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자 정원식 전 국무총리가 별세했다. 향년 91세.
정 전 총리는 12일 유족 등에 따르면 정 전 총리는 신부전증으로 투병 중 이날 오전 10시께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정 전 총리는 한국교총의 전신인 대한교련을 설립한 오천석 2대 회장의 제자로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1956년부터 교련과 교육부가 공동으로 발족한 중앙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정 전 총리는 오 전 회장이 문교부 장관으로 재직할 때 장관 비서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후 문교부 장학관을 거쳐 1961년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과 조교수로 교단에 섰다.
서울대 교육학과 부교수, 정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장을 1979~1983년 역임했다. 이후 평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교육학회장, 교육개혁심의위윈회 교육발전분과위원장,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전신인 한국도서출판잡지주간신문윤리위원회 위원장, 방송위원회 산하 방송심의위원장, 사랑의 전화 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1988년에 12월에는 문교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그는 취임사에서 “과거의 교육이 외부로부터 오염되고 침해된 경우가 많았다”며 “앞으로 이같은 오염으로부터 교육의 본질을 수호하고 정치적 오염이 있으면 과감히 정치적 중립을 선언하겠다”고 밝혔다.
이렇듯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한 그는 1989년 창립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해 ‘결국 정치세력화했고 정권퇴진투쟁에 나서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불법 단체로 규정했다. 또 “교원의 정치활동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 헌법정신에 비춰 인정할 수 없다”면서 교육공무원법의 정치적 중립 조항을 근거로 전교조 소속 교사들에 대한 구속과 해임 등의 징계를 단행했다.
그는 또 학원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 학원 소요 사태와 교권 침해 행위에 강경대응하겠다는 기조를 밝혔다. 이에 따라 학생들의 정거 농성이 장기화되면 계고-임시휴업-전원유급-폐교의 단계적 조치를 한다는 ‘학원 안정 4단계 방안’ 발표와 학내 시위용품 제거와 대학 간행물의 순수 교육 지면화 등을 요구하는 ‘5·6 조치’를 발표해 운동권 학생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부정·비리 등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촌지 등의 교단 비리를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정 전 총리는 1990년 12월 문교부 장관직을 사퇴하고, 덕성여대, 한국외대 겸임교수로 출강하다 이듬해 5월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됐다. 6월 취임을 앞두고 한국외대에서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나오다가 학생들이 투척한 계란, 밀가루, 페인트 등을 맞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학생운동권에 대한 여론이 오히려 급속히 악화하는 계기가 됐다.
그해 7월 국무총리로 임명돼 재직 중 남북 고위급 회담 남측 대표로 나서 남북기본합의서를 조인하고,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체결하기도 했다.
1992년 국무총리 퇴임 후에는 민자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장, 제 14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이후 세종연구소 이사장, ‘청소년 대화의 광장’ 재단 이사장, 안중근 의사 숭모회 이사장을 역임하고 1995년 서울대 사범대학 명예교수가 됐다.
정 총리는 이후 다수의 이사장직을 맡아 활동하면서 원로 교육학자로 활동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