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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학폭, 약자만 당하는 것 아냐

"자~ 여러분. 지금 기훈(가명)이를 어디에 밀어 넣고 있는 거죠?"
"청소도구함요."
"청소도구함에 왜 사람을 밀어 넣고 있는 거죠? 헤드락 걸면서 웃고 있는 이 학생이 누구죠?"

<2021년 10월 ○○중학교 상담실>
 

CCTV 영상을 프레임 바이 프레임으로 멈춰가며 각자의 행동을 직접 말로 설명해 달라고 하자, 가해 학생 모두 반색한다. 헤드락을 걸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어깨동무’를 한 것이라고 항변하기까지 한다. 

 

괴롭힘과 장난, 그리고 방관

 

십 수년간 경찰 일을 해 오면서 잔인한 범죄 현장을 적지 않게 봐 왔음에도 이날 CCTV 영상은 무척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네 명이 한 명을 괴롭히고 있는 게 분명한데도 많은 아이가 무심하게 지나쳐 가는 모습이 너무 잔인해 보여 슬프기까지 했다. 말린다거나 선생님을 부르러 가는 학생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울산지역 2021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 경험 장소는 교실(24.5%) 복도(15.7%) 운동장(8.5%) 순이었다. 피해 시간은 쉬는 시간(29.0%), 하교 이후(21.6%), 점심시간(10.7%) 이 많았다. 피해 신고 대상은 가족(38.8%), 학교 선생님(27.3%) 순이었는데, 알리지 않은 경우도 11.3%나 됐다. 
 

장시간 대면 면담 결과, 이 사건을 여성청소년 수사팀에 의뢰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기훈이 가족과 통화했다. 가족들이 동의해 바로 다음 날 기훈이는 부모님과 피해자 진술조서를 작성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시작된 학교폭력 해결을 위한 첫발을 3학년이 되어서야 뗀 것이다.
 

기훈이가 중1 때부터 복싱을 배웠다길래 펀치를 날리며 어쭙잖게 아는 척해봤다. 기훈이는 "아뇨~ 그건 원투예요. 잽은 이거구요"라며 허공에 제대로 한 방 날려 줬다. "마음만 먹으면 네 명 모두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동안 참은 것 아니니?"라고 물으니 기훈이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 없이 원래 갈굼 당하는 애’로 낙인찍혀 괴롭힘당하던 기훈이는 사실 ‘복싱을 잘하는데도 과시하지 않는 멋진 아이’였던 것이다.

 

세심한 관찰과 적극적 개입 필요

 

기훈이를 괴롭힌 아이들은 ‘장난’이라는 이름 아래 악랄한 학교폭력을 3년간이나 지속했다. 이유는 없고 그저 ‘장난’일 뿐이었는데 너무한 것 아니냐고, 아직 맑은 눈망울을 가진 아이 네 명이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학교폭력의 표적은 약한 학생만이 아니다. 괴롭힌다고 강자가 아니고, 당한다고 약자도 아니다. 만약 3년을 견뎌온 기훈이가 참다못해 주먹을 날렸다면 가·피해자는 역전됐을 것이고, 그 마음은 영영 치유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심한 관찰과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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