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교사로 지민(가명)이를 맡게 됐을 때 끊이지 않는 학생 간의 갈등으로 버거워서 운 적이 많았다. 그 때 중등교사인 친언니가 이런 말을 했었던 게 기억난다. “네가 지민이를 만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야! 그 학생 입에서 널 만나서 감사했다는 말을 들어야 돼. 그건 의무야. 우리가 선생님을 하는 목적이고.” 이 말을 되새기며 1년을 보냈다. 그 시간들이 4년 후 금상이라는 큰 기쁨으로 저를 웃게 만든 것 자체가 감격스럽다. 단어 하나, 어미 하나 자세히 첨삭해주신 아빠, 삶의 고비마다 정신적 지주가 돼준 언니 그리고 무한 사랑으로 지지해주는 남편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 그리고 부족한 담임을 잊지 않고 찾아와 준 지민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또한 항상 교사의 권익을 위해 애쓰시고 이런 뜻 깊은 자리를 만들어주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관계자분들께도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메모하는 습관과 사전을 찾는 습관을 길러주신 사랑하는 엄마께 이 상을 드리고 싶다.
스물일곱 나이에 난 첫 발령을 받았다. 일반 대학교를 졸업하고 교대를 뒤늦게 들어가 남들보다 졸업과 취업이 늦었다. 한 번에 올 수 있는 길을 빙빙 돌아오니 교사에 대한 간절함이 남달랐다. 그토록 바라던 초등교사가 되고 첫 담임을 맡았다. 2011년 3월 2일. 30명 아이들의 이름을 하루 만에 외우며 마치 출산을 앞둔 산모처럼 아이들과 만날 날을 손꼽았다. 드디어 첫 날, 나는 문 앞에서 한 명씩 악수로 맞이했다. 4학년을 갓 지난 아이들이라 얼굴에는 아직 젖살이 있고, 키는 내 허리 정도였다. 하나같이 앳된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며 이름표에 맞게 앉았다. 그런데 유독 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키는 내 어깨 높이, 한 쪽 얼굴은 마비가 돼 힘겹게 눈 뜨는 이 아이. 당시 스물두 살 나이에 5학년인 지민(가명)이었다. “선생님, 내 자리 어디예요?” “응. 안녕 지민이구나. 여기 앉아.” “나 눈이 아파요. 여긴 안 보이는데. 딴 자리 없나?” “첫날이라 번호대로 앉는 거야. 선생님이 칠판 잘 보이도록 글씨 크게 쓸게.” 이렇게 웃으며 말을 했지만 속으로는 ‘반말이야 존댓말이야, 다른 애들은 다 이름표에 앉는데 무슨 불만이 저렇게 많은 거야?’라며 지민이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