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오공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으로 변주되며 많은 작품이 아직도 제작되는 대단한 원숭이이다. 소설 『서유기』는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삼장법사와 함께 14년, 십만 팔천 리, 팔십일 환란을 견디며 부처님께서 계신 영축산에 가서 경전을 가져오는 이야기이다.
봄빛이 아름다운 날에 『서유기』가 읽고 싶었다. 비교적 원전에 가깝게 번역되었다는 솔출판사의 『서유기』세트가 학교 도서관에 있었다. 천천히 꽃이 피는 속도에 맞추어 읽었다. 그 시작은 동승신주 큰 바다 가운데 있는 화과산 꼭대기에 신령스러운 돌이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아 돌알 하나를 낳았다. 그 돌알이 바람을 쐬자 돌원숭이로 탄생한다. 하늘의 옥황상제가 손을 들고, 용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천하의 말썽꾸러기인 제천대성 손오공이다.
철쭉이 눈부신 날, 삼장법사의 내력이 서술되고 드디어 경전을 구하러 가는 천하무적 밴드가 탄생한다. 도저히 제어되지 않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욕망의 화신 손오공과 감각적 쾌락에 눈이 먼 저팔계와 자신이 누구인지 뭔지도 모르는 사오정, 그리고 용왕의 아들 용마는 서로를 미워하고 헐뜯다가도 요괴를 만나면 함께 싸운다. 이들을 이끌고 가는 인물은 힘없고 귀가 얇은 삼장법사이다. 그는 요괴들에게 잡혀가며 애타게 “오공아, 나를 구해다오!”라고 외치며 도움을 청한다. 겨우 살아나와서는 또다른 요괴에게 속아 인질이 되고, 손오공은 온갖 어려움을 뚫고 구하러 간다. 기상천외한 요괴들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손오공 밴드의 이야기는 밤늦도록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소설에서 최약체인 삼장법사가 세상에서 가장 힘센 원숭이 손오공의 스승이다. 손오공은 삼장법사의 걸음으로 부처님께서 계신 서역을 향해 나아간다. 삼장법사는 오직 서쪽을 향해 쉼없이 가는 존재이다. 어떤 고난이 있어도 한치의 흔들림 없이 길을 가는 그가 스승이고 이것이 결국 손오공을 깨달음의 길과 지혜의 길로 인도하게 되는 것이다. 스승은 이러한 존재일 것이다.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이렇게 어떤 일에나 진심을 담아 살아간다면 진리의 문은 우리에게 열릴 것이다. 우주의 아름다운 기운이 쏟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봄이 끝날 즈음 경전을 가지고 돌아오는 손오공 밴드와 만났다. 그들은 서천에 가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다. 서천으로 가는 그 과정이 깨달음의 길이요. 함께 가는 도반이 나의 스승인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욕망과 작별하고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자기 존재의 탐구와 구도의 여정을 함께하는 『서유기』를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는 이 시점에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동안 우리 속에 쌓여서 폭발할 것 같은 욕망이 어떤 모습인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의 모습을 통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서유기』세트 , 오승은 지음, 솔출판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