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중학교에 다닐 때 ‘학원’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어느 날 잡지를 보던 중 또래의 외국인 친구와 펜팔을 권유하는 글과 신청서를 보았다. 호기심으로 무려 다섯 친구를 신청하였다. 답장이 왔는데 미국친구 두 명과 독일친구 한 명이었다. 미국의 친구 한 명은 미주리주에 거주했고, 다른 친구는 오하이오에 살았다. 미주리친구는 노란 봉투에 보라색 송진을 떨어뜨려 봉인한 편지를 보내어 기억하고 있다. 오하이오 친구는 형제자매가 여덞 명이라 하여 놀랐고, 중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유아교육을 공부하여 아이들을 돌본다는 생각이 확고하여 또 놀랐다. 필자는 오하이오 친구의 영향을 받았음인지 대학에서 유아교육과에 들어갔다. 그리고 교수가 되어 30년후 미주리대학에 교환교수가 되어 미주리 땅을 밟았다.
요즈음 관심을 집중시키는 주제 중 하나는 ‘영유아교육과 보육의 통합’이다. 필자의 시절에는 많은 경우 할머님이나 어머님이 손주를 돌보아주셨다. 감사하게도 필자의 아이도 할머님이 살펴주셨다. 필자의 할머니셨으니 아이들에게는 증조할머님이다. 필자와 아이들에게 지금도 그리운 분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남성과 여성을 막론하고 변화하는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일의 강도는 높아지고, 부모님들의 사생활은 중요해졌으며, 배경이 다양한 웃어른보다는 전문가의 프로그램이 요구되어지고 있으며, 자녀들의 전천후 돌봄이 화두가 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다. 어른의 편의를 위해 아이들이 희생되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은 한국의 미래, 인재이다. 현시점에서 부모를 위해 어딘가에 맡겨져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초등학교 졸업식 노랫말처럼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아갈 미래’이다.
그 이전은 생략하고 필자는 2010년, 2012년, 2013년, 2014년 환태평양 유아교육학회에 참석하였다. 2010년은 중국의 항조우, 2012년은 싱가포르, 2013년은 한국 서울, 2014년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되었다. 학회 개회식에 중국은 공산당이 참석하고, 싱가포르는 매우 중요한 분이 오시니 참석자들은 일어나서 박수로 환영해달라고 하여 빈축을 받았으나 교육부장관, 국방부장관, 행정부 장관을 겸하고 있는 분이 참석하여 직접 싱가포르의 비젼에 대해 발표하였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거리 곳곳에 인물사진이 붙어있는 로열패밀리가 축하인사를 하였다. 내용은 동일하게 각 국가는 유아교육부터 시작하여 인재육성 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환태평양유아교육학회(Pacific Early Childhood Education Research Association, PECERA)에는 태평양지역 유아교육의 발전을 위해 설립되었으나 영국, 미국, 멕시코 등 세계여러나라 학자들이 참석한다.
‘유아교육과 보육 통합’에 관한 세계적 흐름은 1980년대 중반부터 아동가족부나 사회보건부에서 교육부로 일원화되어 운영되는 추세이다. 뉴질랜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가 여기에 속하며 특히 뉴질랜드는 취업한 부모를 대신한 돌봄에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인재교육에 방점을 두어 교육부로 이관하였다.
보육의 목적은 아동의 안전하고 건강한 생활유지이고, 교육의 목적은 인재육성이다. 각 국은 현재 유아부터 시작하는 인재육성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필자는 유아교육분야에 40년 일하였다. 감사한 일이다. 존경하는 코메니우스, 듀이, 몬테소리 등 대학자를 만나고 덕택에 행복하였다.
한국의 현상황에서 필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유아교육, 보육 통합 모형’은 교육부를 주무부처로 하는 유아학교체제이다. 0세에서 만5세까지가 유아학교범주이나 만 3세-만 5세를 의무교육으로 하여 초등교육과 연결한다. 다만 초등학교에 예속되는 형태보다는 현 공립유치원 및 사립유치원을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개념으로 의무화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는 2005년 프랑스 루앙대학을 방문하여 프랑스의 유아교육을 살펴보았다. 당시 프랑스는 유아교육전문가, 초등교육전문가, 중등교육전문가, 대학교육전문가로 각 분야의 특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각 분야는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기되 표준화, 획일화의 20세기의 전문성이 다양화, 개별화, 융합화의 21세기에도 적합한가는 현장의 흐름을 보며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
위 내용과 관련하여 방과중교육, 방고후교육에 관한 견해를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프랑스 루앙시에는 유치원과 방과후 학교가 한 건물 안에 있었다. 유치원 방과중교육을 마치고, 방과후교육이 필요한 아동은 유치원에서 방과후 학교로 가는 문을 열고 방과후 학교로 들어갔다. 유치원교사는 나머지 시간에 다음날을 위한 수업준비를 하고, 방과후 학교는 방과후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코메니우스에 의하면 방과중교육은 지식교육중심이며, 방과후 교육은 신체단련, 놀이활동 중심이다.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2시까지는 방과중교육이며, 오후 2시부터 오후7시30분까지는 방과후교육에 해당한다.
