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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5월, 소중한 삶

푸름으로 물드는 신록의 향기가 오월의 눈부신 옷자락을 끌고 온다. 고개 들면 눈길 닿은 산허리마다 연두색이 덧칠로 번진다. 하루를 마치는 시각, 누구에게는 짧았을 또 다른 이에게는 고단했던 봄날이 노을의 날개에 저물어 간다.

 

하루의 흔적을 돌아보며 들길을 걷는다. 무논의 개구리 합창 소리가 어둠의 실루엣에 층을 이룬다. 잰걸음은 아스콘으로 포장된 좁은 마을길로 접어든다. 매끈한 포장길은 팍팍함을 발바닥에 전한다. 오늘 하루는 잘 살았을까? 여러 생각을 뜨개질하며 움츠러드는 마음을 애써 위로하다 발밑 포장길의 가장자리에 삶의 몸부림으로 이지러진 풀 한 포기를 보며 위안과 격려를 보낸다.

 

하루에 한 번씩 걷는 산책길, 달포 전 포장되어 가장자리를 알리는 하얀 차선이 그어졌는데, 그 한 곳 바닥이 도드라지고 갈라져 있다. 그리고 그 틈 사이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연둣빛 잎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아, 어떻게 여리디여린 이름도 모르는 풀 한 포기가 아스콘 포장을 가르고 있단 말인가? 그 식물의 잎은 여러 겹 오그라든 모습으로 햇빛 바라기를 위한 처절한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정말 생명과 삶의 경이로움을 엄숙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매일 그 지점을 지날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지구는 초록별이다. 그래서인지 우주에서 본 지구는 너무 아름답다고 한다. 그 속에 숨 쉬며 발붙이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삶은 그 자체로 고귀하며 존재 이유가 있다. 들이든 길가든 풀은 각자 이름이 있으며 나름 삶을 지켜나가고 있다. 이 풀들을 사람과 비교하면 보통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권리로 이름을 모른다고 잡초라 칭하며 때로는 농사에 유 목적적인 대상이 아니라고 뽑아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지구상 어떤 동식물이든 생명체로서 삶은 소중하다. 어떤 이유로든지 그 존재가치를 함부로 훼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어릴 때 생일을 많이 기다렸다. 그날만은 하얀 쌀밥이 오르고 생선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빈한한 살림이지만 어머니께서 생일상을 차려주시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자식이 스스로 귀하고 소중한 특별한 존재임을 깨달아 생명의 소중함 품고 삶을 존엄하게 살아가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존엄하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각자의 삶은 자의든 타의든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삶의 레일을 따라 끊임없는 생의 바퀴를 돌린다. 우리는 이런 자신의 소중한 삶을 스스로는 어떻게 대하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삶에 있어 기본이 의식주이다. 특히 먹는 일은 중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단절감과 더불어 혼밥, 혼술 등 나 홀로 문화가 빈번한 게 지금이다. 이런 시대적 문화적 흐름에서 자신을 얼마나 존귀하게 대하고 있을까? 우리는 대부분 혼자 있으면 먹고 입는 일에 소홀한 경우가 많다. 귀찮다고 바쁘다고 밥 한 그릇 물에 말아 먹거나 라면에 말아서 한 끼를 때우기도 한다. 그리고 과일을 먹을 때도 껍질을 깎아 아무렇게 썰어서 과도로 집어 먹는 경우도 있다. 이런 모습이 과연 자신을 귀하게 대하는 모습일까?

 

몇 년 전 뉴욕에서 본 점심시간의 모습이 떠오른다. 승용차 운전자는 신호를 기다리며 정체된 차들의 꼬리를 물고 햄버거를 먹는 모습이 흔했다. 이 또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초를 다투는 형국에서 나타난 모습이리라. 어릴 때 종종 어른들은 바쁘다고 한 끼 거르면 평생 못 찾아 먹는다며 끼니의 중요성을 말했다. 맞는 말이다. 일을 하는 이유가 먹고 살려고 하는 목적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품위를 지키며 먹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숨 쉬는 지금 나란 존재는 참으로 소중하다. 그러나 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취업경쟁, 높은 줄 모르는 수도권 집값의 고공행진, 시사만평에서 전해오는 각종 사건•사고가 현란한 봄을 심란하게 한다. 이런 현실에서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고 나 자신은 초라하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조용히 일어나 이불을 개고, 먼지를 쓸어내고, 쌀을 씻고, 나를 위해 더운밥을 차리는 자신의 존중이 필요하다. 삶의 존엄이란 나 자신을 위해, 한 끼의 식사를 위해, 고등어 한 마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며 내일을 위한 자신의 휴식을 준비하는 챙김이다.

 

이제 봄은 사월을 돌아 여름을 향해 나아간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추억은 세월의 옷을 입고 멀리서 반짝인다. 삶이란 하루하루가 엮어진 나만의 시간 방석이다. 그 속 주인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신록의 어울림이 묻어나는 오월, 실버들 늘어진 연둣빛 그리움 풀어헤치고 투명한 물방울 그림자처럼 숨어 있는 자신의 삶에 수채화 같은 감동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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