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문직으로서의 교사와 교육과정 재구성 능력
교직관이란 교직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틀로서 교직의 본질과 성격을 어떻게 파악하고 이해하느냐에 대한 관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교직관은 성직관, 노동직관, 전문직관으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직 사회에는 그중에서도 교직을 전문직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교사들끼리만 인정하는 자화자찬일 뿐 교직 사회 외부에서는 여전히 가르치는 일이 일정한 수준의 학식을 갖추기만 하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로 여기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교직 사회 내부에서조차 전문직이라는 말을 교육행정 업무나 교육정책을 계획, 수립, 조정하는 장학사나 장학관, 연구사나 연구관을 지칭하는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교사는 전문직이 아니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한 직업이라는 ‘전문직’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고려하면 교직은 엄연히 전문직이고 또 전문직으로 인정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교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지닌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교직 사회 스스로가 입증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교사들은 좀 더 교사로서 소명 의식을 가지고 임해야 하며 교육 분야에 대한 보다 전문가다운 역량을 갖추고 적극적으로 이를 발휘해야 한다.
교직이 전문직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교육과정 문해력을 갖추는 일이다. 교육과정 문해력이란 교사가 교육과정 문서를 읽고 해석해 학생의 성장·발달에 적합한 수업을 구안·실천하고, 성취 정도를 평가하고 환류하는 교육과정 활용 능력을 의미한다. 교육과정은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서 교사 수준 교육과정으로 내려오면서 점차 구체화되고 현실 상황에 적합한 실천력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이때 전문가로서의 교사는 국가 수준 교육과정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교사 수준 교육과정의 다양성을 조화롭게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사는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국가에서 마련한 성취기준 아래 자신이 맡은 수업에서의 교육과정을 수립해 실현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기존 교과서대로 수업하고 평가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교과서를 활용하고 다시 교과서를 넘어 교육과정을 지도할 수 있는 교사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이러한 교육과정 문해력은 교육과정 재구성 능력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교육과정 재구성 과정이 교육과정 문해력의 실천적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므로 전문직으로서의 교사는 필연적으로 교육과정 재구성을 잘할 수 있는 교사가 될 수밖에 없다.
2. 교육과정 재구성의 방법과 고등학교에서의 적용
교육과정 재구성은 국가 수준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교수학습 및 평가의 차원에서 적절히 조정하는 것으로,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교과 목표를 성취할 수 있도록 교육내용을 시기, 지역, 학교, 학습자 수준 등의 교육여건을 고려해 재조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교육과정 재구성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교과서 활용 성취기준 중심 단원 재구성 방법, 주제 중심 교과 통합 재구성 방법, 이해 중심 단원 설계 재구성 방법을 언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먼저 <교과서 활용 성취 기준 중심 단원 재구성 방법>은 교과서를 중심으로 성취기준을 활용해 단원 내 차시 및 내용을 증감하고 토의 토론 학습이나 문제 해결 학습, 프로젝트 학습 같은 다양한 학습자 참여 및 협력 중심 수업을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방법은 가장 간단한 수준의 교육과정 재구성 방법으로 앞서 언급한 세 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소극적인 교육과정 재구성 방법이다. 교사 수준에서 지역의 특색, 학생의 특성 등을 고려해 교과서의 단원이 성취기준을 도달하는 데 필요한 시수 배정이나 학습할 내용이 적합한지를 검토하고, 이것이 좀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차시나 내용을 증감하는 방식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해 다른 교과의 유사한 성취기준이나 학교 행사 등과 연계하여 단원별 지도 시기를 조정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 방법은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는 블렌디드 수업 방식을 운영해야 하는 현 코로나 상황에서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에 활용할 내용과 방법을 결정하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으며, 학생들의 입시 상황을 배제할 수 없는 고등학교의 교육 현실을 고려할 때 가장 현실적인 재구성 방법처럼 언급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행 교육과정은 역량 중심 교육과정을 표방하고 있어 이러한 재구성 방법만으로는 교육과정에서 구현하고 있는 인재상을 구현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으므로 이러한 측면을 고려할 때 <교과서 활용 성취 기준 중심 단원 재구성 방법>보다는 다음에 설명할 <주제 중심 교과 통합 재구성 방법>이 현행 교육과정에서 좀 더 적절한 재구성 방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제 중심 교과 통합 재구성 방법>은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교과 간 또는 창체를 연계한 교과 통합 설계를 통해 성취기준 중심의 학습이 될 수 있도록 하고 토의 