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레이리의 생애와 교육사상
1) 프레이리 생애와 시대적 배경
프레이리(1921~1997)는 브라질에서 태어나 민중들의 문해교육, 억압받는 민중들의 인간화를 위한 해방교육을 실천한 교육철학자요 교육실천가이다.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억눌린 자를 위한 교육>은 80년대에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한국의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구체적 실천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80년대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때, 노동자·교사·대학생에 이르기까지 프레이리를 즐겨 읽었다. 민주화운동을 거친 오늘날 ‘억압’, ‘해방’ 같은 말이 유효하지 않다면, 프레이리를 읽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그러나 눈앞의 독재정권은 끝났지만, 전 세계를 뒤덮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질서가 우리의 비판의식을 마비시킨다면, 우리는 더 열심히 프레이리를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프레이리가 태어나 자란 브라질 동북부 헤시페 지역은 가난한 지역이었다. 그가 10살 되던 해, 세계 대공황으로 브라질 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프레이리 역시 빈곤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프레이리는 말년에 쓴 책 <망고나무 그늘 아래서>에서 “나의 조국은 고통과 기아와 비탄의 공간이며, 나의 조국은 사회정의를 갈망하는 수백만 민중들의 희망 공간이다”라고 회고한다.
프레이리는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했지만, 오히려 당시 유행하던 프랑스 급진적인 사상가들의 서적에 관심을 가졌고, 빈민 지역에서 야학 활동을 했다. 이것은 당시 남미에서 확산한 해방신학 가톨릭 사회운동의 영향으로 대학 내 가톨릭 사회운동단체의 활동이 활발했음을 말해준다. 그는 1947년 사회봉사기구인 산업복지국(SESI, Social Service of Industry)에서 농촌 빈민과 도시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운영을 맡게 된다.
또한 그는 헤시페 지역에서 일어난 MCP(대중문화운동)에 참여하고, 포르투칼어 교사로서 민중들의 언어와 중산층 이상의 언어 사이의 차이에 관한 연구를 하기도 했다. 프레이리의 문해교육활동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62년 ‘안기코스(angicos)시의 40일의 기적’에서부터다. 안기코스 프로젝트를 통해 프레이리가 1950년대 후반부터 시도했던 교육문해 프로그램은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1964년에는 2천만 명의 비문해자를 위해 2만 개의 토론 그룹이 형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1964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군부는 프레이리를 체제 전복 세력, 공산주의자로 몰아 감옥에 가두고, 프레이리의 문해교육을 방법론만 적용해 변질시켰다.
프레이리는 감옥 안에서 교육과 정치의 관계가 더욱 분명함을 느꼈고, 사회변화는 고립된 개인들이 아니라 대중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Gadotti, 2012). 따라서 프레이리는 ‘교육이 정치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프레이리에게 교육이란 해방을 위한 잠재력을 갖는 해방의 교육학이다. 그가 말하는 교육이란 국가 관리의 ‘제도권 안 교육’에 국한하지 않으며, 다양한 현장의 교육을 포함한다. 제도권 내 학교든 학교밖 어디든 교육이 벌어지는 장에서 교육당사자들이 세계를 인식하고 앎을 생성하고 실천하면서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얘기하는 점에서 프레이리 교육사상은 희망의 교육학이다.
그의 교육사상 형성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망명 생활이다. 1964년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자신이 해오던 빈민 문해교육 일을 계속하지 못하게 되자, 프레이리는 칠레로 망명을 떠난다. 당시 칠레는 자유화 운동이 일어나고 있어 비교적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브라질에서 해오던 문해교육적 시도를 계속할 수 있었다. 칠레에서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신생독립국 기니비사우의 문해교육에도 관여했다. 망명 생활을 했지만 프레이리는 브라질에서의 경험을 계속 시도할 수 있었다. 그의 대표 저서 <페다고지>가 집필된 것도 망명 시기이다.
