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자기가 가지고 놀던 것을 자기가 치우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그렇게 가르치지 못했더라도 이제 새 학년이 되었으니까, “자 이제 너도네가 쓰는 방이나 네가 쓰는 물건은 네 스스로 치우고 정리하는 것이 좋지 않겠니? 이제 네가 스스로 정리를 해봐라”하고 맡겨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며칠 동안 스스로 치우면 칭찬으로 격려를 아끼지 말고 더욱 좋은 것은 잘 치운 상으로 정리함이나 서랍장 같은 것을 선물하여서 더욱 잘 정리할 수 있게 해주면 금새 스스로 정리하는 버릇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맡겨 놓아도 잘 정리가 되지 않으면 정리하는 방법을 같이 한번 생각해보고 함께 정리를 해서 방법을 알려준 것도 좋다. 그렇게 했는데도 정리를 하지 못하고 엉망으로 늘어놓았다면 자녀와 줄다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결코 먼저 치워 주어서는 안 된다. 며칠을 더 두고 보고, 그래도 안 치우면 어느 날엔 가는 아예 자녀 방안의 물건을 더 늘어놓아서 발 디딜 틈이 없도록 만들어 놓고 지켜보아야 한다. 자녀에게 이제는 "아무도 치워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면 스스로 정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정리가 어느 정도 되면 "아이구 방안이 환해졌구나
어린이들의 생활 습관은 부모와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부모의 생활 습관을 닮아가기 마련이다. 부모가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는 집안의 어린이들은 아무래도 더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함께 이야기 나누고, 무엇인가 먹기도 하고 하니까 아이들이 일찍 자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부모들도 일찍 자라고 권하거나 재우려고 애쓰지 않게 된다. 자기가 늦게까지 자지 않으니까 일찍 재울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다. 그래서 올해 입학식을 마치고 1학년 학부모님들을 모시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님은 어머니입니다. 학부모님이 가장 진실한 교사이고, 모범을 보이는 스승입니다. 부모님이 모범을 보이시면 자녀들은 따라서 저절로 잘 하게 됩니다”하는 이야기를 드렸었다. 이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바에서 배운 것이라도 집에서 부모님이 흔히 하는 말로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쳤어?” 하고 비아냥거리면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야”해버린다면 학교 교육은 전혀 쓸모 없는 쓰레기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집에서 가르치는 것과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다를 경우 아이들은 갈등을 겪게 되고, 그런 경우 학교 선생님의 말을 더 믿고 따르게 마
꽃피는 작은 교실 우리 교실은 미니교실입니다. 조그만 농촌 학교이긴 하지만 남양만을 막아서 마련된 간척지가 수십만 평이나 생겨서 새로운 들이 생겨난 이곳에 경상도의 안동댐과 충청도의 충주댐을 막을 때 생긴 수몰지역의 사람들이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몰민 이주지역 1,2,3,4지구라는 야릇한 이름의 부락이 네 개나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이 갑자기 늘어나는 바람에 그만 교실이 모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교장실을 반 칸으로 만들고, 나머지 반 칸의 교실에서 우리 반이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반은 전체 학생수가 32명뿐이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농촌학교의 모든 학급이 30명 안팎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가 공부하던 시절(80년)만 하여도 한 학급에 50명에서 55명씩이나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우리 반은 참으로 오붓한 교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교실에 아이들이 작으니까 넉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6학년이니까 제법 덩치들이 자란 우리들이 32명씩이나 들어간 교실이 반쪽이니 넉넉할 리가 없었습니다. 반쪽짜리 교실에 칠판도 반쪽이고, 딴 아이들과 달리 복도를 향하여 앉아서 출입문도 하나뿐인 교실이었습니다. 가끔은 교장실에서 하시는
