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어떤 아이들과 어울리는가? 어떤 친구를 가졌는가를 살피는 것은 자녀에 대한 의무이자, 부모의 사랑을 나타내는 척도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즘 부모들이 맞벌이 등으로 자녀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시간을 갖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대부분이 저녁밥을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먹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혼자서 먹는 아이들도 절반에 이를 정도이니 자녀가 누구와 어울려 노는지를 부모가 알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린 자녀가 과연 어떤 친구들과 어울리며 어떤 관계를 가지고 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자녀가 바르게 자라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혹시 자녀가 왕따를 당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싫어하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싫어하는 아이 이야기를 할 때에는 나름대로 상당히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는 신호인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들이 이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고 이유도 들어보고 과연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자녀의 의견을 들어주어야 합니다. 특히 자녀와 이야기를 자주
소녀의 기도 존재산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산줄기는 갑자기 뚝 떨어져 내려오다가 중간에서 잠시 멈칫 하는 듯 산등성이를 하나 만들고, 이내 쏟아져 내리는 듯 낮게 흘러서 미륵댕이에 와서는 잔잔한 파도와 같이 기슭으로 퍼지며 산골 들판을 이루었습니다. 이 산골 들판이 시작되는 첫 들머리에는 약 4m 쯤 되는 바위 절벽이 있습니다. 이 절벽의 바위에는 어느 시절에 새겼는지 전해지지 않은 커다란 미륵상이 새겨져 있는 중바위라는 곳이 있어서 이곳을 '미륵댕이'라고 불러오고 있습니다. 오밀조밀 산골 다랑치를 일구어 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새끼미’ 마을을 지나면 조금은 들판 같은 펑퍼짐한 ‘버드내’ 마을에 이릅니다. ‘새끼미’는 열 채 남짓한 농가들이 이마를 마주해 모여 살고, 살림살이는 넉넉하지 못해도 정답고 인정이 있어서 한 집안 식구처럼 도와 가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아네는 마을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에서 가장 오래되고 뼈대가 있는 집안이었습니다. 제법 살림이 넉넉하고 다복한 집에서 자라난 경아는 달덩이 같이 둥그스럼하고 복스런 얼굴에 얌전하기가 새색시 같아서 칭찬을 독차지하고 자랐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글씨가 어른 뺨치게 예뻐서 부러움을 샀습
새 학년을 맞으면 학부모들은 여러 가지 걱정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거리가 친구들과 얼마나 잘 어울려 생활할 것인가를 걱정하는 일이다. 사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아주 쉽게 친해지기도 하고 쉽게 삐지기도 하여서 늘 크게 걱정을 하지 않고 지내기 마련이다. 더구나 초등학교 저학년인 3학년까진 왕따라던가 따돌림이라는 말이 그리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4학년에 올라가면서부터는 이제 어린이들이 각자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구별하고 함께 어울리지 않는 등 점차 친구관계를 가리기 시작을 하는 때이다. 이렇게 친구를 가리고 점차 좋아하는 친구를 찾기 시작을 할 때부터는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기 시작을 하는 때이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서 놀면서 싫은 아이를 끼워주지 않는 등의 일이 벌어지기 시작을 하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학부모는 자녀의 성격 따라 부모님이 협조해줘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잘 못하면친구들 사이에서 '마마보이'라는 인상을 주어서 잘 어울리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부모님들이 자녀의 친구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은 대단히 좋은 것이지만, 이것이 조금만 지나치면 친구들은 어머니의 치마폭에 싸여 지내는 아이라고
마을공부방이 좋아요. “새벽종이 울리네, 새아침이 밝았네..........” 아침 다섯 시가 되면 어김없이 학교 스피커가 큰 소리로 방송을 시작합니다. 각 마을에서도 마을 방송을 통해서 방송이 울려 퍼집니다. 아이들은 곤한 잠을 이기지 못해 눈을 비비지만 어른들은 어서 일어나 나가라고 독촉입니다. “경란아, 어서 나가야지. 어제도 지각을 했다면서 오늘은 지각을 안 하게 나가야지.” 아버지의 독촉에 경란이는 부시럭거리면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습니다. 아침마다 마을 앞에 모여서 마을 안 길 청소도 하고 체조도 하면서 아침 늦잠을 자지 않도록 하는 애향단 활동의 하나이지만, 올해는 마을 공부방이 생겨서 마을 별로 활동 상황을 점수로 하여서 방학이 끝나면 상장을 주고 공부방에서 공부한 것을 시험을 봐서 표창을 하기로 되어 있으니까, 각 마을에서는 중, 고등 학교에 다니는 오빠, 언니들이 도와주기까지 합니다. 우리 학교는 멀리 남쪽 바닷가의 산골 마을입니다. 