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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편지> 비포선셋

지나간 것은 모두 그리움이 되고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 젊은 남녀는 사랑에 빠진다. 14시간 동안 비엔나 거리를 오간 뒤 헤어진 이들은 6개월 후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그들은 과연 약속대로 만났을까. 아니면 그렇게 짧은 추억만 간직한 채 늙어갔을까.

95년에 만들어진 영화 `비포선라이즈’는 이렇게 물음표를 던진 채 끝을 맺었다. 사랑과 결혼, 인생과 죽음에 대해 진지한 교감을 나누던 이들의 뒷얘기가 궁금한 사람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정확히 9년 후 30대가 된 그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파리의 어느 서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제시(에단 호크)는 책 홍보를 위해 기자들을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만나려 그곳에 나타난 셀린느(줄리 델피)와 재회한다. 제시가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남은 1시간 동안 둘은 파리 시내를 옮겨다니며 산더미처럼 쌓아둔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한다.

이제 그들 곁에는 각각 다른 사람이 있다. 외모도 말투도 성격도 많이 달라졌다. 결정적으로 연락처도 교환하지 않은 채 “6개월 뒤에 어디서 만나자”는 낭만적 약속 따위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별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뭔가 아쉬운 두 사람은 자꾸 서로를 놓아주지 못한다. 길고 긴 사랑 이야기가 속편에서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보는 사람들도 조마조마해지는 순간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둘은 결국 잘됐을까.
“우리가 약속대로 만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제시의 아쉬운 탄식에 셀린느는 이렇게 답한다.
“그랬다면 우리는 결혼했거나 아니면 몇 개월 사귀다가 헤어졌겠지.”

푸슈킨의 시구처럼 현재는 언제나 슬프다. 슬픈 현재 한가운데서 만난 과거는 몇배나 아름답고 행복해 보여서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한나절의 짧은 사랑처럼, 모든 것은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움이 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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