아침형 인간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자기가 하고 싶을 때에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고 자기 시간대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인간이란 보편적인 진리라는 것이 있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진리라는 생각을 할 때 아침형 인간이 더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조사한 것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잠자는 시간이 전 세계에서 3번째로 늦다고 한다니 너무 늦게 잠을 자는 국민이라는 말이 된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새벽 시간대인 1시 이후에 잠을 자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우리가 생각을 하였던 것보다는 상당히 늦은 시간대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아침 일찍 일어나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침 운동을 하는 버릇을 가진 사람들은 그 시간이 되면 자라고 해도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아침형 인간이라는 사람들은 저녁 늦은 시간대에 활동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언제나 새벽에 일어나서 활동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좋은 것이 일반적인 습관이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의 형편으로는 대학입시를 준비하
권투 시합 “얘, 너 쪼그만 게 또 까불어?” “까불다니? 네가 뭔데 이렇게 자꾸 내게 시비니?” “네가 자꾸 까부니까 그렇지.” “까불다니? 내가 너에게 뭘 어떻게 했길레 그러는 거냐?” “너 말야, 어제 오후에 친구들에게 그랬다며? 나쯤은 문제도 없다고?” “걔들이 그러던데, 날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다고 그랬다며.....” “짜아식들 그런 소릴 다 까 쳐먹었군.” “그래? 네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사실이란 말이군.” “그래, 그랬다 왜? 내가 뭐 네가 무서워서 그런 소리도 못할 것 같으냐?” “그래? 결국 나에게 한 번 붙어 보겠다는 말이군!” “그래 임마! 네까짓 거 때문에 내가 무서워서 벌벌 떠는 못난인 줄 알았다면 큰 잘못이지. 아무튼 붙고 싶으면 붙어 봐. 언제든지.” “좋아, 그럼 오늘 오후에라도 만나자. 난 뭐 네까짓 게 무서운 줄 아니?” “좋다. 그럼 오늘 오후에 하교 뒷산의 솔밭에서 만나. 한판 붙어 보자구.” 항상 말썽꾼인 경양이가 오늘도 무슨 일을 벌일 모양입니다. 덩치가 크고 힘 깨나 써 무서운 게 없는 종찬이의 이야기를 듣고 한판을 붙기로 약속을 한 것입니다. 종찬이야 덩치가 얼마나 큰지 중학생만큼이나 크고 기운도 세었습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무언가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얼른 메모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그런 아이디어는 순간적으로 떠올랐다가는 금새 사라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속담에 '놓친 고기가 더 크다'고 했던가? 그 사라져 버린 생각을 다시 생각이 난다면 싶은 아쉬움이 한동안 떠돌 때가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새 학년의 선물로 이런 메모장을 마련해주고 멋진 메모를 할 수 있는 기술을 익혀준다면 자녀는 평생 활용할 수 있는 생활의 지혜를 하나 몸에 지니게 될 것이다. 결코 작은 것이 아닌 이 기술을 배우기 위해 늘 메모를 해두는 버릇이 몸에 배어 있는 60이 넘은 필자는 아직도 가끔은 메모를 버리기도 하고 놓치기도 하는 것이 아쉬워서 지난해 가을에는 '메모의 기술'이라는 책을 사서 읽으면서 새로운 메모법을 익히려고 노력을 한 적이 있다.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고 보니 메모를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다면 이런 순간적으로 왔다가 사라지는 멋진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물으나 마나 생각이 날 때 곧 메모를 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메모할