어찌나 교통이 불편한지 법적으로 벽지(교통이 불편한 지역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그래서 이 고장의 학교에는 선생님들이 오래 계실 수도 없습니다. 너무 불편하여 오래 사시려고 하지도 않지만, 이 벽지를 오려는 분들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력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학부모님이 오셔서 처음부터 끝까지 학력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는 경우에는 댁의 자녀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바른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실 학교 교육이란 학력만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사실 요즘 도시지역의 학교에서는 학교에서 교과서를 가르치지 않아도 모르고 지내는 아이가 별로 없을 만큼 사교육에 맡겨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담임이 "알고 있지?"하고 넘겨 버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학교에서는 학교 나름대로 정상적인 교육과정에 의해서 운영이 되고 학습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본학력을 갖추는 것은 게을리 하지 않고, 따르기만 한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다 배울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을 데리고 공부, 공부한다면 그것도 문제일 것입니다. 초등학교는 사회생활을 위한 기초기본을 익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과서의 내용을 배워서 익히는 것 이외에도, 바른 인성교육 , 질서교육, 예절교육, 진로교육 등의 사회 적응을 위한 교육, 장래를 위한 교육 등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가지고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초등학교에
얘들아, 앉아서 놀자 ! “엄니,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네에.” “그만 참고 자거라. 그래도 너는 죽을 한 그럭 반이나 묵었잖냐?” “나물만 들고 쌀도 한나 읎는 멀건 죽인디 묵으나 마나제.”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투정을 하지만 어머니는 더 배가 고픕니다. “그래 알았다야. 자 물이라도 한 그럭 마시고 자그라. 낼 모레믄 아랫뜸 김부잣집 종배네 모내기를 하는 날잉께 쌀밥 한 그럭 얻어 묵을 수 있을 것 잉께. 쪼끔만 참그라.” 점돌이의 투정에 가슴이 아파오는 어머니는 어린 점돌이를 달래다가 가슴에 꼬옥 껴안고 속삭여 줍니다. 산나물에다가 겉보리 간 것을 한 주먹 넣어서 멀건 죽을 끓였지만 그것도 넉넉히 먹을 수가 없습니다. 늘 배가 고프다고 하는 귀여운 아들 점돌이에게만 한 그릇을 부어 주고서 자신은 반 그릇 남짓밖에 못 먹었습니다. 온종일 산을 헤매며 산나물을 뜯노라고 지친 엄마는 팔다리가 아리고, 쑤시고, 뱃속은 쪼르록 소리만 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도 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없는 자신이 밉고 죄를 지은 것 같아서 점돌이의 투정에 짜증을 낼 수도 없는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6.25 전쟁통에 공산당과의 싸움을 위해 살던 집들을 모두 불태우
새 학년을 맞이하면 이제 새 담임을 만나게 되고 학부모님들은 새 담임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 것인지 걱정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은 학교에 가려면 어떻게 빈손으로 가느냐는 생각 때문에 갈 수도 없고 안 가볼 수도 없어서 난감해 하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학교도 많이 변했습니다. 아직도 돈 봉투를 요구하는 김봉두선생님이 계시는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한에서는 적어도 요구하는 선생님은 안 계시리라 믿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썩어 문드러져 있지는 않다고 봅니다. 더구나 요즘 젊은 교사들은 과감히 이런 구습을 벗어 던지자고 나서서 활동을 하기도 하고, 일부 교원 단체에서는 더욱 그런 것을 내세워서 몰아 내겠다고 나서기도 하였습니다. 또 솔직하게 말해서 요즘에 그렇게 함부로 요구를 하다가 인터넷이라도 뜨는 날이면 불명예스럽게 되기 때문에 다들 몸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어서라도 조심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 담임을 만나러 가는 일을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정말 어렵다면 선생님과 이 야기 도중에 마실 수 있는 음료수 정도 마련해 가지고 가서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 담임을 만나면 꼭 이야
피노키오의 편지 “선생님 여기가 정수네 집이예요.” “응, 그래 ? 고맙다. 이제 알았으니 넌 돌아가거라.” “선생님 안녕히 다녀가세요.” “그래, 잘 가 !” 영우의 인사를 받으며 선생님은 비탈길을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지금 선생님이 찾아가는 정수는 이제 국민학교 5학년생입니다. 집안이 넉넉지 못하여 어머니가 생선을 받아 이고 다니면서 팔아서 집안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찾아가는 집도 언덕위에 덩그랗게 서 있는 자그마한 것으로, 읍내에서 주욱 벗어나서 5일 장터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가에 서 있는 정미소 뒤쪽의 언덕위에 있는데, 언덕이 어찌나 높은지 아래에 정미소가 지붕만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전근을 오시기를 묘하게도 12월에 오셨기 때문에 말썽꾸러기 우리 반을 맡게 되셨습니다. 우리 반의 아이들은 67명이었는데, 어찌나 말썽을 피웠던지 도무지 이웃 학교까지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처음 우리 반 교실에 들어오시던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작년 12월 우리가 아직 4학년 2반이었을 때였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이름을 칠판에 쓰시고서 간단히 소개를 하신 다음에 우리에게 한 사람씩 자기를 소개하여 보라고 하셨
