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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아이들의 소중한 기록, 학교생활기록부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이에요. 대학을 다니다 교사가 되고 싶어 수능을 다시 봤습니다. 얼마 전에 교대 면접준비를 하면서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보게 되었어요.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보고 싶어요.”

 

2월의 어느 저녁,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 반이었던 졸업생 아이로부터 오랜만에 받은 문자메시지였다. ‘생활기록부에 뭐라고 쓰여 있길래….’ 궁금증이 일었다.

 

며칠 뒤 아이가 들고 온 생활기록부에는 화려한 문장이나 특별한 이야기가 적혀 있진 않았지만, 그 당시 아이와 상담하며 나누었던 이야기, 학부모님과 상담했던 일, 학급에서 있었던 소소한 일들이 떠올랐다. 평소 아이와 했던 대화내용과 학교생활에 임하는 자세, 공부하는 모습 등을 생활기록부에 담고자 했던 노력 덕분이었을까.

 

“너 치과의사 되고 싶다고 했었는데 섬세하고 배려심이 강해서 교사가 잘 어울릴 것 같았어.”

“3학년 때 허리 아파서 앉아있는 것이 힘들 정도였는데 ○○가 많이 도와줬던 것도 기억나시죠?”

아이와 생활기록부를 보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나에게는 3학년 5반의 추억이고, 그 아이에게는 한 번뿐인 고3 시절을.

 

학생생활의 기록, 학·생·부

한 사람의 고등학교 재학 기간의 삶의 기록인 생활기록부에는 명칭 그대로 그 학생의 학교생활이 쓰여 있다. 초등학교·중학교 교사들에게도 그러하겠지만 특히 고등학교 교사들에게 생활기록부 작성은 수업을 잘하는 것만큼 신경 써서 해야 하는 일이다.

 

교수학습역량과 더불어 평가역량도 교사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이고,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는 대입 전형자료로 활용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다. 1년 혹은 한 학기 동안 관찰한 뒤 주관적인 언어로 학생들을 평가하고 기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사들은 여름·겨울방학을 생활기록부 작성을 하며 보내곤 한다. 스스로 부족한 어휘력을 자책하며, 더 시간을 내어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서툰 작문 실력이 학생의 잠재력과 역량을 가리지는 않을지 우려하며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하곤 한다.

 

나는 문장 표현보다 수식(數式) 표현이 편한 과학 교사인데, 지난 겨울방학도 정말 힘든 시기였다. 2학기에 가르친 200여 명의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입력하느라 엄청난 창작의 고통(?)을 겪었다.

 

대입 전형자료, 학·생·부

학교생활기록부는 명칭만 보면 학교생활을 기록하는 장부 정도로 이해할 수 있지만, 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초·중등교육법」제25조 1항, 학교의 장은 학생의 학업성취도와 인성 등을 종합적으로 관찰·평가하여 학생지도 및 상급학교의 학생 선발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작성·관리하여야 한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는 대입 전형자료 중 하나이다. 대입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이 대폭 확대되면서 학생들은 정량화된 성적뿐 아니라 정성평가 되는 생활기록부 기록에도 신경 써서 학교생활에 임하고 있다. 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활동에 유의미하게 참여하려 하고, 학교 수업에서도 앉아서 교사의 설명을 듣기만 하는 입장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토의하고 깊이 있게 이해하려고 하는 등 주도적인 학습자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일반고등학교에서 대입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에 문제점도 있었다. 사설업체의 관리 혹은 도움을 받아 더 나은 기록을 만들고자 하는 학생들에 관한 이야기는 언론에서 자주 다루는 뉴스거리 중 하나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발생했다. 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되는지 안 되는지에 따라 학생들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작년 8월 우리 학교에서 교내 과학대회를 개최하였을 때 한 고3 아이가 찾아왔다.

 

“선생님 대회 결과가 언제쯤 나오나요?”

“9월 이후에 나올 거야. 왜?”

“아, 그럼 상을 받아도 수시 생활기록부에는 기록이 안 되겠네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학교생활기록부가 대입 전형자료로서의 가치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 대입에 활용하지 못하더라도 네가 노력하고 성과를 거둔 것은 너의 학교생활에 대한 기록이 되겠지.”