쫓겨난 무덤들 “여보시오. 김 교수, 이거 아주 조그만 성의니 받아 두구려!” 한 사장의 은근하고 사람을 못 견디게 하는 유혹의 손길은 이렇게 뻗쳐 왔습니다. 김 교수는 눈을 지그시 감고서 자존심을 내세워서 자신의 인격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이 재벌과 적당히 손을 잡고서 세상이 돌아가는 데로 흘러가고 말 것인가를 마음 속에서 결정하려 했습니다. 여우 같은 한 사장은 벌써 이런 눈치를 알아차리고서 또다시 손길을 뻗쳐옵니다. “김 교수, 이거 별 뜻이 담긴 것은 아니오. 그 흙단지가 얼마나 값진 것이라고 내가 그걸 욕심내서가 아니고, 다만 나의 이름으로 남기고 싶은 저 익운(새털구름이라는 뜻을 지닌 한 사장의 호이자 자신이 수집한 각종 문화재를 진열하여둔 개인 박물관)에 골고루 갖추어 두고 싶은데, 마침 이곳에서 이런 것이 나왔다니 반가워서 그러는 거라오. 조그만 것이오 받아두구려.” “한 사장님, 저의 사정을 좀 보아주십시오. 사실 저도 전국적인 발표와 이 조그만 항아리의 문화재적 가치만 아니라면, 아예 그냥 드리고 싶습니다. 제 발 40여 년을 쌓아온 학문의 길을 지킬 수 있도록 저를 좀 도와 주십시오.” 김 교수가 사정을 하며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애걸하듯
자녀가 새 학년을 맞이하면 당연히 무언가 기념이 될만한 무엇을 사주고 싶고, 축하해 주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좋을까? 물론 자녀가 사달라고 하는 것을 사주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겠다. 그러나 무조건 자녀의 사달라는 것만을 사주기보다는 나름대로 무언가 부모님의 사랑과 지혜가 담긴 것이면 더욱 좋지 않을까? 특히 요즘에는 필요한 학용품이 별로 없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학교에서 학습준비물을 대부분 준비해두기 때문에 옛날처럼 공책 10권, 크레파스, 색연필, 책받침, 연필 두 타스, 고학년이면 서예도구로 문방사우(먹·벼루·붓·화선지)와 화판, 악기 등을 사야 하는 그런 번거롭고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노트 몇 권, 연필, 지우개 정도면 나머지는 대부분 학교에 비치되어 있는 것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학교에서 준비를 해두고 잇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직접 돈을 가지고 사야할 학용품이 극히 줄어들었고, 거의 살 것이 없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새 학년이 된 어린이에게 어떤 선물을 사주면 좋을까? 고학년 어린이라면용돈기입장을 사 주라고 권하고 싶다. 하필이면 자녀들이 가장 싫어하는 용돈기입장이냐고 할는지 모르지만, 요즘 어린이들 사이에 상당
진달래 산으로 빙 둘러 싸여 있는 전남 보성군 율어면 이동리와 유신리, 장동리, 칠음리를 품은 상도들은 유난히 날씨가 추운 듯 이웃면에 비하여 벌써 1주일은 늦게야 진달래가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4학년 나미는 이제 며칠이 지나면 이곳에서 천리 길도 더 되는 멀리 경기도로 이사를 가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웃에 사는 정다운 친구들과 어울려서 봄동산으로 봄나들이를 가기로 한 것입니다. 이 고장은 들판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시내가 흐르고 빙 둘러 친 산에서 내리 뻗은 산줄기들이 들판을 향하여 마주 내려오다가 시내에 이르러 얼굴 맞이를 하듯 멈추곤 하여서 마치 야구 선수 중에 포수가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쓰는 얼굴가리개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만 같습니다. 이런 들판의 동편 기슭에 자리 잡은 율어동초등학교는 12학급짜리 아담한 시골 학교이지만 학교 안에 이런 저런 시설들이 어찌나 아담하게 잘 꾸며져 있는지 이 고장에 오는 사람들은 공원 삼아 학교에 들어와서 기념사진들을 찍곤 하는 곳입니다. 나미가 1학년 입학을 하여서 다니던 읍내 학교는 군내에서 가장 잘 꾸며진 학교로 소문이 난 곳이었습니다. 이 학교에서 나미 아버지는 가장 앞장을 서서 학교 공원화 사업이라는
