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행정부가 입법부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행정국가’ 형태를 하고 있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입법부의 독립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고, 그 결과 교육정책 결정에서 국회의 역할은 점차 커지게 되었다. 그러자 국회가 구성될 때마다 교육계의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이중에는 서로의 의견이 일치하여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용이한 요구도 있지만, 상충하는 것들이 더 많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국회의 존재 의의는 이러한 갈등을 풀어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식물국회’를 벗어나 보다 ‘생산적인 국회’가 되어 달라는 요구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그리고 국민들과의 충분한 소통과정을 거치면서 교육의 막힌 곳을 뚫어주고, 교육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데 필요한 기반과 지원책을 마련해달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교육계 요구 봇물 ... 국회 입법 영향력 갈수록 커져
집권여당과 행정부의 당정협의에서도 정부 측이 주도하는 의제에 대해 정당이 대정부 견제 역할을 함으로써 양보안을 이끌어 내는 등 정당의 역할이 더욱 강력해졌다. 그 결과 교육분야에서 의원입법 제안 건수만이 아니라 비중 또한 크게 늘고 있다. 제15대에서는 교육입법안 88건 중 의원 제안이 50건(56.8%)이었는데 제18대(714건 중에서 의원 제안이 644건, 90.2%)부터는 그 비중이 90%를 넘어서고 있다.
의원발의 교육법률안이 증가한 요인 중 국회 외 요인은 민주주의 체제로의 정치체제 변화, 교육계의 위기와 갈등 증가 등 교육환경의 변화, 15대 국회에서부터 시작된 시민단체의 의원 평가 및 감시활동 강화, 언론 및 이익단체의 영향력 증가 등을 들 수 있다.
국회 내 요인으로는 국회의 입법기능을 충실히 하려는 방향으로의 국회의원 인식 변화, ‘일하는 국회’와 ‘정책중심 국회’를 표방하는 입법문화의 변화, 정당관계 변화, 입법제도 및 지원조직의 개선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국회의 정부법안에 대한 비우호적 태도도 정부발의 법안이 줄어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법안이 국회 교육위와 법사위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교육부가 정부발의대신 의원발의를 추진하는 ‘우회로’를 택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학력차별및 임금차별금지법 제정 서둘러야
이렇게 강해진 국회가 입법활동과 행정부 감시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우리의 교육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국회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는 데 필요한 두 가지 바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하나의 바람은 국회가 교육의 얽히고 맺힌 곳을 풀어주는 조정자가 되는 것이다. 집단 간의 갈등이 더욱 첨예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갈등 조정자로서의 국회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커지게 될 것이다. 정부와 국회 사이에 의견의 불일치가 발생하고 사안이 복잡하여 쉽게 조정되기 어렵고 시간 낭비의 소지가 있는 경우, 국민 여론이 양분되어 국민대표의 집합체인 의회가 일정한 판단을 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에는 의원 입법이 대안이다. 21대 국회에서 여당이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힘에 기댄 입법이 아니라 야당 및 사회 각 집단과의 갈등을 조정하며 평형상태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우리 교육계가 바라는 것은 국회가 그러한 역량을 발휘하는 기관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법이 아닌 시행령(때로는 입법 취지와 상치하는)에 의해 행정을 하는 ‘시행령 행정’ 추세가 지속되는 것은 여당의 책임이다. ‘시행령 행정’은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법 개정을 시도했으나 야당의 반대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입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갈등 조정의 기능을 수행하여 관련법을 개정할 때 교육계가 에너지를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여러 교직단체와 시민단체가 21대 국회에 요구하는 입법 이슈 중에는 교육복지기본법 제정, 학력차별과 임금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 등 어느 정도 의견이 일치하는 것들이 있다. 만 18세 선거권 관련 보완 입법 주장을 비롯하여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이슈에 대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를 기대한다.