1979년 브라질 군사정권이 끝나자 프레이리는 고국으로 돌아온다. 프레이리는 1980년대부터 대학교수로 복직하고, 민주 진보세력들과 함께 노동당에 관여하며, 1989년 상파울루에 노동당의 선거 승리로 교육담당 비서(우리나라 교육감에 해당)에 당선돼 교육행정가로서도 일한다. 교육행정가로서 그의 관심은 빈민들을 위한 문해교육과 학교 기능을 새롭게 하는 것이었다. 프레이리는 군부정권이 끝나고, 베를린 장벽과 동구 사회주의 몰락 이후에는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지면서, 여전히 혁명적 교육학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고 느꼈다. 1990년 대학에서 정년퇴임 후에는 강연과 글쓰기를 하면서 지냈고, 1997년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 프레이리 교육사상의 배경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은 여러 사상적 배경을 갖고 있다. 인간화와 인간해방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대화를 중시한 점에서 실존철학, 억압적 구조를 비판하고 혁명을 추구한 점에서 마르크스사상, 남미에서 유행했던 해방신학 그리고 후기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도 보인다.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프레이리는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아 교회가 민중과 함께 사회적 모순에 맞서 싸워야 할 것을 강조한다. 프레이리(2003: 240-241)는 교회가 항상 ‘성장하는’ 상태로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북미에서도 남미의 해방신학과 같은 운동이 흑인 사이에서 일어났다. 프레이리는 두 신학 사이의 공통점을 침묵이 강요된 사람들이 침묵으로 몰아넣는 사회를 혁명적으로 변혁시킴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배당하고 침묵이 강요된 사람들은 그들을 억압하는 억압체제를 떨구어낼 때만 침묵 문화를 깨고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프레이리는 마르크스가 옳았다고 평가하지만,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의 노예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의 사상의 주요 개념이 변증법과 역사발전관에 기초하고 의식화를 강조한 것은 마르크스사상의 영향이다. 하지만 하부구조(사회경제적 구조인 물적 기반을 말함)가 상부구조(의식과 문화)를 결정한다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가 보이는 경제결정론과 달리, 프레이리 교육사상은 교육과 문화의 상대적 자율성을 강조하고, 문화적 변화에 초점을 둔다.
프레이리는 많은 책을 남겼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페다고지>다. 그 외에도 <진보의 교육학>, <교육과 정치의식>, <페다고지>가 출판된 지 20여 년 뒤, <페다고지>에서 다루었던 주제를 회고하며 쓴 <희망의 교육학>, 교사들에게 편지글 형식으로 쓴 <프레이리의 교사론>, 말년에 쓴 <망고나무 그늘 아래서> 등이 있다.
3) 프레이리의 교육사상과 실천
프레이리는 삶 속에서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추구해 왔다. 그의 교육사상 자체가 교육적 실천 속에서 형성된 것이고, 그의 사상은 다시 브라질뿐 아니라 제 3세계, 나아가 세계적으로 학습자를 침묵하게 하고, 수동적 길들이기에 그치는 교육의 폐단을 비판하고 해방의 교육실천을 촉구한다.
프레이리의 교육사상과 실천은 억눌린 민중들의 해방과 인간화를 위한 ‘해방의 교육학’이요, 학습자와 교사 상호 간의 대화를 통해 비판적의식이 발달해가는 ‘의식화 교육’이다. 그가 시도했던 문해교육 프로그램은 단순히 글자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글읽기를 통해 학습자 자신이 처한 세계를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게 하는 세계읽기요, 비판적의식을 일깨워가는 의식화 교육이었다. 프레이리는 가혹한 현실이 희망을 말하기 힘들 때조차도 희망을 품고 현실을 변혁해가기를 희망한 ‘희망의 교육학자’라고 할 수 있다. 프레이리는 가난한 브라질 민중들이 글읽기를 배움으로써, 단순히 글자만을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의 억압적 현실까지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비판적 의식을 갖춰나가기를 희망했다.
그가 실천한 문해교육의 구체적인 모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글자를 모르는 가난한 농민들에게 문해교육을 하기 위해 준비단계로 먼저 학습자들의 문화적 맥락을 파악했다. 주민들과의 비공식적인 만남과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소망·좌절·불신·희망 등에 관한 내용과 함께 학습자들에게 의미 있고, 경험이 담긴 낱말과 표현을 조사했다. 이것을 프레이리는 ‘생성어’(generative word)라고 하고, 그들의 실존적 상황을 나타내는 그림이나 슬라이드·포스터 등의 ‘편찬물’을 활용했다. 즉, 프레이리는 문해교육과정에서 학습자의 현실과 무관한 교재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학습자의 정서를 반영하는 현실에서 출발하고자 했다.
준비단계가 끝난 후 문해교육은 ‘동기부여 → 생성어 학습 → 생성주제에 관한 토론’으로 이루어졌다. 예컨대 조사를 거쳐 만든 그림자료와 생성어(예를 들어 ‘빈민지구’라는 뜻의 Favela)를 보면서 그림에 나타난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생성어를 중심으로 글자를 익힌다. 그림을 보면서 학습에 참여한 이들은 자신들이 노동자일 뿐만 아니라 문화 생산자임을 이야기하면서 글읽기와 세계읽기에 대한 동기를 갖게 된다. 자신들의 상황에 관련된 그림으로 대화를 해나가면서 처음에는 가난의 원인에 대해 운명·팔자·자신의 게으름을 탓하다가, 차츰 가난이 어떤 구조적 모순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비판적 의식으로까지 발달해가는 식이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