3월이면 새 학년을 맞게 된다. 학생들에게는 진정 새해 설날이 되는 셈이다. 학생들은새학년 새 학교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진정한 새해를 맞는 것이다. 그러면 새학년을 맞이하는 어린이들 학생들은 어떤 준비를 갖추어야 할까? 이제는 옛날과 달라서 새학년 교과서는 봄방학을 맞이하면서 이미 다 받아서준비를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므로 새교과서를 받아서 이미 새학년의 준비를 시작할 수 잇게 되었으면, 새 교과서에 따라 준비해야 할 것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미리 살펴서 준비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령 국어교과서를 보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있다. 사실 교과서에서는 책의 내용의 극히 일부분만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런 책을 미리 읽어 둔다면 그 부분을 공부할 때에 많은 도움이 되고 책의 내용을 알고 있으므로 교과서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렇게 미리 준비하는 것은 학원에서 하는 선행학습과는 전혀 다른 학습준비이자 기초를 다지는 일이 된다. 사회에서 시장이 나온다면 시장에 가서 부모님과 함께 시장을 보기도 하고, 자신이 돈을 가지고 직접 물건을 사보고 계산을 해보는 경험을 해본다면 시장 단원을 공부할 때 이야깃거리도 되고 이해하는데도
아름다운 정원을 꾸미는 선생님 “김선생, 일어났는가? 어서 나오시게.”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선생님을 불러 깨우는 소리는 바로 이웃에 사시는 교장선생님의 목소리입니다. 아직 환히 밝지도 않은 새벽 기운이 감도는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해서 이렇게 일찍 나오셔서 김선생님을 불러내십니다. 김선생님의 아들인 나 선이는 오늘 아침에도 아버지가 교장선생님의 부름에 억지로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면서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습니다. “아버지, 나도 따라 갈래요.” 내가 앞장을 서려고 나서지만, 아버지는 그런 나를 데리고 차분하게 나설 틈이 없습니다. 지금 벌써 교장선생님이 아마도 작업을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지난봄부터 시작한 학교공원화계획은 이제 가장 바쁜 계절이 되었습니다. 봄부터 화단을 꾸미고 나무들을 심고, 꽃모종을 가져다 심는 등 꾸준히 작업을 계속하여 왔습니다. 학교 화단은 온통 아름다운 꽃모종들이 빼곡히 들어앉아서 꽃망울을 달기 시작한 것도 있습니다. 요즘은 화단에 있는 나무들을 다시 옮겨 심어서 보기 좋게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처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은 꽃모종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기 때
학년이 끝나는 2월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며칠 동안이나마 지난 한 해 동안에 한 일을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학년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할 달이다. 그런데 사실상 2월에 출석을 하는 날이 며칠 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학교생활은 거의 마감이 된 상태가 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제 새로운 학년이 되면 지금까지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과 대부분이 따로 헤어져서 다른 반으로 갈라지게 된다. 이런 점을 생각해서라도 이제까지 보낸 1년 동안 친구들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잘 정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떤 어머니들은 지금까지 가까이 지내던 반의 친구들을 불러서 간단한 음식이라도 대접하면서, 한 해 동안 잘 지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당부를 하는 경우도 보았다.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는 어머니는 아마도 자녀의 교우 관계를 좀 더 진지하게 그리고 원만하게 잘 돌보아주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헤어질 때 잘 헤어지는 것은 다시 만날 때 더욱 좋은 만남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지난 한 해 동안의 공부를 돌아보면서 부족했던 부분은 무엇이었으며, 잘 한 부분은 무엇이었는지를 반성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달부터 시작될 새 학년의