이번에 여당이 내세운 총선 교육공약 중에는 사립학교법 개정 등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 예민한 사안이 포함되어 있다. 민감한 사안일 경우 거대여당의 힘을 바탕으로 강행하기보다는 전 국민 대상 토론회, 혹은 공론화과정을 포함한 국민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추진하기 바란다. 만일 공감대 형성에 실패한다면 포기할 줄도 아는 것이 정치력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교원들에게 높은 국회 문턱 ... 50만 대표성 반영을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전제 조건의 하나는 교원들의 국회진출 길을 적극적으로 개방하는 것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직군별, 배경별 국회의원 구성비를 보면 법조인 비율이 절대적으로 많다.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은 43명(19대), 49명(20대), 46명(21대) 등으로 거의 15%대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의사나 교원 등의 다른 전통적인 전문직 종사자의 비율은 과하게 낮다. 의사 출신 국회의원은 8명(19대), 3명(20대), 2명(21대)이다. 교사출신은 19대 2명(정진후, 도종환), 20대 2명(도종환, 박경미), 21대 2명(강민정, 도종환) 등이다. 도종환, 박경미, 강민정 의원 모두 초·중등교직에 있다가 출마한 것은 아니다. 참고로 해당 전문직종 종사자 수를 살펴보면 2020년 기준 법조인은 약 3만 명, 의사 약 13만 명, 초·중등교원 약 50만 명이다.
교원의 경우 그 숫자가 극히 적고, 법조인 및 의료인과 달리 해당 전문직종에 종사하면서 국회의원이 된 경우는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현행법 때문이다.
공직선거법[53조 1항 1호(공무원), 7호(사립학교 교원)]에 따르면 초·중등학교 교원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원 선거에 입후보하려면 선거일 90일 전까지 그 직을 그만두어야 한다. 현직을 포기하고 입후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국회의원만이 아니라 지방의회의원 선거에도 나서는 것이 거의 어렵다. 이는 비전문가의 교육지배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 절반 초·중등 교원 출신으로 채우자
교육행정은 교육경력을 가진 교육전문가가 맡아야 한다는 믿음 아래 지방의 교육위원과 교육감 출마자격에 교육경력을 포함시켰었다. 이제는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교육위원을 별도로 선출하지 않기에 지방 교육위원에 대한 그 제한은 무의미해졌다. 교육감만 교육(행정)경력 3년 이상인 자가 출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제24조). 하지만 국가 차원의 교육입법권을 가진 국회 교육위원이나 교육부장관 모두 교육(행정)경력에 제한이 없다.
초·중등교원 출신만이 초·중등교육의 방향에 대한 전문적 식견을 가진 것이 아니며, 오히려 폭넓은 시각을 가진 사람이 국민의 대표로서 교육관련 입법 과정을 주도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따라서 굳이 초·중등교원 출신의 국회의원을 확보할 필요가 없고, 교육위원에 교원 출신이 없어도 관계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20대 국회를 되돌아보면 아쉬움이 크다.
경제나 국방 못지않게 교육도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이다. 전문성 부족은 교육의 정치화, 교육정책 방향 혼란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문제를 완화시키는 하나의 방안은 국회 교육위원의 절반 정도는 교육경력을 가진 교사 출신으로 채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동일한 교원으로 분류되는 교수의 경우처럼 초·중등교원도 공직 당선 후에 사표를 내도록 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리되면 교직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입법활동을 하는 교원 출신 지방의원과 국회의원 수가 지금보다는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더 바람직한 것은 각 정당에서 지역구나 비례대표를 추천할 때 법조인 출신을 줄이고 대신 교원 출신자를 일정 비율 영입하도록 내부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다. 덴마크와 독일 등 몇몇 선진국에서는 교사들이 지방의회나 국회에 상당수 진출하여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데, 독일의 경우에는 심지어 교사 출신 의원이 81명(13%)이나 된다(김형태, 2020.01.21.).
법조인 출신의 국회의원 비율이 높은 국가보다는 교원 출신의 국회의원 비율이 더 높은 국회를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물론 교원의 자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교원의 수준이 세계적임을 감안할 때 법조인보다는 교원의 비율을 높인다면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더욱 선진적인 국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21대 국회가 입법을 통해, 그리고 각 정당의 내규를 통해 이 부분을 해결한다면 교육관련 제반 이슈가 더욱 원활하게 해결되는 대한민국이 되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