실시하고, 엄격 한 규칙(퇴학 등)을 정해 인성을 훈련시켰다.
그러나 이 같은 인성교육은 2010년 연방정부가 실시한 대규모 연구에서 ‘총체적 실패’ 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한마디로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예방하는 데 인성교육이 효과가 없었을 뿐 아니라 학업성취도를 향상하는 데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대통령까지 앞장서는 등 정부의 강력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인성교육이 실패로 끝난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원인을 행동주의 교육방식에서 찾았다. 학생들에게 어떤 행동이 올바르고 바람직한 행동인가를 알려준 후에 그것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교육 방법을 쓴 것이다. 강하고 반복적인 메시지 전달은 제품을 선전할 때 자주 활용 되는 판매 전략이지만 인성교육에는 그리 효과가 없었던 셈이다. 상과 벌로 학생들의 행 동을 좌우하려는 시도 역시 일반적으로는 매우 막강한 동기부여 방법이지만 효과가 없 기는 마찬가지였다.
엄격하기만 한 규칙은 사춘기 아이들의 행동을 규제하지 못했다. 군대처럼 고강도 훈련으로 바람직한 행동을 반복적으로 시켜도 효력은 그때뿐, 훈련이 끝난 후에 지속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결론은 바람직한 행동을 요구한다고 해서 학생들이 이를 실천하는 것은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만 확인됐다.
따라서 조 교수는 가장 효과적인 인성교육으로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인사할 때에 공경하는 마음을 담도록 가르치고 싶을 때에는 단순히 매나 용돈을 주면서 달성할 수는 없다고 했다. 잘못을 한 사람이 허리를 90도로 꺾어 인사를 해도 충분한 죄책감과 수치심을 담아내지 못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그 모습 에서 가식과 위선을 느끼고 더 분노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설명이다. 감정이 동반되 지 않는 행동에는 진심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담배를 끊을 때도 마찬가지다. 담배 피우는 행동에도 감정이 중요하게 작동한다. 담배가 나쁘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잘 알지만 피우고 싶은 마음(욕구, 감정)이 더 강하기 때문에 끊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 교수는 감정은 이성보다 훨씬 더 위력적이라고 했다.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심적 영역의 원동력은 감정이므로 인성교육에는 감정을 움직이는 방법들이 동원되어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이성보다 감정을 움직이는 인성교육 필요
핵가족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공동체의식이 붕괴된 것도 인성교육의 한계를 드러낸 요인으로 꼽힌다. 예전에는 대가족 제도에서 살면서 인성교육이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갔다. 아이 곁에는 엄마와 아버지를 비롯해서 조부모와 큰아버지, 고모, 고모부도 있었고 아버지 같은 큰형, 엄마 같은 누나, 그리고 사촌 같은 이웃들도 많았다. 즉, 아이 한 명 곁에 어른들이 수십 명이나 있었기에 굳이 서당에서 맹자와 논어, 대학을 배우지 않아도 성숙한 언행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조 교수는 “인성교육은 말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직접 보여주는 것이고 훈계가 아니라 모방이어야 한다”며 학교는 물론 가정과 지역사회의 총체적인 노력을 주문했다.
그렇다면 갈수록 거칠어지는 학생들 간 폭력을 예방하고 순화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조 교수는 나와 매우 다른 비전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관계조율 능력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했다.
비전공유, 갈등관리, 소통, 배려, 감사, 존중 등 관계를 조율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각자 동물적인 본능인 이기심과 공격성, 성적 충동을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인간은 원초적으로 불안한 존재이기에 그 불안감, 공포감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감정 조절력을 기르는 훈련의 필요성을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마시멜로의 이론’처럼 학생들 이 각종 욕구와 욕정을 잠시나마 미룰 수 있는 자기조율 역량을 기르는 것을 인성교육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조 교수는 이 같은 조율 능력을 기르기 위한 6가지 방법론도 함께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6가지 행동이론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인성교육은 말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직접 보여주는 것이고 훈계가 아니라 모방이어야 한다. 학교는 물론 가정과 지역사회의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자율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아이가 자신의 감정과 생각과 행동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시켜야 한다.
둘째, 합리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감정과 생각을 연결하는 연습을 시켜야 한다. 아이 스스로 선택의 여지를 창조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
셋째, 긍정심을 지니고 나눌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외적 자극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만 아니라 긍정적 감정과 생각을 상상해서 내적 자극을 유발 하는 것도 아이가 갖춰야 할 능력이다.
넷째, 감정을 표현하고 잘 표출하는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타인의 감정을 긍정적으로 이동시켜주는 기술도 필요하다. 그게 바로 신뢰를 쌓아가는 기술이며 우호적인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감정코칭인 것이다.
다섯째, 입지하여 뜻을 세워야 한다. 자기보다 더 큰 곳에 의미와 비전, 뜻과 꿈을 담아 내야하는데, 이것이 공익조율이다.
여섯째, 공익을 위함이 결국 모두에게 이롭다는 진실을 깨닫도록 도와야 한다. 부모, 스승, 군자가 그렇듯이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 어른이 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조 교수는 “이상 여섯 가지 행동이론이 제대로 작동할 때 어린이를 건전한 사회인으로 만드는 인성교육이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식은 책과 인터넷에서 언제든지 얻을 만큼 얻을 수 있지만 지혜는 오로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진다”면서 “먼저 어른이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어른다운 어른이 사는 사회, 그것이 최고의 멘토라는 조 교수의 지적은 학생폭력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깊은 지 금, 새겨볼만한 고언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