“아…. 네, 그렇긴 하죠. 생각해 볼게요. 샘.”

 

그 아이는 결국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대입제도공정성강화방안의 도구, 학·생·부

2018년 대입제도공정성강화방안이 발표되어 2019학년도 입학생부터는 대입 전형자료에 학기당 한 개의 수상경력만 포함된다(그 이전부터도 생활기록부 기재에는 많은 제재가 있었다). 여러 대회에서 수상하면 모두 생활기록부에 기록되고 대입자료에 제공이 되지 않을 뿐이지만 한 번 수상한 뒤에는 이후에 실시하는 대회에 참가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이 나타났다.

 

2021학년도 입학생부터는 교내수상 경력이 대입 전형자료에 포함되지 않는데, 그 결과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다양한 과학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한 교내 과학 관련 대회 참가율은 저조함을 면치 못했다. 2021학년도 입학생부터는 독서활동상황도 대입 전형자료에 포함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독서 관련 경험은 어떻게 될까?

 

역시 대입제도공정성강화방안의 일환으로 2021년 대입부터 고교정보블라인드 평가가 시행되어 생활기록부에 학교명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을 모두 정정해야 했다. 코로나와 상관없이 예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일이었으나 갑작스럽게 원격수업을 하며 방역업무까지 더해져 한창 바쁜 학교에 업무가 추가되었으니 달가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생활기록부를 정정해야 하는 담임교사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고등학교는 대입에 너무 종속된 것 같아. 고등학교에서 생활기록부 기록하는 것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대학에서 전형자료를 생성할 때 대입에 맞게 하면 안 될까?” 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하지만, 학생 성장의 기록, 학·생·부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는 대학에서 학생 선발에 활용하는 자료 중 하나이지만 전형자료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삶의 기록이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현장에서는 대입 전형자료로서의 가치만 남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대입에 의미 있는 활동만 참여하려 하고 기록할 수 없는 활동에는 소극적인 학생들을 만들어냈다. 교육부조차 대입에 공정성을 기한다는 이유로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온갖 규제를 하고 있다.

 

과학 교사로서 학생들을 지도하여 과학전람회 등의 교외대회에서 성과를 거두고 교과 공부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과학적 탐구의 경험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교외대회에 출전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없다는 사실이 서운하기만 하다.

 

언론에 보도되었던 한 교사의 메모가 떠오른다. ‘학생은 성장하려고 하고 교사는 그것을 도와주려고 하는데 정부가 막고 있다. 도대체 교육부가 원하는 성장은 무엇인가?’

 

생활기록부는 교사의 평가이자 학생 성장의 기록이다. 교사들은 단지 대입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땅히 학생의 성장을 끌어내고,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기록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느낀다. 교사로서의 보람이 무엇이겠는가? 학생들을 성장하게 하고, 그 성장과정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 학생들의 삶의 일부분을 함께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는 것. 그래서 학생들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몇 년 전 졸업식에 참석한 우리 반 학부모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선생님을 만나고 우리 아이가 1년 동안 참 많이 성장했어요.”

나도 학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싶었다. “저도 ○○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어요.”

학교는 그런 곳이다.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모두가 성장하는 곳.

 

교사의 사명감을 녹여, 학·생·부

2021학년도부터 나이스(NEIS)에서 생활기록부 특기사항을 입력할 때 기재 금지된 용어를 검색하고, 기재 금지된 용어를 포함하여 입력하는 경우 경고메시지가 뜨는 기능이 생겼다. 대학·논문·대회 등 예전부터 기재가 불가능했던 단어들을 포함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책·발표·참여·선정·수필 등까지 2만 5천여 개의 단어들이 기재금지어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해가 갈수록 생활기록부에 기재할 수 없는 단어나 표현들이 늘어난다. 몇 년 전, 특기사항에 글자 수 제한이 생긴 뒤로 제한된 글자 수 안에서 학생을 더욱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 문장을 수십 번 읽고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그때처럼 교사들은 제한된 단어만으로도 학생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게 하려고 몇 번이고 썼다, 지웠다 하면서 생활기록부를 작성해 나갈 것이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소중한 기록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학생들을 사명감을 갖고 관찰한다. 학생 성장과정을 지켜보고 기록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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