현재 한국의 영유아의 교육과 보육관련 시스템은 어린이집의 경우 오전7시 30분부터 오후 7시30분까지이며, 야간보육이라 하여 오후 9시 30분 이후까지도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필자는 2005년 미국 미주리대학에 교환교수로 있으며 어린이집 운영에 관해 살펴볼 수 있었다. 미주리대학(UMSL) 어린이집은 오전 7시 30분부터 근무하는 교사는 오후 3시30분에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며, 오전 8시30분부터 출근하는 교사는 오후 4시30분에 퇴근하였다.
한국에는 긴급보육제도가 있다. 이는 영유아교육, 보육기관에서 영유아를 보살피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시스템이다. 즉 오후 7시 30분부터 오전 7시 30분까지의 보육과 휴일보육이다. 양육자가 아프다던가, 몇 시간 혹은 며칠 아이들만 두고 나가야 할 상황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어야 하는 경우 이용할 수 있는 보육이다.
이러한 긴급보육기관은 영유아가 살고있는 거주지 주변에 있어야 한다. 영유아에게 익숙한 곳에 대한 안정감, 근접성에 의한 양육자의 편리함 때문이다. 영유아가 다니는 의료기관과도 가까운 장점도 있다. 사실 약이나 주사 등 의료관련은 영유아기관이 담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갑작스런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부모가 평소 이용하는 주변 의료기관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긴급보육까지 잘 이루어진다면 영유아를 보살피려는 정부의 노력에 사각지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어 양육하는 것이 장려되어야 할 일인가? 부모는 자녀를 양육해야할 책임이 있으며, 아이들 마음의 중심이다. 영유아교육, 보육기관은 학부모의 부족한 점, 어려운 점을 보충해주어야 할 시설일 뿐이다.
필자는 원고를 쓰는 내내 아이들이 가정이 아닌 곳에서 부모가 아닌 타인의 손에 24시간 맡겨져야 하는 상황이 마음 편하지 않았다. 어린 아이들이 기관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야 하는 것, 여기저기 낯선 곳을 이동하며 사는 것은 힘들고 쉽지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신의 분야에서 성과를 내며 치열하게 살아가야 할 부모세대에게 일보다 더 많은 공력이 들어가야 하는 자녀 양육도 모두 맡아야 한다는 말은 쉽게 하기 어렵다.
2005년 교환교수차 거주하였던 미주리 세인트루이스시에서 만난 한 유치원의 부모들은 한 가정당 아이가 평균 세 명이었으며, 오전 일정을 끝내고 모두 아이들을 데리고 귀가하였다. 유치원 학비가 꽤 고가이고, 오전 일정만 있으며,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데리러 왔다면 중산층 이상의 가정일 것이다. 부모 중 한 사람은 가정을 책임지며, 한 가정당 아이들은 세 명이나 되고, 가정과 아이들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는 이 모습에 필자는 ‘내가 생각하는 미국이 아니네’하며 놀랐다. 미국은 개인주의가 강해 아이보다는 자신이 우선이고, 경제적 여유가 우선이라 가정은 순위에서 뒤편일 것이라 생각했던 듯 하다.
영유아를 위한 교육이든 보육이든 그 모든 것의 목적은 아이들, 가정과 국가의 미래이다. 그 아이들을 위해 부모를 지원하는 것이다. 부모에게 여유로움과 행복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이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할 수 있는 다각적인 연구와 폭넓은 시각으로 한국도 영유아부터 시작하여 국가의 미래를 계획해야 때가 지금이라 생각한다.
(본 원고의 작성에 도움을 주신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박동박사님, 대구가톨릭대학 이소현교수님, 공주대 양지애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