염소 장학금 “아빠 ! 얼른 좀 와 봐요. 우리 염소가 죽었어요.” 나미는 눈물이 범벅이 되어서 사무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울먹이면서 말을 합니다. 나미 아빠는 이 말에 마치 스프링이 튕겨지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미의 손을 잡고 뛰어 나갑니다. 집까지 불과 300여m 아빠는 나미를 끌다시피 하면서 집으로 달려 들어갑니다. “여보, 이거 불쌍해서 어떻게 해요. 저 건너 산에다 매어 놓은 것을 동네에서 커다란 새퍼트가 물어 죽였다는데, 개 주인도 알 수 없고 언제 그랬는지 이미 다 죽어 가는 것을 끌고 왔지만 어떻게 할 수가 있어야지요.” 엄마의 얘기를 듣는 동안에 염소는 마지막 숨을 거두어 가고 있었습니다. 목 부분에서 흘러 나오는 피는 마당을 적시고 흘러내리고,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가냘픈 비명을 지르지만 이미 그 소리도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게에에, 게에에에에” 목구멍에서 사라질 듯 사라질 듯 가냘픈 소리를 냅니다. 우는 소리인지 숨을 쉬기가 힘들어서 나오는 소린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흘리다가 점점 그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습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아빠는 우선 달려가서 그곳을 좀 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일
여주와 나팔꽃 “실례합니다. 선생님, 저 여주가 무척 아름답게 보이는 데, 씨앗을 좀 얻어 갈 수는 없을까요 ?” “대단히 죄송합니다. 여기 이렇게 매달려 있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이걸 따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볼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선생님, 그렇군요. 그렇지만 전 여길 자주 오는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멋지게 가꾸어진 여주를 보니까 욕심이 나는군요. 한 송이만 얻어 가면 감사하겠습니다.” 예비군복을 입은 한 청년이 교실로 들어서면서 애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마십시오. 저도 한 송이를 따다가 제 방에다 두고 싶어도 따가지 않고 있답니다. 이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시군요. 죄송합니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이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빈손으로 돌아가시게 되어서......” “괜찮습니다. 미안합니다.” 예비군복을 입은 젊은이는 이렇게 생각을 바꾸어 먹고 돌아갔습니다. 선생님은 그 사람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약간은 미안한 상태로 돌아서면서 입맛을 다시고 있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아이구 이러다간 내 열맬 빼앗기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다행히 그렇게 돌려 보내셔서
송편은 우리나라 계절음식의 제일 첫손가락을 꼽을 수 있는 음식 중의 하나이다. 물론 전해오는 계절에 따라 절기마다 각기 다른 음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설날의 떡국, 대보름의 오곡밥과 부럼, 하드렛날의 볶은 콩, 유두에는 부침개(밀전병), 추석에는 송편, 동지에 동지죽 등 계절마다 제철에 나는 각종 곡식과 과일을 이용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 송편이 가장 원칙적으로 만드는 것은 어떤 방법일까 ? 내가 내 평생에 가장 멋있는 송편을 만들어 먹은 것은 197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사실 나는 그때에는 무엇이 무엇인줄도 모른 채 그저 집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그냥 만들어 본 것이었는데, 그게 내 생애에 가장 멋있는 송편을 만들어 먹었던 것이었다. 이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헐벗은 산을 사방사업을 하노라고 산에 있는 나무와 풀, 그리고 각종의 씨앗들을 수집하는 게 당시의 국민학교 어린이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과제였었다. 심지어는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나가서 아카시아와 잔디의 씨앗을 수집하기 까지 하였다. 그렇게 산과 들을 헤매던 우리 반 아이들은 산에 가서 잔디 씨를 따다가 더워서 못 견디겠다고 저수지에 뛰어 들었다. 물론 이 저수지의 물은 그 깊이가 겨우
참나무 껍질 같은 손 1972년 12월5일, 나는 발령이 나서 이 학교에 부임을 하였다. 사실 6학년 담임을 하여서 이미 입학원서도 다 썼고, 졸업사진까지 다 찍어 놓은 상태에서 근무하던 학교를 떠나려고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교감선생님과의 다툼 때문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교감선생님의 깔쭉거림에 지친 내가 차라리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으니 우리 교감선생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교감선생님은 바로 우리 고장에서 나고 자란 분으로 형님과는 친구 사이이고 학교도 바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가 나의 모교 선배님이시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학교에 가지 않고 젊은 시절을 몽땅 이 학교에만 있으면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집안일에 열성을 부리므로 해서 고장 사람들에게서 [논두렁선생]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분이셨다. 나와 같이 근무하면서도 내가 6학년 담임을 하면서 밤에도 아이들과 학교 교실에서 합숙을 하고 있을 무렵에도, 아침에 학교에 오면 아이들 앞에 있는 책상에서 신문을 펼쳐들고 앉아서 무엇을 하는지 한두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에게는 칠판에 글씨를 써두고 베끼게 하거나 자습을 하게 시켜 놓은