작은 꿈이 꽃 필 때 1. 농삿군 아이들 1987년 5월말쯤의 날씨는 유난히도 무덥고 몇 달 째 계속되는 가뭄에 마을 앞의 개울물이 말라붙어서 실낫 같은 물줄기를 붙잡기 위해서 여기저기 냇바닥을 파고 양수기를 쓰기도 하고 두레박으로 퍼서 물을 끌어올리고 있었습니다. 못자리의 모가 자라서 모내기를 하여야 할 때가 넘어가고 있었지만, 바짝 마른 논바닥에 모를 낼 수가 없어서 날마다 하늘을 쳐다보면서 비가 오기를 바라는 비타령만 하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다 못한 나라에서는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동원하여 못자리에 물주기를 하라고 시켰습니다. 냇물에서 못자리까지 100m도 넘는 긴 줄을 두 줄 세우고 한 줄은 물을 담은 그릇이 가는 길이고, 다른 한 줄은 빈 그릇이 냇가로 가는 줄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이 귀한 물을 한 방울이라도 더 많이 못자리까지 가져 갈 수 있도록 조심조심 물그릇을 손에서 손으로 옮겨 주었습니다. 논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어도 바가지에 담겨 오는 물을 뒤집어쓰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목이 타도 마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한 시간쯤이나 작업을 하면 겨우 스무 평 남짓한 못자리에 물을 한 번
어느 학교나교실에서 나온 죽어가거나말라비틀어진 화분들을 보기 쉽다. 부모님들이나 어린이들이 보기 좋아서 또는 교실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 정성껏 준비한 화분일텐데 왜 이렇게 말라비틀어지게 만들고 마는 것일까? 우선 각 교실에 사다 준 화분들은 대부분이 우선 화려하게 꽃이 피어 있는 것을 사다 주기 쉽다. 그렇지만 이렇게 한창 꽃이 피는 화분은 가장 관리가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이 화분들이 어려서부터 화분 안에 심어서 가꾸어 꽃을 피운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묘포에서 꽃이 피기 시작한 것을 화분이 옮겨 심은 것이기 때문에 뿌리가 상하거나 부실한 것이 많다. 또한 화분에 심을 때 화분 전체를 흙으로 채워서 충분히 물기를 가질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1/3 정도는 스치로풀 같은 것으로 채우고 윗부분만 흙으로 심은 경우도 있어서 물을 충분히 주어도 금새 빠져나가거나 흙이 적어서 쉽게 말라 버리게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화분 자체가 잘 마르게 되어 있는데다가 교실에서는 자기 집이 화분처럼 관리가 잘 되지 않기 쉽다. 서로 미루다가 물주는 일을 잊기도 하도, 어느 날은 물을 준 뒤에 또 주기도 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 또한
학년초가 되면 각 교실에는 알게 모르게 학부모님들이 사다준 물건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물건을 사오는 이유는 다름 아닌 선생님께 봉투를 가지고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걱정을 하던 학부모들이 맨 손으로 올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음료수를 사 가지고 가는 것도 낯간지럽다고 생각을 하여서 ‘차라리 학급에서 필요로 할만한 물건을 사 가지고 가자’며 사온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물건을 받는 것도 담임으로서는 별로 달가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못 가져온 아이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차별을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지 않았다지만, 어린이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가 있는 일이다. 모든 일은 동전의 양면처럼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럼 물건이 제법 돈을 들인 값진 물건일 경우 아이들이 상당히 민감하게 생각을 하고 담임의 행동을 색안경을 쓰고 보기 시작해서 담임이 은근히 조심스럽고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요즘은 학급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거의 지원하고 있어서 특별히 학급에 무엇을 지원해주어야 하는 그런 시대는 아니다. 학교경비에서 자녀들이 쓸 학습준비물까지도 모두
