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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마을에서 책읽기] 기억 전달자

민족의 최대 명절 설을 앞두고 있습니다. 저는 오후에 조기, 돔, 민어와 문어를 사러 어시장에 갈 예정입니다. 고향 집에서 설을 쇠는데 참석자를 줄여서 간단하게 차례를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명절의 일상적 풍경인 왁자한 소리와 음식 냄새 속에 술 한잔을 하는 것이 어려울 듯합니다. 기억 속에만 머물러야만 하는 때입니다.

 

전을 부치는 향기로운 냄새와 명절에 입는 새 옷의 촉감, 세뱃돈을 계산하는 즐거움, 고향으로 가는 비좁은 버스 안에서 속으로 삼켰던 멀미, 언덕 위 소나무를 스치는 시원한 바람, 산길을 따라 내려오던 길 옆 조릿대 숲에서 와르르 쏟아지던 참새 소리... 이런 기억들이 몸에 각인되어 명절이면 우리는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귀향하는 것이 아닐까요?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를 코로나 팬데믹으로 일상의 소소한 기억들이 멀어져가는 시점에서 읽었습니다. 소년 조이너는 열두 살 기념식에서 ‘기억 보유자’라는 마을에서 가장 명예로운 직위를 부여받습니다. 이 마을은 사랑이나 우정, 욕망 등의 인간적인 감정과 고통이 없는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사는 완벽한 곳입니다. 피부색이나 언어와 같은 차별이 없습니다. 열두 살이면 그동안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마을 원로들이 직업을 정해줍니다. 배우자를 얻을 때도 신청하면 심사해서 적절한 사람을 구해주고, 아이들도 산모가 낳은 아이를 배급해 줍니다. 폭력, 가난, 편견과 불의가 없이 안전하여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단, 세 번 이상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면 ‘임무 해제’ 당하여 마을에서 사라집니다.

 

조이너는 기억전달자(Giver)로부터 기억을 전해 받습니다. ‘늘 같음의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을에서 돌발적인 상황이 생기면 기억전달자의 기억에서 지혜를 얻어 마을 원로들은 문제를 해결합니다. 조이너는 사랑, 고통, 즐거움, 공포, 굶주림 등과 같이 마을 사람들이 전혀 느끼지 못하는 온갖 감정들을 전해 받습니다.

 

이 소설은 우울한 인류의 미래의 모습을 다룹니다. 조이너가 사는 곳은 완벽하게 통제된 곳입니다. 쌍둥이가 태어나면 그중 몸무게가 낮은 아이는 ‘임무 해제’ 당하고, 노인들도 나이가 들어 병들거나 기력이 쇠하면 역시 ‘임무해제’ 됩니다.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가끔 나의 능력과 취미에 맞는 직업을 누군가 골라주고 나에게 잘 맞는 배우자도 정해주면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행복의 조건은 아닐 것입니다.

 

주인공 조이너가 기억보유자의 직위를 받은 것은 ‘사물 저 너머’를 볼 수 있는 능력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억전달자로부터 훈련을 받은 후 친구 피오나의 붉은 머리카락과 초록의 잔디의 색을 보며 감탄하였으며, 적응의 어려움을 겪어 잠시 집에서 맡아 돌보는 어린 아이 가브리엘에게 밤이면 아름다운 기억을 전달하여 잠을 재웁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가브리엘을 ‘임무 해제’ 할 것을 알게 되자 감정이 없는 삶을 견딜 수 없어 아이를 데리고 마을을 떠납니다.

 

섬뜩한 미래사회에 대한 책을 읽으며 기억에 대해 생각합니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삶이 풍요해지고 힘이 날 때가 많습니다. 지금처럼 바이러스로 삶이 봉쇄될 때에도 예전의 추억을 소환하여 미소짓고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참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렁우렁한 호랑이 해의 기운으로 올해는 마스크 없이 친구와 환하게 웃으며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기억 전달자』,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2007,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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