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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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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추석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향하는 길, 고속도로가 막힐 것 같아 국도로 진입했지만 결과적으로 교통 체증을 훨씬 더 겪게 되었다. “당신, 지금까지 뭐했어. 저기 아주머니 봐봐. 정신없이 자고 있네. 다들 남편이 운전대를 잡았는데 우리 집은 참 별일이네.”운전이 서투른 나를 대신해 20년 운전베테랑인 아내가 거의 혼자 운전을 하다시피 했으니 독박을 쓴 느낌이 영 떨떠름한 모양이었다. 아내의 볼멘소리를 듣던 두 아들 녀석도 엄마가 안쓰러웠던지 “아빠, 이젠 교대 좀 해주세요.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여요.”라며 아내를 응원하고 있었다.‘이놈들, 나이 먹으면 자식도 엄마편이라더니 옛말이 하나도 안 틀렸구먼.’중얼거리며 마지못해 운전대를 잡았다. 
  
사실 내가 운전을 싫어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평소에 늘 덜렁대는 탓에 남들은 이런 나를 보고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운운하며 놀려대기도 했고, 그 동안 운전 중에 겪은 크고 작은 사고 경험이 있기에 걱정 반 두려움 반이 교차되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아내와 자식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운전대를 잡았지만 꽉 막힌 도로가 좀처럼 뚫릴 기세가 전혀 없었다.    그 동안은 대부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시 택시를 타는 등 온갖 교통수단을 다 이용해서 귀향길에 올랐던 터라 자가용은 왠지 낯설기만 했다. 이번에도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아내와 아들 녀석들을 설득을 했지만 나의 목소리가 약했던지 할 수없이 자가용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그만 도로까지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도 정체가 심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자가용이 짜증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에라 모르겠다. 그냥 아내와 아이들만 차로 보내고 지금부터라도 기차 입석이라도 끊어서 가볼까?’하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가장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꿋꿋이 운전을 해야 했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국도를 이용하다보니 길가에 늘어선 코스모스가 가을의 정취를 더해주고 있었다. 옥수수와 호두과자를 사먹고 잠시 화장실에 들르기도 했지만 여전히 정체가 거듭되어 시간만 자꾸 흐르고 있었다. “얘들아, 지금부터 개그 한 가지씩 하는 거다.” 지루함을 이겨보려고 가족들에게 게임을 하나 제안했다. 별로 웃기지도 않은 나의 네비게이션 개그를 시작으로 두 아들 녀석과 아내도 나름 재미있는 유머 한 가지씩을 했고 많은 노래도 불러보았지만 좀처럼 자동차는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이런 저런 이야기 속에 드디어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고향에 도착 했다. 평소 같으면 두 시간 이면 충분히 도착할 고향을 무려 일곱 시간을 넘게 운전 했으니, 허리도 아프고 눈도 아프고 안 아픈 곳이 없을 정도로 컨디션은 최악이었지만 소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나를 반기듯이 넙죽 절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은 정말 좋았다.‘그래, 내가 이 맛에 온다.’흡족해하는 내 모습과 달리 아내는 음식 준비할 생각에 부담이 되었던지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여보, 기분 풀어. 오느라 고생했어.”모처럼 그리던 고향에 도착하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지 나도 모르게 아내를 위로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어머님 산소에 가서 기도를 드리고 오는 길에 가재도 잡고 밤도 줍는 등 신나게 자연과 호흡하며 고향이 주는 선물을 만끽했다. 자연은 그대로지만 어렸을 적과 같은 정겨운 명절풍경이 사라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저마다 뭐가 그리 바쁜지 고향을 방문한 사람들 대부분 자동차를 타고 번개같이‘획’지나가버리거나 얼굴조차 낯설다. 세월이 바뀌어 사람들 사는 모습도 많이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악수 한 번하며 담소를 나눌 기회도 없으니 사람 사는 정이 사라진 것 같아 못내 아쉬웠다.

“아들아, 인생에서 한 번 길을 잘못 들어서면 방금 겪는 교통체증처럼 시간을 낭비하게 된단다.” 추석 귀향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섰다가 돌고 돌아서 가는 바람에 많은 시간을 지체했을 때 아내가 아들을 향해 던진 한 마디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 동안 교직에 적응이 안 되어 쉽게 갈 수 있고 정면 돌파를 해야만 하는 일도 자꾸 나름 합리화하고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해서 돌고 돌아왔던 세월이 이번 귀성길과 너무 흡사해서 일까. 지름길을 돌아 에움길로 좀 돌아가면 어떤가. 가족들과 함께한 즐거운 시간들, 휴게소에서 먹은 맛있는 음식들, 길거리에 핀 코스모스 한 송이 그 자체가 넉넉한 행복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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