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형사립고등학교는 자립형사립고등학교에서 역사를 찾을 수 있다. 원조 자사고는 김대중 정부 때 처음 도입됐다. 특성화된 학교를 확충해 교육수요자의 학교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어 대거 확대되었다. 교육은 다양성과 수월성이 있어야 하고, 좋은 학교를 많이 만들어서 외국으로 유학 갈 필요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 확대 취지였다.
또한 고교평준화 문제를 보완하여 학생들의 학교선택권 보장에도 의미를 두고 있다. 하향평준화 교육에 대한 우려도 자사고 도입에 한몫했다.
그러나 자사고는 귀족학교 논란과 설립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아왔고,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들어선 2014년부터 폐지 논란이 심화되었다. 자사고 논란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학생선택권 보장과 고교서열화를 부추긴다는 것이 그것이다.
자사고는 출범하자마자 우수한 학생들을 싹쓸이 한다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초기에는 지원 자격으로 내신 성적 기준을 두었으나 이후 대부분의 자사고에서 내신 성적 기준 없이 지원이 가능하고, 1차 전형에서 추첨에 의해 2차 면접전형에 참여할 학생들을 선발한다. 사실상 누구나 지원이 가능한 학교로 달라진 것이다.
이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살리되 수월성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과정은 완화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에는 자사고에 따라 지원 학생수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면서 자사고 스스로 일반학교로의 전환을 꾀하는 경우들도 나타나고 있다.
자사고 존폐 논란에서 이 부분을 주목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자사고로 계속 운영이 어렵다면 일반고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데 훨씬 더 유연해 보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입맛따라 춤추는 자사고 정책
자사고의 존폐가 정권마다 반복되는 이유로 교육 외적인 즉, 정치적인 필요를 꼽는 이들이 많다. 수시로 개정되는 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도 이와 비슷하다는 지적이다. 교육은 어떤 경우라도 정치적 중립을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교육과정개정, 교장임용제도, 자사고 폐지 등이 정치와 관련되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일선 학교 교사 일부와 학부모들 일부를 제외하고는 자사고 재지정에 대한 관심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교육 외적인 문제로 소모적인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는 의견 중에 자사고의 운영상 문제와 사학비리 문제를 거론하기도 한다. 이는 논란거리가 될 수 없다.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켰거나 비리가 발생되었다면 당연히 지정 취소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문제는 자사고에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자사고는 전체 모집 정원의 20%를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그 자녀, 차상위 계층, 국가보훈대상자 등을 대상으로 한 사회통합전형으로 선발하도록 하고 있다.
일부 학생들만을 위한 학교로 보는 시각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가정형편에 관계없이 누구나 원한다면 입학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는 것이다. 차별적인 요소가 있다고 보기에는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자사고는 학교별로 내신 성적 등의 교과전형을 별도로 실시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특목고와 같은 맥락으로 자사고를 포함시키려 하지만 특목고와는 근본부터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속된 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을 사전에 정해놓고 거꾸로 절차를 진행할 때 이를 꼬집는 표현이다. 최근 자사고 평가에서 재지정을 받지 못하는 학교들이 많아지고 있다. 기준점수를 특정 지역, 특정 학교에 불리하도록 높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평가가 객관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자사고와 학부모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자사고는 ‘아싸’ 혁신학교는 ‘인싸’
다양성을 추구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와 획일적인 평준화 교육에 변화를 주면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지정된 것이 자사고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설립 취지에 맞게 성실한 운영으로 부러움을 사는 학교들이 상당수 있다. 도리어 이들 학교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자사고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는 반면 혁신학교는 논란을 피해 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자사고보다 더 큰 비난과 논란의 소지를 가지고 있는 학교가 혁신학교이다. 자사고나 혁신학교나 하나의 학교 형태지만 논란의 온도차는 상당히 크다. 주지하다시피 혁신학교는 자사고와 달리 진보교육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특히 각종 통계에서 혁신학교의 학력 저하 현상이 뚜렷함에도 이를 부정하면서 계속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들은 학교를 혁신하고 교육과정 운영을 혁신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2015 개정교육과정의 시행으로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목표와 혁신학교의 혁신교육 목표가 상당히 닮아 있다. 더이상 새로울게 없는 것이 혁신학교다. 더구나 중학교에서의 자유학년(기)제 도입으로 더 이상의 혁신을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당연히 혁신학교를 더 이상 확대할 이유가 없어졌다. 기존의 학교를 지정 취소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분위기가 성숙되어 있다.
경기도의 경우 전체 초·중·고 2,366개교 중 혁신학교는 665개로 28.1%를 차지하고 있다.
초등학교가 1,263개교 중 378개교(29.9%), 중학교 629개교 중 218개교(34.7%), 고등학교 474개교 중 69교(14.6%)이다.
서울의 경우는 전체 고등학교의 320개 중 혁신학교는 15개교로 3.8%이다. 교육청에서 집중적으로 혁신학교를 확대 운영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으나 중·고등학교의 혁신학교 전환은 난항에 부딪힌 상태다. 초등학교의 비율을 보면 603개교 중 164개로 27.2%, 중학교는 382개교 중 45개로 11.8%로 경기도의 비율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향후에도 이런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그 이유는 학부모들이 혁신학교에 공감하지 않고 적극적인 반대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대학입시에 대한 부담감이 일찍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제도 개선 없이 혁신학교를 도입한 것은 당초부터 현실에 맞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혁신학교는 초기에는 교당 1억 5천만 원 정도의 예산이 지원되었으나, 최근에는 상당히 줄어들어 서울의 경우 5~6천만 원 선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혁신학교가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수년 전 보수교육감 시절에 혁신학교를 평가하여 재지정 혹은 지정 취소를 하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러나 지표를 정하는 단계부터 강한 반발에 부딪혀 협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들은 학교 자체적으로 평가가 잘 이뤄지고 있는데 굳이 외부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폈다. 우여곡절 끝에 평가 보고서가 나왔지만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혁신학교에도 엄격한 평가 이뤄져야
시범학교나 연구학교가 운영되면 우수사례를 다른 학교에 보급하게 된다. 혁신학교에 비해 훨씬 적은 예산으로 운영하면서도 교사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자료들을 개발·보급하는 학교들이 많다. 그러나 우수하다는 혁신학교의 자료를 접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물론 혁신학교도 평가는 받는다. 그러나 평가단에 혁신학교 경험이 있는 교사들이 포함되면서 평가보다는 컨설팅의 의미가 크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쉽게 수긍되지 않는 대목이다. 따라서 혁신학교도 자사고 처럼 더 강도 높은 평가를 실시함으로써 누구나 평가 과정과 결과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고 결과에 따라 지정 취소도 검토되어야 한다.
혁신학교는 진보교육감들의 전유물로 거듭나면서 확대되고 있고, 자사고는 재지정보다 지정 취소에 방점을 두고 평가를 진행한다는 의혹 속에서 대폭 축소의 위기에 몰려 있다. 혁신학교에도 분명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혁신학교 운영이 모두가 만족할 만큼 제대로 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는 시각은 그리 많지 않다. 마치 별천지의 학교처럼 운영되는 것이 자사고를 바라보는 시각이라면, 혁신학교에도 똑같은 시각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전라북도교육청에서는 자사고에 이어 혁신학교도 평가를 한다고 한다. 다른 교육청도 곧 혁신학교 평가를 할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어떤 평가단이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관건이다. 자사고처럼 과감히 칼을 들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한 점의 의혹도 없는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혁신학교는 자사고와의 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존재의 설득력도 얻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