토론 학습이나 문제 해결 학습, 프로젝트 학습 같은 학습자 참여, 협력 중심의 수업을 적용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주제 중심 교과 통합 재구성 방법>은 학생들이 배운 지식을 삶에서 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도록 설계된 방법으로, 단순히 주제 중심으로 병렬적으로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교과를 통합하는 것보다는 실제적인 효과를 고려해 교과 통합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주제 중심 교과 통합>은 학생이 속한 지역사회나 공동체에서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문제나 테마를 주제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게 되면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데, 이를 어떤 방식으로 통합하느냐에 따라 다학문적 설계, 간학문적 설계, 탈학문적 설계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때 학문의 독립성이 유지되는 다학문적 설계 방법보다는 주제나 쟁점에 중점을 두는 간학문적 설계나 탈학문적 설계 방법이 보다 효과적인 방식이라 여겨진다. 다만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이전 학교급에 비해 선택 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어 과목 간 경계가 뚜렷하다는 한계가 있어 간학문적 설계나 탈학문적 설계를 운영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라는 현행 교육과정의 인재상을 구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주제 중심 교과 통합 재구성 방법>이 좀 더 효과적인 교육과정 재구성 방식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는 하다.
마지막으로 <이해 중심 단원 설계 재구성 방법>은 성취기준을 바탕으로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평가 방법에 중점을 두고 백워드 방식으로 단원을 설계하여 참여형 수업 방법을 적용해 학생들이 직접 지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는 방법을 가리킨다. 이는 <주제 중심 교과 통합 재구성 방법>이 교과별로 성취기준을 일부씩 가지고 와서 통합하는 과정에서 연계가 매끄럽지 못하고 분절적으로 이루어져 수업과 평가가 소위 따로 노는 단점을 극복하고,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의 일체화를 꾀할 수 있는 교육과정 재구성 방식이다. <이해 중심 단원 설계 재구성 방식>에서는 수업 전에 가르쳐야 할 핵심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것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를 미리 구상해 수업 활동에 구심점을 주고, 그에 따른 학습 내용에 대한 이해를 드러내는 식으로 공부하게 되는 것으로, 이때 평가는 이해의 청사진으로서 핵심 내용과 수업 활동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게 된다.
백워드 설계는 기존에 교사들이 갖고 있던 내용 및 방법 중심의 수업관에서 목표와 평가 중심의 수업관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수업을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학습 내용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무엇이 되어야 하며, 목표 달성 정도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평가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방식에 따르면 흥미 위주의 활동 수업에 집착하기보다는, 활동 그 자체보다 그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탐구하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수업을 진행해야 하며, 내용을 나열하는 방식의 수업보다는 하나라도 제대로 이해시키는 수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재구성 방식은 핵심 개념과 일반화된 지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핵심 개념을 나선형으로 심화해 가르치도록 구성되어 있는 현행 교육과정과 궤를 같이한다. 브루너가 주창한 완전 학습이나 개념과 일반화의 영속적 이해에 기반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3. 고교학점제와 교육과정 전문가
2025학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고교학점제를 앞두고 전문직으로서의 교사의 역량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다. 다양한 선택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수급하기 위해 교원자격증이 없는 교사가 수업과 평가를 담당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교사는 교사가 전문직임을 스스로 자타공인, 이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교사의 전문성을 논함에 있어 다양한 측면의 능력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과정 문해력과 교육과정 재구성 능력일 수밖에 없다. 아무나 교육과정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성취기준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교육과정 재구성과 이를 통한 효과적인 수업 운영, 평가 설계가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많은 교사가 교과서에 의존한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교육과정이 아닌 교과서를 가르치는 데만 급급한 경우가 많았다. 교과서에 의존한 수업 방식은 교사가 아닌 그 누구라도 수업할 수 있다는 적지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켜 왔다. 교사는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자신만의 교육과정을 계획해 수업을 진행하고, 평가와 연계한 실질적인 피드백을 통해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교육과정-교과서-수업’의 관계를 ‘교육과정-교사-수업’의 관계로 재편하고 이를 위해 교과서 중심 수업의 틀에서 벗어나 교육과정 중심 수업으로의 전환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이것은 교육과정에 대한 교사의 높은 문해력과 교육과정 재구성 능력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