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대제. 감기를 이기고 20여 년 더 통치해 러시아의 근대화를 크게 진척시켰다.”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다. 표트르 1세는 한창 일할 나이인 52세에 타계했고, 따라서 그가 열성적으로 추진하던 러시아의 서구화도 늦어지게 되었다. 표트르대제가 50대 초반에 타계하지 않았을 경우 러시아의 역사는 과연 달라졌을까? 그것과 관계없이 볼셰비키혁명은 일어났고 스탈린의 피의 숙청도 감행되었을까? 흔히 북극곰으로 불리는 러시아. 냉전시대의 소련만 못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강대국으로 행세하는 러시아. 9세기 중엽 이래 바이킹의 지배아래 있었고 -그들은 모스크바지역에 노보고로드왕국을 건설했다- 13세기 이후에는 몽골의 지배를 받아오다 15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겨우 몽골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했지만 후진의 굴레를 벗지 못한 러시아. 그 러시아의 근대화에 큰 족적을 남긴 표트르 1세(1682-1725) 이야기다. 후진국 굴레 벗지 못한 러시아 16세기에 접어들어 이반 4세가 짜르(tsar)를 칭하고, 17세기 초에 미하일 로마노프가 로마노프왕조를 연 후에도 러시아는 후진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표트르대제에 의해 서구적 근대국가의 모습을 갖추어가기 시작했다. 2m
공자와 논어의 오해와 편견에 도전하는 책, 논어는 진보다 고백하건대, 단 한 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논어를 읽었다거나 가슴 속에 새겨놓았다거나 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타인에게 읊어줄만한 구절을 외운다거나 오류없이 써내려갈 수도 없겠지요. 굳이 변명을 하자면, 고리타분한 유교의 시조인 공자가 그리 흥미를 끌지도, 식자들이 흔히 한 번씩 인용하는 논어의 가르침이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않았습니다. 한자들의 향연에 주눅 든 탓도 한몫 했겠지요. 그런데 이 사람, 도발적인 발언으로 등을 잡아챕니다. 우리가 잘못알고 있는 공자라니요? 점잖게 우리를 타이르던 그동안의 논어가, 2500년간 이어진 텍스트의 해석에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슬며시 여성과 노동을 낮은 자리에 두었던 공자, 충효의 속박에서 우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던 그가 사실 잘못 이해된 것이라니요. 슬슬 흥미가 끓어오르는군요. 저자는 반쪽짜리가 되어버린 논어번역의 가장 문제점은 논어를 철학서가 아닌 잠언집으로 만들어 버린 점이라고 꼬집습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해석이 되어버렸다는 것이지요. 사실 역사적 배경과 무관한 텍스트란 존재하지 않으며 논어도 그 텍스트이기는 마찬가지겠지요.
강원도 영월하면 첩첩산중 산골이 생각난다. 오죽하면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을 강원도 영월 땅으로 유배를 보냈을까. 굽이굽이 사행천이 흐르는 동강과 서강의 물줄기에 막혀 섬이 되어버린 청령포, 그 안에 단종을 가두었던 것이다. 단종의 애절한 삶 때문에 영월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은 소나기재이다. 구름도 고개를 넘다가 소나기 눈물을 흘리니 영월하면 떠오르는 것이 충절의 고장이요, 역사의 고장이란 수식어다. 하지만 이번 호에서 돌아볼 영월은 그 수식어가 다르다. 바로 ‘박물관의 고을, 영월’이다. 영월 곳곳에 크고 작은 이색테마 박물관이 자리하니 조선민화박물관, 동강사진박물관, 영월책박물관, 곤충박물관처럼 박물관을 명칭으로 사용하는 곳이 네 곳이며 단종의 능인 장릉 안에 자리한 단종역사관, 김삿갓 계곡에 자리한 난고 김삿갓문학관뿐 아니라 봉래산 정상의 별마로천문대, 국제현대미술관, 묵산미술관 등 박물관에 준하는 볼거리가 곳곳에 산재한다. 대한민국에서 인구대비 박물관 보유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 영월이라 하니 이 정도면 ‘박물관 고을’이란 수식어를 달아줄만 하지 않은가. 박물관 계곡, 김삿갓 계곡 그럼 먼저 와석계곡으로 가보자. 삿갓 하나 눌러쓰고 평생을 정처 없이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지대, 벌건 흙먼지 날리는 황량한 산길에 칠판을 멘 남자들이 나타난다. “구구단을 배우세요, 이름 쓰는 것도 가르쳐 드려요. 돈 대신 먹을 것 주셔도 돼요.” 하지만, 아무리 목청을 높여 봐도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 한 무리의 남자들은 커다란 칠판을 등에 지고 학생들을 찾아 이란과 이라크 국경지대를 헤매는 교사들이다. 마을과 마을을 떠돌며 방랑하는 이들 무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오직 흔들리는 카메라뿐이다. 그들이 가진 모든 것, 칠판 다큐멘터리처럼 시작한 영화 칠판은 이윽고 선생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리부아르(바흐만 고바디)와 사이드(사이드 모하마디), 두 남자의 여정을 따라간다. 산 위쪽으로 방향을 정한 리부아르는 이란과 이라크를 넘나들며 불법으로 밀수품과 장물을 운반하는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난다. 갈 길 바쁜 아이들을 막아서서 글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하지만, 그들에게 리부아르는 성가신 존재일 뿐이다. “글을 배우면 책도 읽을 수 있고, 신문도 읽을 수 있다”며 설득하는 리부아르. 하지만 아이들은 하루하루 밥벌이가 중요할 뿐, 글쓰기도 읽기도 구구단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리부아르는 끈질기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