이발사 선생님 “야! 너희 선생님은 아이들이나 가르치지 않고 왜 그렇게 극성이니?” “뭐가 극성이예요?” “선생님이 공부나 잘 가르치면 되지 뭐라고 이발사까지 하는 거라니?” “아 아, 그거요? 선생님이 우리들이 이발을 제대로 하고 다니지 않으니까 고등학교 때 적십자 봉사활동을 하면서 배웠다고 우리들의 머리를 깎아 주시는 거예요. 그게 뭐 잘 못인가요?” “그럼! 선생님은 아이들을 돕는다고 하겠지만, 우리는 바로 밥줄을 위협받고 있지 않니?” “아저씨가 좀 도와준다고 생각하세요. 우리 반의 불쌍한 아이들에게 무료로 봉사활동을 하셔서 공짜 이발을 해주었다고 생각하시면 되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시고, 아저씨가 할 일을 우리 선생님이 대신 해준다고 생각을 하시면 좋겠어요.” “어! 이 녀석 보게 아주 어른보다 더 생각이 깊네?” “고맙습니다. 아저씨가 이렇게 얼른 이해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승리 이발소의 주인이자 이발사인 박종일 씨는 아직 어린 조카인 성직이의 말에 그만 웃어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너의 부탁을 네가 들어 주는 것으로 하마.” “고맙습니다. 아저씨.” 이런 이야기를 하고 돌아간 성직이를 보내고 나서, 박종일 씨는 혼자
‘우리 아이가 혹시 학급에서 왕따를 당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의 공통의 걱정거리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초등하교 저학년까지는 그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어린이들의 성장 특성 상 4학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나름대로 그룹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갱'이라는 자신들만의 조직을 가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4학년 이상의 어린이들에게서 왕따의 징조를 쉽게 알아내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사실 이것은 부모님이 조금만 신경을 쓰면 아주 쉽게 알아 낼 수 있는 간단한 일이다. 왕따의 전조 현상은 자녀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만, 일단은 전에 보이지 않았던 다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 첫 번째 징조일 것이다. 갑자기 말수가 줄었다, 친구들을 데려 오는 일이 없어졌다. 혼자 있고 싶어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돌아다니다가 외톨이가 되었다. 이런 현상은 바로 자녀에게 왕따라는 그림자가 비치기 시작했다고 보아도 틀림이 없다. 또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좋아하는 친구보다는 싫어하는 친구들이 더 많아졌다. 다시 말해서 '좋아하는 친구''싫어하는 친구'가 되었다면 이제 점점 다른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기 시작
우리가 번 돈 이예요. 빼앗지 마세요. 1977년의 봄은 유난히도 빨리 찾아 왔었다. 지난 겨울에도 별다른 추위가 없이 넘어갔을 뿐만 아니라, 수북하게 쌓일 만큼 눈다운 눈이 내린 적도 없었다. 비가 내린 것도 아니어서 봄이 되어도 파란 싹들이 제대로 돋아나기나 할 것인지가 걱정스러울 지경이었다. 겨우내 비가 내리지 않은 들판은 봄이 되자 얼었던 것이 녹으면서 온통 먼지만 풀썩거리는 사막과도 같았다. 벌써 물이 고이고 못자리를 할 준비를 해야 할 논바닥은 허옇게 메말라 있고, 쟁기질을 하는 논에서 뽀얗게 먼지가 피어올랐다. 논바닥이 요 모양일 때 밭에 심은 보리나 밀은 자라지 못해서 앙당하게 퍼지기만 하고 키가 자라지 못하였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기 전에 보리밭에 풀을 매고 북을 주어서 보리 뿌리를 튼튼하게 해주는 작업을 할 때에도 온통 먼지가 날려서 허옇게 흙먼지를 덮어써야만 하였다. 하긴 그래서 논에 심은 보리는 다른 해 보다는 훨씬 더 좋은 편이었다.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많이 내리는 해에는 보리를 심은 논에 물기가 많아서 보리가 물손(물기가 많아 해를 입어 죽어 가는 일)을 받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올해는 논이 바짝 말라서 밭처럼 고슬고슬하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