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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마을에서 책읽기] 통영, 그리고 김약국의 딸들

창원시 마산합포구 완월동의 낡은 상가에 작은 북카페가 생겼습니다. 반가워 차를 마시러 가니, 낡은 레코드에서 비틀즈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젊은 주인은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손님 없는 이곳이 반갑고 아까웠습니다. 혼자 책을 읽을 것이 아니라 함께 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에게 독서 모임을 안내하는 쪽지 한 장을 카페 문 앞에 붙였습니다.

 

가까운 곳에 사는 벗 한 명이 동참해 주기로 하여 사람이 없으면 둘이서 책 읽고 이야기하다 오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작은 쪽지에 화답하듯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책이 좋아 찾아왔던 다섯 벗과 지금도 매달 한 번씩 모여 책을 낭독하고 이따금 맥주를 마십니다. 그렇게 7년의 세월이 흘렀고 우리는 수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봄날에는 판소리 『춘향전』을 낭송하며 조선 젊은이들의 눈부신 사랑을 느꼈으며, 사랑 앞에 당당한 춘향이 오히려 현대적 의미의 여성임을 성토하였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가정 폭력과 장애인과 노인 문제, 가족의 의미 등으로 변주되면서 밤이 늦도록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흰 눈이 내릴 즈음엔 백석의 시를 읽었고, 화제가 된 책들도 꾸준히 선택되었습니다.

 

지금도 떠오릅니다. 문에 달린 종이 울리고 “오늘 여기서 독서 모임 하는 것 맞나요?” 물었던, 낯설지만 가까운 곳에 사는 벗들과 만나던 가슴 벅찬 순간. 그 카페는 이 년을 채우지 못하고 젊은 주인은 직장으로 돌아갔지만, 책 읽는 소리가 그리울 때면 찾아옵니다.^^

 

첫 독서여행을 통영으로 떠났습니다. 『김약국의 딸들』을 가방에 넣고 동피랑을 오르고 이순신공원과 디피랑에서 보석처럼 아름다운 불빛의 잔치를 즐겼습니다. 멍게비빔밥과 전복을 넣은 돌솥밥을 점심으로 먹고, 마지막으로 통영다찌에 앉아 해산물 한 상을 받아놓고 박경리 작가와 김약국의 딸들에 대해 깊게 토론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김약국 딸들의 운명을 이야기할 때면 우리 너머로 밤바다의 물결이 일렁이고, 미륵산 아래 용화사 길섶에는 후두둑 붉은 동백이 지고 있었습니다.

 

나그네는 지척지척 대문 앞으로 발을 옮긴다. 기웃이 집 안을 들여다본다. 삽살개는 섬돌 아래서 여전히 졸고 있었다. 그는 또 입을 달싹거렸다. 슬그머니 돌아서서 돌담을 따라 휘청휘청 걷는다. 느티나무 그늘과 담쟁이의 푸르름 때문인지 얼굴은 한층 창백해 보인다. 언덕의 잡풀 위에 그는 하염없이 신발을 내려다본다. 새로 지어 신은 신발에 붉은 진흙이 질퍽하게 묻어 있다. 버선등이 터져서 발이 내비친다.
‘그냥 함양으로 갈까?’
목구멍 속에서 구걸구걸 웃음을 굴린다. 울음 같기도 했다. 함양에서 첫날밤 신부를 내버려두고 뛰쳐나온 사나이다. p,16

 

이렇게 책을 이야기하고 시를 낭송하고 음악회를 함께 찾아가는 작은 독서모임을 통해 우리는 하는 일과 사는 모습은 다르지만, 서로의 마음에 접속하였습니다.

『김약국의 딸들』, 박경리 지음, 마로니에북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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